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쓰시마 최북단의 한국전망대 2층 내부의 전시공간에는 공부가 될 만한 것이 많았다. 특히 조선통신사에 대한 설명과 그들이 걸었던 길에 대한 간략한 해설은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나름 자긍심이 될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한국풍으로 지은 전망대의 모습은 기와를 올려 상당히 폼이 나는 정자 모형이다.
나도 기회를 자주 만들어 시나브로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걷고 싶을 따름이다. 날은 춥고 바람도 많이 분다. 이제 돌아가자. 가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러 약간의 술과 안주 및 아침에 먹을 '낫토(納豆, なっとう)'를 몇 개 샀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술과 안주를 즐기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민박집 최 사장은 나랑 동갑에 사람도 좋아서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주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늦은 시간까지 쓰시마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편백나무가 무척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가공할 제재소가 거의 없고, 기계와 기술자도 부족하여 제대로 상품화를 못시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오리를 먹지 않고 버리는 이곳 사람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가오리 수매와 수출을 하고 싶다는 말과 일손이 부족하여 야생 돌미역도 채취하거나 먹지 않아 버려지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말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곳이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생각과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다양한 돈벌이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의 개발에 이은 풍선효과로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 중장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의 특성상 쉽게 토지나 집을 팔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로서는 편백나무 가공이나, 가오리 수출입, 미역 채취, 오징어와 전복의 수출입은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사업 정보인 것 같았다. 또한 한국인 관광객의 급증으로 민박과 큰 식당의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관광수요에 맞추어 렌터카 사업도 좋을 듯 보인다.
지진이 많아 온돌이 없고 바닥 난방이 되지 않는 것이 일본집의 특성인데, 이곳 민박에는 반 정도의 방에만 전기온돌을 바닥에 설치했다고 한다. 우리 방은 다행히 온돌이 있어 나름 아래는 따뜻했다. 위는 추워서 옷을 잔뜩 입고, 이불을 감싸 안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별 불편없이 잘 잤다.
24일(토)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이 밝았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한잔해서 조금 늦잠을 잤다. 8시에 세수를 하고는 세 사람이 아침을 같이 했다. 민박집 최 사장이 준비한 아침은 한식과 일식을 겸한 묘한 식사였다.
밥에 김치와 계란 프라이, 김과 도라지 무침은 보통의 한국식이고, '된장국(みそしる, 味噌汁)'에, 단무지, 무 초무침, 낫또, 톳 무침, 멸치조림, 생선국 등은 일본식이었다. 사실 다른 어떤 곳에서 먹은 일본음식보다,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 주는 오늘 아침이 최고였다.
손님이 많은 경우에는 아침을 해주는 찬모(饌母)를 부르지만, 오늘처럼 사람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최 사장이 그냥 간단하게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다고 했다. 간단한 식사치고는 최상이었다.
아침을 먹고는 북섬 서북에 있는 '사고천(佐護川)'유역의 평야와 습지로 갔다. 이곳은 농토가 귀한 쓰시마임에도 수십 만 평의 논이 있는 곳이다. 강을 따라 넓은 땅이 펼쳐져있다.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관계로 매년 10월에는 이즈미로 가는, 2월에는 이즈미에서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두루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두루미의 이동 경로는 러시아~중국~한국~일본 이즈미를 오간다. 이곳은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규슈(九州) 남쪽에 있는 가고시마(鹿児島)현 북부에 자리한 이즈미(出水)는 바다와 산, 강 및 넓은 평야가 있어 세계적인 두루미 생육지다.
재미있게도 2월, 10월에 잠시 방문하는 두루미를 보기 위해 평야 가운데 있는 작은 언덕에 새 탐조 시설인 '버드 워칭(Bird watching)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연구자는 물론 관광객들의 방문이 많은 곳이다. 버드 워칭 공원에는 3층의 탐조 탑과 작은 갤러리를 포함한 숙소 동, 화장실과 급수대가 보기 좋게 설치되어 있었다.
12월이라 두루미는 없고, 까마귀가 많았다. 나는 새 탐조 시설이 너무 대단하여 놀랐다. 그리고 쓰시마에서는 보기 드문 논이 장관이었다. 나름 부유한 농촌의 모습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집들이 다들 크고 좋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쓰시마가 생각보다는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동백꽃과 귤나무가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십 년 수령의 동백나무와 12월의 붉은 동백꽃, 그리고 주렁주렁 달려있는 싱그러운 귤의 모습에서 오며가며 만져보는 귤의 거친 촉감이 무척 좋았다.
이어 '사고(佐護)만' 변에 있는 '미나토(湊)'로 방향을 잡았다. 길을 가던 도중에 큰 비석을 발견하여 차를 세웠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 순국기념비'였다.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백제도 아니고, 이후 고려나 조선도 아닌,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신라 충신의 순국을 기리는 비석이라니?
박제상 혹은 김제상(金堤上)이라고도 알려진 그는 신라 내물왕 때부터 눌지왕 때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는 백제 세력을 견제할 필요에 의해 402년(실성왕1) 내물왕의 셋째아들인 미사흔 왕자를 일본에, 412년에는 내물왕의 둘째아들인 복호 왕자를 고구려에 파견해 군사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과 고구려는 이들 왕자를 인질로 감금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일본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군신들을 불러 협의했다. 그 결과 박제상이 적임자로 천거되었다. 그는 418년(눌지왕2) 왕명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해 복호 왕자를 구출하여 귀국했다.
이후 부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일본에 이르러 자신이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해 온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다. 마침 백제 사신이 와서 고구려와 신라가 모의해 일본을 침입하려 한다고 거짓으로 꾸며 말했다. 이에 일본은 미사흔 왕자와 박제상을 길잡이로 삼아 신라를 침략하고자 했다.
일본군이 신라를 치러 가는 도중에 박제상은 군사들을 속여 미사흔 왕자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신은 붙잡혀 일본 왕 앞에 끌려갔다. 일본 왕은 재주가 좋고 학문이 깊은 그를 신하로 삼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결코 일본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받아 죽었다.
1600년 전 신라의 충신을 추모하는 순국비가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한국정부와 일본의 뜻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몇 년 전에 건립한 것이었다. 아무튼 너무 대단하고 놀라워 잠시 묵념을 했다.
박제상! 이름도 가물거리는 신라의 충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있고, 비석을 부수지 않고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놀라울 뿐이다. 터의 위치로 보아서는 박제상이 순국한 곳이라기보다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땅인 이곳에 그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 같아 보였다.
이어 길을 조금 더 가서 '쓰시마야생동물보호센터(對馬島野生動物保護センター)'로 갔다. 이곳 야생동물보호센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야마네코(やまねこ,山猫)'로 불리는 살쾡이(삵)을 보호하는 시설이었다.
지난 1997년에 설립된 센터로 야마네코에 관한 전시물과 자료 등, 야생동물의 보호와 증식을 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야마네코를 직접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시설이라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몸 상태에 따라 공개를 하지 않는 날도 있어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당일 본 야마네코는 12살된 암놈으로 눈이 부리부리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쓰시마의 야마네코는 고양이과에 딸린 짐승으로 몸길이는 40~110cm이다. 꼬리길이는 몸길이의 절반 정도로 고양이보다 훨씬 크고 길다. 몸은 비교적 길고, 네 다리는 짧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고르지 않은 검은 갈색 점무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머리는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코 위에서 이마 양쪽으로 줄무늬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꼬리에는 갈색 바탕에 둥근 검은 갈색 무늬가 있다. 이빨과 발톱은 작은 편이나 매우 날카롭다.
산림 지대의 골짜기와 바위가 많은 곳 가까이에 산다. 주로 혼자 생활한다. 성질이 사납고, 몸이 날쌔며, 나무 위에도 잘 올라간다. 낮에는 나무 구멍이나 바위 밑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한다. 토끼, 쥐, 꿩, 다람쥐, 새끼노루 따위를 잡아먹는다.
2월에만 짝을 짓기 위해 암수가 잠시 가족을 이룬다. 5월에 나무 구멍이나 바위틈에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약 1년이면 완전히 성장한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삵은 한반도와 만주 등에 살고 있는 삵과 같은 종이다. 일본에는 오로지 쓰시마에만 70~100마리 정도 남아있어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사실 쓰시마의 야마네코는 이곳이 예전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거물이라 의미가 크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삵이지만, 일본에서는 특급대우를 하며 보호하고 있으니 놀랍기도 했다. 이어 이번에는 산길을 차를 타고 올라 '사오자키(棹岐)공원'으로 갔다. 예전 일본 육군 요새가 있던 곳으로 일본의 최서북단이라고 한다. 부산과 직선거리로 49.5km로 정말 한국 땅이 보이는 곳이다. 한국 휴대전화가 로밍하지 않고도 가끔 터지는 곳이기도 하다.
바람이 심한 이곳에는 반쯤은 누워있는 것 같은 동백나무와 평화의 조형물, 일본 최서북단임을 알리는 조형물, 옛 일본군의 방공호, 등대 등이 나무들과 조화롭게 서 있어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공원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바다도 너무 멋지다. 용왕님께도 잠시 감사 기도를 드린다.
나도 기회를 자주 만들어 시나브로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걷고 싶을 따름이다. 날은 춥고 바람도 많이 분다. 이제 돌아가자. 가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러 약간의 술과 안주 및 아침에 먹을 '낫토(納豆, なっとう)'를 몇 개 샀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술과 안주를 즐기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민박집 최 사장은 나랑 동갑에 사람도 좋아서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주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 일본 쓰시마귤이 참 많다 ⓒ 김수종
늦은 시간까지 쓰시마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편백나무가 무척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가공할 제재소가 거의 없고, 기계와 기술자도 부족하여 제대로 상품화를 못시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오리를 먹지 않고 버리는 이곳 사람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가오리 수매와 수출을 하고 싶다는 말과 일손이 부족하여 야생 돌미역도 채취하거나 먹지 않아 버려지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말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곳이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생각과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다양한 돈벌이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의 개발에 이은 풍선효과로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 중장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의 특성상 쉽게 토지나 집을 팔지는 않는다고 한다.
▲ 일본 쓰시마동백꽃이 너무 이쁘다 ⓒ 김수종
나로서는 편백나무 가공이나, 가오리 수출입, 미역 채취, 오징어와 전복의 수출입은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사업 정보인 것 같았다. 또한 한국인 관광객의 급증으로 민박과 큰 식당의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관광수요에 맞추어 렌터카 사업도 좋을 듯 보인다.
지진이 많아 온돌이 없고 바닥 난방이 되지 않는 것이 일본집의 특성인데, 이곳 민박에는 반 정도의 방에만 전기온돌을 바닥에 설치했다고 한다. 우리 방은 다행히 온돌이 있어 나름 아래는 따뜻했다. 위는 추워서 옷을 잔뜩 입고, 이불을 감싸 안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별 불편없이 잘 잤다.
24일(토)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이 밝았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한잔해서 조금 늦잠을 잤다. 8시에 세수를 하고는 세 사람이 아침을 같이 했다. 민박집 최 사장이 준비한 아침은 한식과 일식을 겸한 묘한 식사였다.
▲ 일본 쓰시마민박에서 아침 ⓒ 김수종
밥에 김치와 계란 프라이, 김과 도라지 무침은 보통의 한국식이고, '된장국(みそしる, 味噌汁)'에, 단무지, 무 초무침, 낫또, 톳 무침, 멸치조림, 생선국 등은 일본식이었다. 사실 다른 어떤 곳에서 먹은 일본음식보다,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 주는 오늘 아침이 최고였다.
손님이 많은 경우에는 아침을 해주는 찬모(饌母)를 부르지만, 오늘처럼 사람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최 사장이 그냥 간단하게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다고 했다. 간단한 식사치고는 최상이었다.
아침을 먹고는 북섬 서북에 있는 '사고천(佐護川)'유역의 평야와 습지로 갔다. 이곳은 농토가 귀한 쓰시마임에도 수십 만 평의 논이 있는 곳이다. 강을 따라 넓은 땅이 펼쳐져있다.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관계로 매년 10월에는 이즈미로 가는, 2월에는 이즈미에서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두루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일본 쓰시마사고천 ⓒ 김수종
일반적으로 두루미의 이동 경로는 러시아~중국~한국~일본 이즈미를 오간다. 이곳은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규슈(九州) 남쪽에 있는 가고시마(鹿児島)현 북부에 자리한 이즈미(出水)는 바다와 산, 강 및 넓은 평야가 있어 세계적인 두루미 생육지다.
재미있게도 2월, 10월에 잠시 방문하는 두루미를 보기 위해 평야 가운데 있는 작은 언덕에 새 탐조 시설인 '버드 워칭(Bird watching)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연구자는 물론 관광객들의 방문이 많은 곳이다. 버드 워칭 공원에는 3층의 탐조 탑과 작은 갤러리를 포함한 숙소 동, 화장실과 급수대가 보기 좋게 설치되어 있었다.
▲ 일본 쓰시마사고평야 ⓒ 김수종
12월이라 두루미는 없고, 까마귀가 많았다. 나는 새 탐조 시설이 너무 대단하여 놀랐다. 그리고 쓰시마에서는 보기 드문 논이 장관이었다. 나름 부유한 농촌의 모습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집들이 다들 크고 좋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쓰시마가 생각보다는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동백꽃과 귤나무가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십 년 수령의 동백나무와 12월의 붉은 동백꽃, 그리고 주렁주렁 달려있는 싱그러운 귤의 모습에서 오며가며 만져보는 귤의 거친 촉감이 무척 좋았다.
이어 '사고(佐護)만' 변에 있는 '미나토(湊)'로 방향을 잡았다. 길을 가던 도중에 큰 비석을 발견하여 차를 세웠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 순국기념비'였다.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백제도 아니고, 이후 고려나 조선도 아닌,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신라 충신의 순국을 기리는 비석이라니?
▲ 일본 쓰시마신라 충신 박제상 순국비 ⓒ 김수종
박제상 혹은 김제상(金堤上)이라고도 알려진 그는 신라 내물왕 때부터 눌지왕 때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는 백제 세력을 견제할 필요에 의해 402년(실성왕1) 내물왕의 셋째아들인 미사흔 왕자를 일본에, 412년에는 내물왕의 둘째아들인 복호 왕자를 고구려에 파견해 군사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과 고구려는 이들 왕자를 인질로 감금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일본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군신들을 불러 협의했다. 그 결과 박제상이 적임자로 천거되었다. 그는 418년(눌지왕2) 왕명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해 복호 왕자를 구출하여 귀국했다.
이후 부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일본에 이르러 자신이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해 온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다. 마침 백제 사신이 와서 고구려와 신라가 모의해 일본을 침입하려 한다고 거짓으로 꾸며 말했다. 이에 일본은 미사흔 왕자와 박제상을 길잡이로 삼아 신라를 침략하고자 했다.
일본군이 신라를 치러 가는 도중에 박제상은 군사들을 속여 미사흔 왕자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신은 붙잡혀 일본 왕 앞에 끌려갔다. 일본 왕은 재주가 좋고 학문이 깊은 그를 신하로 삼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결코 일본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받아 죽었다.
1600년 전 신라의 충신을 추모하는 순국비가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한국정부와 일본의 뜻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몇 년 전에 건립한 것이었다. 아무튼 너무 대단하고 놀라워 잠시 묵념을 했다.
박제상! 이름도 가물거리는 신라의 충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있고, 비석을 부수지 않고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놀라울 뿐이다. 터의 위치로 보아서는 박제상이 순국한 곳이라기보다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땅인 이곳에 그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 같아 보였다.
이어 길을 조금 더 가서 '쓰시마야생동물보호센터(對馬島野生動物保護センター)'로 갔다. 이곳 야생동물보호센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야마네코(やまねこ,山猫)'로 불리는 살쾡이(삵)을 보호하는 시설이었다.
▲ 일본 쓰시마야마네코 ⓒ 김수종
지난 1997년에 설립된 센터로 야마네코에 관한 전시물과 자료 등, 야생동물의 보호와 증식을 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야마네코를 직접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시설이라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몸 상태에 따라 공개를 하지 않는 날도 있어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당일 본 야마네코는 12살된 암놈으로 눈이 부리부리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쓰시마의 야마네코는 고양이과에 딸린 짐승으로 몸길이는 40~110cm이다. 꼬리길이는 몸길이의 절반 정도로 고양이보다 훨씬 크고 길다. 몸은 비교적 길고, 네 다리는 짧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고르지 않은 검은 갈색 점무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머리는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코 위에서 이마 양쪽으로 줄무늬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꼬리에는 갈색 바탕에 둥근 검은 갈색 무늬가 있다. 이빨과 발톱은 작은 편이나 매우 날카롭다.
산림 지대의 골짜기와 바위가 많은 곳 가까이에 산다. 주로 혼자 생활한다. 성질이 사납고, 몸이 날쌔며, 나무 위에도 잘 올라간다. 낮에는 나무 구멍이나 바위 밑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한다. 토끼, 쥐, 꿩, 다람쥐, 새끼노루 따위를 잡아먹는다.
2월에만 짝을 짓기 위해 암수가 잠시 가족을 이룬다. 5월에 나무 구멍이나 바위틈에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약 1년이면 완전히 성장한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삵은 한반도와 만주 등에 살고 있는 삵과 같은 종이다. 일본에는 오로지 쓰시마에만 70~100마리 정도 남아있어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사실 쓰시마의 야마네코는 이곳이 예전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거물이라 의미가 크다.
▲ 일본 쓰시마사오자키공원, 일본서북극을 알리는 조형물 ⓒ 김수종
▲ 일본 쓰시마사오자키공원, 멀리 부산이 가물가물 보인다 ⓒ 김수종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삵이지만, 일본에서는 특급대우를 하며 보호하고 있으니 놀랍기도 했다. 이어 이번에는 산길을 차를 타고 올라 '사오자키(棹岐)공원'으로 갔다. 예전 일본 육군 요새가 있던 곳으로 일본의 최서북단이라고 한다. 부산과 직선거리로 49.5km로 정말 한국 땅이 보이는 곳이다. 한국 휴대전화가 로밍하지 않고도 가끔 터지는 곳이기도 하다.
바람이 심한 이곳에는 반쯤은 누워있는 것 같은 동백나무와 평화의 조형물, 일본 최서북단임을 알리는 조형물, 옛 일본군의 방공호, 등대 등이 나무들과 조화롭게 서 있어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공원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바다도 너무 멋지다. 용왕님께도 잠시 감사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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