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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속에 진신사리가 있었단 말이지?

[중국의 고대문화 들여다보기 28] 법문사 2

등록|2016.12.29 15:18 수정|2016.12.29 15:18

▲ 고행하는 싯다르타 ⓒ 이상기


불광대도를 따라가면서 보게 되는 부처님의 일생

첫 장면이 중국식 표현으로 태자 탄생이다. 말 그대로 마야부인이 룸비니에서 태자인 싯다르타를 낳는 모습이다. 두 번째 장면이 출유감고(出游感苦)다. 태자가 성 밖으로 나가 인간의 네 가지 고통을 알게 되는 모습이다. 태자는 생노병사를 보고 고뇌에 빠진다.

세 번째 장면이 야도범진(夜度凡尘)이다. 밤에 속세를 떠나 출가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왕자는 말을 타고 세속의 즐거움을 버리고 떠난다. 버리는 것 중에는 아내와 자식도 있고 음악도 있다. 네 번째 장면이 6년 고행이다. 6년 동안 고행한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지 못해 우울한 모습이다.

▲ 사르나트 녹야원에서의 초전법륜 ⓒ 이상기


다섯 번째 장면이 보리오도(菩提悟道)다.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진리를 깨달은 자의 진지한 모습이다. 여섯 번째 장면이 초전법륜이다.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린다는 뜻으로, 사르나트의 녹야원에서 다섯 제자에게 설법을 한다.

일곱 번째 장면이 보도중생(普度衆生)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중생제도(濟度)가 된다. 불교법기인 여의주를 이용해 광대무변한 불법을 깨닫도록 하고, 이를 통해 고통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여덟 번째 마지막 장면이 쌍림멸도(雙林滅度)다. 불법을 전한 부처님이 입적하는 모습이다. 부처님은 몸을 옆으로 하고 누워 열반에 든다.

▲ 한말건탑 ⓒ 이상기


이들을 보고 난 우리는 이제 20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법문사로 향한다. 법문사로 가는 길은 보도중생과 쌍림멸도 사이에 동쪽으로 나 있다. 이 길의 남쪽 벽에는 법문사를 중심으로 한 중국불교의 역사가 벽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은 모두 13장면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장면이 한말건탑(漢末建塔)이다. 한나라 말에 세워진 탑 이야기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인도의 아쇼카왕 때이다. 그러므로 기원전 25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외래종교인 불교가 쉽게 수용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후한 명제(明帝: 57-75) 때인 67년 절이 처음 생기게 되었다. 그것이 낙양에 있는 백마사(白馬寺)다. 그리고 2세기 후반 법문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한 목탑이 처음 만들어졌다.

▲ 수립도량 ⓒ 이상기


두 번째 만나는 장면이 서위홍법(西魏弘法)이다. 서위시대 불법이 널리 전파되었다는 뜻이다. 서위의 공제(恭帝) 때인 555년 아육왕사를 확장하고 목탑을 중건한다. 그리고 총림제를 실시, 절을 승속의 중심으로 만든다. 이를 통해 불교의 위상이 높아지고 불법이 널리 전파된다.

세 번째 만나는 장면이 수립도량(隋立道場)이다. 수나라 때 도량이 성립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수나라 문제(文帝)가 불교를 숭상하면서 사원을 중심으로 성실종(成實宗)이 번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수나라는 성실도량의 세상이 되었다. 네 번째 만나는 장면이 당제예불(唐帝禮佛)이다. 당나라 황제가 부처님께 예를 드렸다는 뜻이다.

▲ 법문사에 공양물을 바치는 당 황제 ⓒ 이상기


여기서 예는 절에 찾아 공물을 바치고 인사를 드리는 일을 말한다. 당 고조부터 시작해 8명의 황제가 절에 새 이름을 지어주고, 탑을 새로 세우고, 절을 확장시켰던 것이다. 황제가 절을 찾아 예배하니 만백성이 따라 하고 불교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장면이 오대십국(五代十國)과 황제불국(皇帝佛國)이다. 당나라 이후 5대10국 동안 법문사에서는 여전히 법회가 열렸음을 보여준다. 송나라 때 나라의 중심이 장안에서 동쪽으로 이전하면서 법문사의 지위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황제는 여전히 불교를 숭상했음을 말해준다.

▲ 종파합류 ⓒ 이상기


일곱 번째 장면이 원나라 때 대장경을 장경루에 보관한 내용이다. 여덟 번째 장면이 명나라 때 전탑(塼塔)을 수리한 내용이다. 아홉 번째 장면이 종파합류(宗派合流)로, 청나라 때 종파 구분이 없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는 법문사의 근현대사로 진신사리를 모시는 진신보탑이 다시 만들어지고, 법신이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장면이 복연제회(福緣際會)로, 복된 인연으로 2014년 세계불교도대회가 열렸음을 알리고 있다. 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부처의 빛이 가득한 불국을 염원하고, 중국의 부흥과 세계평화를 기원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현재의 법문사 문화경구에서 역사 속의 법문사로 들어간다. 진정한 법문사의 역사를 알기 위해.    

진신보탑 들어가기

▲ 지궁 입구의 동판: 열반성으로 들어간다(入涅槃城) ⓒ 이상기


역사 속의 법문사는 입구인 산문(山門)으로부터 남북으로 전각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가장 앞에 전전(前殿)이 있고, 그 다음에 법문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진신보탑이 있다. 진신보탑의 역사는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00년 전후 탑이 중건되었고, 현재와 같은 모양의 탑은 1988년 만들어졌다. 진신보탑은 8각 13층이고 높이가 47m다. 진신보탑 뒤로는 대웅보전이 있다. 진신보탑과 대웅보전 사이 좌우에는 종루와 고루가 있다.

대웅보전 뒤에는 선당(禪堂)과 조당(祖堂)이 있다. 대웅보전 동쪽 영역에도 전각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옥불전, 방생지, 천불각이 있다. 중간에 네 동의 요당(寮堂)이 있고, 그 뒤로 재당(齋堂), 불학원, 법당이 있다. 여기서 요당은 우리의 요사채에 해당한다. 재당은 공양간 즉 식당을 말한다.

▲ 법문사 지궁 단면도 ⓒ 이상기


우리는 전전을 지나 진신보탑 지궁으로 내려간다. 지궁은 1987년 발굴을 통해 내부 구조가 처음 알려졌다. 가장 먼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만도(漫道)가 있다. 만도는 계단을 말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평대(平臺)로 불리는 바닥이 나온다. 평대의 끝에 내부로 들어가는 묘도문(墓道門)이 있다. 묘도문을 들어가면 내부는 다시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가장 바깥에 수도(隧道)가 있다. 여기서 수도는 굴 또는 터널을 말하는 중국어다.

지궁에는 어떤 유물이 있었을까?

수도 끝에 전실(前室: 앞방)로 들어가는 제2도문(第二道門)이 있다. 2도문 앞에는 지궁의 역사와 수장유물 내역을 기록한 지문비(志文碑)가 서 있었다. 2도문 안 전실에는 보살상 2기, 고리가 6개 달린 석장(錫杖), 아육왕탑, 한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는 전폐(錢幣: 동전)가 있었다고 한다. 전실에서 중실(中室: 가운데 방)로 가려면 제3도문을 지나야 한다. 3도문 양옆에는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었다.

▲ 아육왕탑 ⓒ 이상기


중실에는 한가운데 백옥으로 만든 영장(靈帳)이 있었다. 영장은 신령스런 물건을 넣어두는 일종의 상자로 그 안에 보함(寶函)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보함에서는 불지사리 1과가 발견되었다. 영장 앞과 뒤에는 동제 향로와 은제 향로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자개 상자도 나오고 가사와 수놓은 의류도 나왔다. 비색자기와 정병 같은 불구(佛具)도 나왔다. 이곳에서는 진신보살(眞身菩薩)이 발견되어, 중실에 진신보살이 안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후실로 들어가려면 제4도문을 지나야 한다. 후실에는 장식이 가장 화려한 8중보함(八重寶函)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고리가 12개 달린 석장이 놓여 있었다. 주변에서는 은향로와 금은기 같은 불구도 발견되었다. 진신보탑 지궁에서는 불지사리 4과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보관하는 보함, 금은기(金銀器) 121종, 유리그릇 17종, 자기 16종, 석질기(石質器) 12종, 칠기 19종, 보석류 400개가 수습되었다. 이들은 현재 진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고리가 12개 달린 석장 ⓒ 이상기


지궁을 나와 다시 1층으로 올라온 나는 진신보탑의 동서남북 사방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본다. '진신보탑(眞身寶塔) 미양중진(美陽重鎭) 사리비하(舍利飛霞) 부도요일(浮圖耀日)'. 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진신을 모신 보탑이 아름답게 빛나고 웅장하구나. 사리가 저녁놀처럼 빛나고 부도탑이 햇살처럼 빛나누나.' 8각을 이룬 보탑의 꼭지점에는 풍령(風鈴)이 달려 있어 13층까지 하면 모두 104개나 된다. 바람이 불면 이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 같다.

왜 이곳에 거북이가 있는 걸까?

▲ 불가의 성물 거북 ⓒ 이상기


진신보탑을 나온 우리는 이제 법문사 서쪽의 진보박물관으로 향한다. 진보관으로 들어가기 전 길 가운데 황동으로 만든 커다란 거북이상을 만난다. 거북은 일반적으로 장수를 상징하고, 불교적으로는 용과 함께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 만들어 놓은 거북도 그런 의미로 만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진보관의 당나라시대 보물을 살펴보니, 그곳에 이 거북이 모양이 있었다.

이것은 금도금한 은제 거북모양 합(盒)으로, 부처님 공양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크기도 작아 높이가 12㎝, 길이 27㎝, 폭 14㎝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그러므로 이곳에 만들어놓은 황동 거북은 실물을 10배 정도 크게 확대해 만들어 놓은 셈이 된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거북의 머리와 꼬리를 만지며 복을 기원하고 있다. 그래선지 머리와 꼬리에서는 금빛이 난다. 거북은 불가의 성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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