지난 23일(금)~25일(일), 2박 3일 동안 일본의 쓰시마(對馬島)시에 다녀왔다. 지난 11월의 쓰시마 여행은 시청이 있는 이즈하라(厳原)항으로 입항하여 주로 남섬을 다녔다면, 이번 여행은 히타카츠(比田勝)항으로 입항하여 북섬을 주로 둘러보는 여행이었다.
23일(금) 오전 5시 15분에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는 부산으로 향했다. 이번은 '로드 디자이너(road designer)'로 일하고 있는 고광용 선배와 둘이서 떠난 단출한 여행이다. 광명역에서 승차한 고 선배랑 만나, 도시락을 간단히 먹고는 이내 잠들었다.
7시 40분에 부산역에 당도하여 바로 이웃한 부산항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겨우 5분 거리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는 다시 국밥으로 정식 아침을 했다. 여행길에 식사는 언제 어디서 발견될지 모르는 전쟁 중 비상식량처럼 소중해서 시간이 될 때는 먹어두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국밥보다는 국물이 좋아 쓰린 속을 시원하게 한다. 이제 잠시 쉬다가 세수를 하고는 9시 30분 배편으로 출발이다. 어제 비가 내린 관계로 바람도 많고, 파도도 높아 멀미를 한다. 아침 먹고 바로 항구약국에서 파는 비싼 멀미약을 사먹었지만, 조금은 어지럽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잤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배가 달려 북섬 동북에 있는 히타카츠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기분이 좋다. 입국 수속을 마친 다음, 렌터카를 한 대 빌리기 위해 항구에 나와 있는 재일동포 3세인 렌터카 사업자 김삼관 사장과 함께 차고지까지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는 작은 차를 2박 3일 50시간 동안 빌렸다.
김 사장은 명함에 일본 이름이 있고 한국말이 조금 어눌하기에 처음에는 '일본사람이 한국말을 배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물어보니, "경주 김씨로, 재일동포 3세이며 후쿠오카(福岡)태생이다. 선대가 징용으로 와서 아소탄광에서 일했다. 쓰시마에 사는 부산출신의 재일동포 2세와 결혼하면서 이곳에 들어와 산 지 40년이 되었다. 오랫동안 토목, 건설업에 종사하다가, 5년 전부터 자동차 수리와 임대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경상도 출신 김수종입니다"라고 하자, "내 고향은 자세히 모르고 경상도 어디라고만 들었다"고 반가워했다.
아무튼 차를 빌린 우리는 다시 항구 앞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짬뽕으로 점심을 했다. '짬뽕(ちゃんぽん)'이라는 것이 흔히 중국요리로만 알려져 있는데, 원래는 쓰시마가 속한 일본 나가사키(長崎)현에서 면과 돼지고기, 어패류, 채소를 육수에 넣어 끓인 전통 면 요리이다.
쫄깃한 면발이 특징인 나가사키 짬뽕은 1899년에 중국 푸지앤성(福建省)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이주한 천핑순(陳平順)이 개업한 중화요리집 시카이로(四海樓)에서 화교나 중국 유학생에게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중국식 일본요리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에 고춧가루를 추가하여 매운 맛이 특징이지만, 원래 짬뽕은 심심하고 맑은 국물이 자랑이다. 나는 맵게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심심한 짬뽕을 그냥 먹었다. 맛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름 국물이 좋아, 깨끗하게 비웠다.
식사를 마친 고 선배와 나는 차를 몰고는 인근의 '이지로(綱代)' '도미가우라(富浦)'의 해변과 산길을 천천히 살피면서 다녔다. 트레킹을 하기 좋은 길을 디자인하고 찾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가보다.
이리 저리 길을 가던 도중, '고후노사에유적(コフノサエ遺跡)'라고 하는 문화재 표지판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이곳에서 발견된 도자기와 무덤 등을 통하여 한반도와의 교류사를 알 수 있는 유적이라고 설명되어 있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덤 터에 돌과 도자기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한 문화재였다.
이어 다시 길을 나서 '가라슈시(唐丹志)' 쪽으로 갔다가, '나루타키(鳴滝) 자연공원'으로 이동하여 대마도에서 오직 하나뿐인 폭포인 '나루타키(鳴滝)폭포'를 만났다. 입구에 작은 신사가 있고,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높이 15미터 정도의 2단 폭포가 장쾌하게 흐른다. 유량이 많은 여름에는 마치 용의 울음소리로 느껴질 정도로 큰소리를 낸다고 한다.
쓰시마는 섬의 88%가 산림으로 이뤄져 있다. 울창함에 비해 강이 길지 않고 가파르지 않아 폭포를 구경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섬에서 귀한 나루타키 폭포는 방문자가 많다고 한다. 여기에 주변의 삼나무 숲길은 유려하고 아름답다.
이른 시간부터 기차에 배를 타고 왔고, 운전도 3시간 넘게 했더니, 피곤하여 숙소가 있는 '사스나(佐須奈)'로 갔다. 조선후기와 말기에 파견된 12번의 조선통신사 가운데 마지막 7번은 이곳 사스나를 일본 여정의 출발점으로 잡았다. 따라서 사스나는 3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쓰시마 중심으로 영화를 누렸다.
부산과 직접 교역이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까지 이곳에서 바로 부산을 오가는 배가 드나들어, 한때는 수많은 선술집에 유곽(遊廓)까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초라한 어촌마을 그대로다. 그래도 아직 북섬을 관할하는 경찰서가 있어 명성은 남아있는 듯했다.
'조선통신사의 길, 사스나(佐須奈) 코스' 초입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민박집에 들었다. 히타카츠항구 앞에서 작은 식당도 겸업하고 있는 부산 출신의 최 사장은 "식당은 점심 장사만 하고, 민박에는 저녁이 제공되지 않고 손님도 두 분 뿐인 금요일이라 같이 나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동행한 고 선배는 불고기인 '야키니쿠(やきにく, 焼き肉)'를 먹자고 했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하여 읍내를 10분 정도 걸어서 중화요리집으로 갔다. 사스나는 주유소, 미장원, 약국, 식당, 가전 제품판매점, 소방서 등이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작은 소읍이다.
사스나 거리는 우리네 70년대의 시골풍경과도 비슷하여 고향의 정취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일본 중에서도 변방인 쓰시마는 오랜 정체기를 걷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최 사장은 "4년을 이곳에 살고 있지만, 조금의 변화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장점인 곳이다"라고 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이점(利點)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중화요리로 볶음밥과 만두, 샐러드와 고기튀김을 3인분 주문한 우리들은 식사를 하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내가 "왜 쓰시마가 이렇게 변하지 않고 움직임이 없냐"고 최 사장에게 물었더니, "우선은 거제도 1.7배 정도의 큰 섬에 인구는 3만 명에 어르신이 대부분인 특성도 있고, 유사 이래 한국의 입장에서도 버려지거나 잊혀진 섬, 일본의 입장에서도 지독히 변방이라 귀양지 정도로 생각된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현재의 생활권은 배를 타고 3시간 거리인 후쿠오카(福岡)현인데, 행정구역은 배를 타고 3시간 이동한 후쿠오카에서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나가사키(長崎)현이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어정쩡한 괴리감이 크다"고 했다.
재미난 사실이었다. 나름 좋은 공부가 되었고, 이곳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고, 또 배울 것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계륵(鷄肋) 같아 보이는 쓰시마가 한일관계의 쇠갈비도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식사 이후 목욕을 하기 위해 동북에 있는 '미우다(三宇田)해수욕장' 옆에 자리한 온천인 '니기사노유(渚の湯)'로 갔다. 시에서 개발하여 민간에 위탁을 하고 있는 온천이라고 하는데, 시설도 좋고, 낮에 오면 바다와 산의 전망도 좋을 것 같아 보인다. 저녁시간이라 그런가? 손님은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몸을 씻고 나서 온천 내부를 살펴보니, 특산품 판매장도 있고, 각종 관광 안내장도 보인다. 재미난 것은 쓰시마에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해, 성인 기준으로 하루 1000엔이면 무한정 이용이 가능한 시내버스가 있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내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최 사장에게 물어보았더니, "하루 두어 번 다니는 버스가 대부분이라, 환승시간이 너무 길어, 이용자가 거의 없다"고 했다. 발상은 좋았지만, 현실은 그렇다는 말이다.
목욕탕을 나와, 쓰시마 최북단 '와니우라(鰐浦)'에 가서 흐려서 부산이 겨우 불빛만 조금 보이는 '한국전망대(韓國展望臺)'에 올랐다. 부산에서 아침 먹고 출발하여 반나절 만에 뭐 대단한 것을 본다고 이곳에 와서 부산과 한국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한국인 여행객들을 생각하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쓰시마를 방문하는 한국인 대부분이 이곳 한국전망대를 첫 여행지로 택하고 있다니 조금은 웃프다.
23일(금) 오전 5시 15분에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는 부산으로 향했다. 이번은 '로드 디자이너(road designer)'로 일하고 있는 고광용 선배와 둘이서 떠난 단출한 여행이다. 광명역에서 승차한 고 선배랑 만나, 도시락을 간단히 먹고는 이내 잠들었다.
▲ 일본 쓰시마부산항에서 일본 쓰시마로 출발 준비 중, 멀미약에 생수까지 ⓒ 김수종
7시 40분에 부산역에 당도하여 바로 이웃한 부산항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겨우 5분 거리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는 다시 국밥으로 정식 아침을 했다. 여행길에 식사는 언제 어디서 발견될지 모르는 전쟁 중 비상식량처럼 소중해서 시간이 될 때는 먹어두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국밥보다는 국물이 좋아 쓰린 속을 시원하게 한다. 이제 잠시 쉬다가 세수를 하고는 9시 30분 배편으로 출발이다. 어제 비가 내린 관계로 바람도 많고, 파도도 높아 멀미를 한다. 아침 먹고 바로 항구약국에서 파는 비싼 멀미약을 사먹었지만, 조금은 어지럽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잤다.
▲ 일본 쓰시마일본 쓰시마 가는 배 ⓒ 김수종
한 시간 조금 넘게 배가 달려 북섬 동북에 있는 히타카츠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기분이 좋다. 입국 수속을 마친 다음, 렌터카를 한 대 빌리기 위해 항구에 나와 있는 재일동포 3세인 렌터카 사업자 김삼관 사장과 함께 차고지까지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는 작은 차를 2박 3일 50시간 동안 빌렸다.
김 사장은 명함에 일본 이름이 있고 한국말이 조금 어눌하기에 처음에는 '일본사람이 한국말을 배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물어보니, "경주 김씨로, 재일동포 3세이며 후쿠오카(福岡)태생이다. 선대가 징용으로 와서 아소탄광에서 일했다. 쓰시마에 사는 부산출신의 재일동포 2세와 결혼하면서 이곳에 들어와 산 지 40년이 되었다. 오랫동안 토목, 건설업에 종사하다가, 5년 전부터 자동차 수리와 임대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경상도 출신 김수종입니다"라고 하자, "내 고향은 자세히 모르고 경상도 어디라고만 들었다"고 반가워했다.
▲ 일본 쓰시마자동차 정비와 임대업을 하는 김삼관 사장 ⓒ 김수종
아무튼 차를 빌린 우리는 다시 항구 앞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짬뽕으로 점심을 했다. '짬뽕(ちゃんぽん)'이라는 것이 흔히 중국요리로만 알려져 있는데, 원래는 쓰시마가 속한 일본 나가사키(長崎)현에서 면과 돼지고기, 어패류, 채소를 육수에 넣어 끓인 전통 면 요리이다.
쫄깃한 면발이 특징인 나가사키 짬뽕은 1899년에 중국 푸지앤성(福建省)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이주한 천핑순(陳平順)이 개업한 중화요리집 시카이로(四海樓)에서 화교나 중국 유학생에게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중국식 일본요리이다.
▲ 일본 짬뽕일본 쓰시마 ⓒ 김수종
한국에서는 이것에 고춧가루를 추가하여 매운 맛이 특징이지만, 원래 짬뽕은 심심하고 맑은 국물이 자랑이다. 나는 맵게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심심한 짬뽕을 그냥 먹었다. 맛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름 국물이 좋아, 깨끗하게 비웠다.
▲ 일본 쓰시마진흙 땅이 융기하여 생긴 섬이라 바위 모양이 특이하다 ⓒ 김수종
식사를 마친 고 선배와 나는 차를 몰고는 인근의 '이지로(綱代)' '도미가우라(富浦)'의 해변과 산길을 천천히 살피면서 다녔다. 트레킹을 하기 좋은 길을 디자인하고 찾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가보다.
▲ 일본 쓰시마일본는 600 씨씨 이하만이 경차이다. 정말 작다 ⓒ 김수종
이리 저리 길을 가던 도중, '고후노사에유적(コフノサエ遺跡)'라고 하는 문화재 표지판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이곳에서 발견된 도자기와 무덤 등을 통하여 한반도와의 교류사를 알 수 있는 유적이라고 설명되어 있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덤 터에 돌과 도자기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한 문화재였다.
▲ 일본 쓰시마고후노사에 유적 ⓒ 김수종
이어 다시 길을 나서 '가라슈시(唐丹志)' 쪽으로 갔다가, '나루타키(鳴滝) 자연공원'으로 이동하여 대마도에서 오직 하나뿐인 폭포인 '나루타키(鳴滝)폭포'를 만났다. 입구에 작은 신사가 있고,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높이 15미터 정도의 2단 폭포가 장쾌하게 흐른다. 유량이 많은 여름에는 마치 용의 울음소리로 느껴질 정도로 큰소리를 낸다고 한다.
쓰시마는 섬의 88%가 산림으로 이뤄져 있다. 울창함에 비해 강이 길지 않고 가파르지 않아 폭포를 구경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섬에서 귀한 나루타키 폭포는 방문자가 많다고 한다. 여기에 주변의 삼나무 숲길은 유려하고 아름답다.
▲ 일본 쓰시마나루타키 폭포 ⓒ 김수종
이른 시간부터 기차에 배를 타고 왔고, 운전도 3시간 넘게 했더니, 피곤하여 숙소가 있는 '사스나(佐須奈)'로 갔다. 조선후기와 말기에 파견된 12번의 조선통신사 가운데 마지막 7번은 이곳 사스나를 일본 여정의 출발점으로 잡았다. 따라서 사스나는 3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쓰시마 중심으로 영화를 누렸다.
▲ 일본 쓰시마바닷가에 많은 토리이 모형 ⓒ 김수종
부산과 직접 교역이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까지 이곳에서 바로 부산을 오가는 배가 드나들어, 한때는 수많은 선술집에 유곽(遊廓)까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초라한 어촌마을 그대로다. 그래도 아직 북섬을 관할하는 경찰서가 있어 명성은 남아있는 듯했다.
▲ 일본 쓰시마역시 삼나무 숲이 장관 ⓒ 김수종
'조선통신사의 길, 사스나(佐須奈) 코스' 초입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민박집에 들었다. 히타카츠항구 앞에서 작은 식당도 겸업하고 있는 부산 출신의 최 사장은 "식당은 점심 장사만 하고, 민박에는 저녁이 제공되지 않고 손님도 두 분 뿐인 금요일이라 같이 나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동행한 고 선배는 불고기인 '야키니쿠(やきにく, 焼き肉)'를 먹자고 했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하여 읍내를 10분 정도 걸어서 중화요리집으로 갔다. 사스나는 주유소, 미장원, 약국, 식당, 가전 제품판매점, 소방서 등이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작은 소읍이다.
사스나 거리는 우리네 70년대의 시골풍경과도 비슷하여 고향의 정취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일본 중에서도 변방인 쓰시마는 오랜 정체기를 걷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최 사장은 "4년을 이곳에 살고 있지만, 조금의 변화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장점인 곳이다"라고 했다.
▲ 일본 쓰시마저녁은 중화요리 ⓒ 김수종
어쩌면 이런 것이 이점(利點)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중화요리로 볶음밥과 만두, 샐러드와 고기튀김을 3인분 주문한 우리들은 식사를 하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내가 "왜 쓰시마가 이렇게 변하지 않고 움직임이 없냐"고 최 사장에게 물었더니, "우선은 거제도 1.7배 정도의 큰 섬에 인구는 3만 명에 어르신이 대부분인 특성도 있고, 유사 이래 한국의 입장에서도 버려지거나 잊혀진 섬, 일본의 입장에서도 지독히 변방이라 귀양지 정도로 생각된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현재의 생활권은 배를 타고 3시간 거리인 후쿠오카(福岡)현인데, 행정구역은 배를 타고 3시간 이동한 후쿠오카에서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나가사키(長崎)현이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어정쩡한 괴리감이 크다"고 했다.
재미난 사실이었다. 나름 좋은 공부가 되었고, 이곳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고, 또 배울 것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계륵(鷄肋) 같아 보이는 쓰시마가 한일관계의 쇠갈비도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 일본 쓰시마저녁 먹고 온천에 가다 ⓒ 김수종
아무튼 식사 이후 목욕을 하기 위해 동북에 있는 '미우다(三宇田)해수욕장' 옆에 자리한 온천인 '니기사노유(渚の湯)'로 갔다. 시에서 개발하여 민간에 위탁을 하고 있는 온천이라고 하는데, 시설도 좋고, 낮에 오면 바다와 산의 전망도 좋을 것 같아 보인다. 저녁시간이라 그런가? 손님은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몸을 씻고 나서 온천 내부를 살펴보니, 특산품 판매장도 있고, 각종 관광 안내장도 보인다. 재미난 것은 쓰시마에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해, 성인 기준으로 하루 1000엔이면 무한정 이용이 가능한 시내버스가 있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내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최 사장에게 물어보았더니, "하루 두어 번 다니는 버스가 대부분이라, 환승시간이 너무 길어, 이용자가 거의 없다"고 했다. 발상은 좋았지만, 현실은 그렇다는 말이다.
목욕탕을 나와, 쓰시마 최북단 '와니우라(鰐浦)'에 가서 흐려서 부산이 겨우 불빛만 조금 보이는 '한국전망대(韓國展望臺)'에 올랐다. 부산에서 아침 먹고 출발하여 반나절 만에 뭐 대단한 것을 본다고 이곳에 와서 부산과 한국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한국인 여행객들을 생각하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쓰시마를 방문하는 한국인 대부분이 이곳 한국전망대를 첫 여행지로 택하고 있다니 조금은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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