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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국경부터 아닐까

[주장] 대한민국의 촛불과 북한의 혁명

등록|2016.12.28 14:52 수정|2016.12.28 14:52
한 개인이 국정을 농단했던 소위 '최순실 게이트'는 사회·경제 전반의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이와 관련해서 사상 최대 인파가 모여 촛불을 들었다. 결국 지난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국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오랫동안 당연한 듯 잊고 살았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27일 기자회견 때 '촛불시위를 보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깨달았다'고 밝혔다. 북한의 감시 체제에서 억압받는 것을 일상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촛불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북한 관련 글을 쓰면서 최근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으레 받는 질문이지만, 두 번째 질문은 촛불이 밝힌 시대상을 반영한 질문이다.

1.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가.
2. 북한은 각각 개인이 그렇게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


첫 번째 질문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지 논리적으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할 수는 있지만 불명확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대북 전문가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마저도 불확정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10년 안에는 불가능하다'로 단순하고, 명확하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유시민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 할 수 있는 방법은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뿐이다."(책 179쪽)

북한에서 혁명이 어려운 이유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기층 당(黨) 간부들을 상대로 '행정관료화'를 강하게 질타하며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해소를 강조했다. 김정은은 지난 25일 평양에서 열린 제1차 전국 노동당(전당) 초급당위원장 대회 3일차 회의에서 '초급당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론'을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고 노동신문이 26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최근 북한 내 시장의 발달로 북한 정권의 감시 체계가 약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주민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없다. 이는 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하는 요소다.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국지적 통제가 쉽다는 뜻이다. 전국적으로 나아가기 이전의 부분적 봉기는 주변 군 부대에서 충분한 진압이 가능하다. 북한 주민들이 가진 '이동에 대한 프레임'을 살펴봐도 한정된 지역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을 탈북자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경험적으로 거주지 외로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이 긴 세월동안 체득돼 있다.

이와 비교해서, 남한은 촛불집회 때 전국에 있는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서울로 상경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제재에 막혀 안산 부근에서 이동의 제약을 받았지만 시도 자체만으로도 '이동의 자유'에 대한 프레임이 전국적인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런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3년에서 5년 이내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북 전문가들은 시장의 발달을 그 근거로 삼는다. 실제로 지역에만 한정돼 생활했던 북한 주민들이 장사를 위해 근교 거리 이상으로 나가면서 생활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적어도 '시장과의 거리'까지 생각의 틀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 정도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혁명은 결국 '사람이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고 구체제의 모순을 고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사람이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 이렇게 모이는 장소는 대부분 도시다.

북한의 도시화율을 보면 1960년대 일본 수준과 비슷하다. 현재 남한은 약 91%의 도시화가 진행돼 있고, 일본은 94%에 달한다. 북한은 60%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모일 장소가 마땅치 않고, 특정 도시로 동원할 수 있는 동원력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금남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곳이 북한에는 없다.

북한 주민들에 의한 봉기가 불가능하다면, 북한 권력층의 쿠데타 가능성은 어떨까. 김정은 집권 이후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서 보도하는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대부분 군 부대였다. 김정은 초기, 권력 누수를 막고 군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불안한 권력 이양의 방증이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최근 탈북한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한 주민은 대부분 '반 김정은'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반 김정은'은 군, 권력층, 기득권층에 대한 상징이다. 대다수의 주민이 소위 '평양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쿠데타는 그에 따른 명분과 주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논리가 필요하며, 쿠데타 주도 세력과 주민간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 김정은' 정서로 볼 때 결코 쉬워보이지 않는다. 또한 쿠데타의 혼란한 과정 속에서 '대량 탈북 사태'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혁명은 최악일 경우 일어난다? 아닐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시간 안에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만에 하나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면 '토크빌의 역설'과 '독재자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다.

토크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다. 그는 혁명이 발발하는 것은 반드시 상황이 악화돼 갈 때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정이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반면 토크빌은 물질적 조건이 호전될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생활수준이 개선되고 통제가 느슨해지면 주민들이 가진 정치 기대감이 부풀려지면서 급진적인 요구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그런 요구로부터 급속한 체제 와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근래 북한은 시장을 통해 생활수준이 점차 개선되고 있고, 반 김정은 정서로 인해 통제가 느슨해지고 있다. 더불어 도시화율은 낮지만 지역적인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그 안에서 서로 정보를 교류하면서 '소규모 집단이 모이는 공간'이 생겨난다.

시장이 북한 정권 내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결과물'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 각각 개개인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장을 이용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만 그 결과가 의도치 않게 체제 붕괴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주도 세력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통제에 대한 공포'가 있는 북한 주민 사이에서 주도 세력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러한 징후는 금방 포착될 것이다. 이는 과거 봉기를 주도한 '학습된 행동 및 결과'가 전혀 축적돼 있지 않아서다. 결국 북한의 체제 시스템으로 볼 때, 토크빌의 역설이 10년 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 정보에 눈 뜨는 북한 주민들... 혁명 일어난다면 국경지대부터?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방사포병 중대 사격경기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북한은 '독재자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는 인터넷 개방과 관련된 문제다. 인터넷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독재자가 고민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 혁명을 멀리하면 경제적 쇠퇴가 불가피하고, 적극 활용하고자 하면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국가에서는 정권이 주민들에 의한 민주화를 우려한다는 시각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인터넷을 개방했고, 가장 엄격하게 인터넷을 통제한다. 일부 권력층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내부망인 인트라넷을 이용하기 때문에 크게 쓸모가 없다. 하지만 일부는 외부망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한다.

북한 정권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간부들을 끊임없이 도청하고 감청한다. 세밀하게 대화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체제에 위반되는 내용을 필터링한다.

2015년 탈북한 김준영씨는 "'아랍의 봄' 이후 소셜미디어가 정치적 영향을 끼치고, 이런 모습이 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면서 북한의 도청·감청 행위가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북한의 3G 가입자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 내부망인 인트라넷만 접속이 가능한데, 일부는 '프록시(우회접속)'를 통해 외부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한 탈북자는 실제 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해도 시장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유심이나 프록시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 밀수업자, 브로커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는다. 외부 정보는 이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다.

국경지대에서 들어온 정보들이 내륙까지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각 지역마다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에서 아랍처럼 민주화의 바람이 분다면, 국경지대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 또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국경 지역에 전파 방해 시설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다만, 북한 정권이 언제까지 강제적인 수단만으로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신준식님은 북한 전문매체 <뉴포커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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