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초판본을 만날 수 있는 인사동 그집
감정이 메마른 시대, 시의 옹달샘을 만나려거든
인사동이나 대학로를 찾는 이유가 있을까? 문화가 상술로 바뀌었다고들 하는 인사동이나 대학로이고 보면 변함없이 찾는 모습에 대해 의아해하는 시선이 일면 이해가 된다. 이미 인사동이나 대학로에서 오래전 모습은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미술도 미술이지만 문학 자체가 사라진 데서 불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오래전 대학로나 인사동은 전시장과 문학인들로 넘쳐났다. 다방도 그들이 찾지 않으면 다른 손님을 맞을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주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늘 그곳에 가면 걸쭉하게 풀어진 목소리로 간간히 고함을 치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어떤 가게에서는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을 지라도 그들은 그곳을 통해 세상에 살아있음을 입증했다. 그들이 그 거리의 주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감도나 학림, 프리즘 등 대학로에 있던 많은 이들이 아끼던 장소 가운데 아직 그대로 남은 곳은 학림 하나 뿐이다. 인사동에 귀천이 남아 있으나 이젠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를 추억하는 이들이 간간이 찾을 뿐 문인들이 늘 함께 하던 공간은 아니다.
이런 공간들이 사라진 이유는 단 하나, '돈이 안 된다'는 경제적 논리 때문이다.
그런 인사동에서 돈 안 되는 문학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남편 이봄비 선생과 아내 김영희 선생이 운영하는 시가연(詩歌演)이다. 그곳에 가면 언제든 시낭송을 들을 수 있고, 때로는 판소리와 민요, 민중가요도 들을 수 있으며,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이 지닌 소질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봄비, 김영희 선생 부부는 시와 음악에 대해 애착이 크다.
안국동로터리에서 인사동으로 접어들어 80m 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골목길이 나온다. 골목으로 접어들면 오른쪽에 바로 시가연이 있다.
시가연엔 이생진 시인을 비롯해 많은 시인과 소리꾼들이 찾는다. 그만큼 그들에게 옹달샘 같은 역할을 한다는 증거다. 사람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게 하는 옹달샘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원천인 시심을 한 없이 길어 올리는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공간이 필요할 때 시가연이 인사동에 자리 잡았다.
벌써 3년이다. 그 기간 한결같이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공간을 유지하며 문인들과 독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넓지 않은 공간이라 마이크 없이 판소리 한 구절 소리꾼이 풀어낼 때면 소리꾼의 호흡까지 그대로 청중에게 전달된다. 꾸며진 소리가 아닌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30여 명 내외의 단체로 행사를 추진하기 좋은 시가연은 종종 만나고 싶은 시인이나 소리꾼을 초청해 함께 어울릴 수 있어 문학단체 등이 많이 이용한다.
지난 11월 초 광화문광장으로 가기 위해 들렸을 때다. 김영희 선생께서 조용히 이끌었다.
"정 시인님, 어쩌면 좋아요?"
"무슨 난처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요. 이생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글쎄 선생님께서 얼마나 고지식하신지… 한가위에 사모님께서 돌아가셨데요."
"금시초문입니다. 아무도 그런 이야기들을 안 하던데요."
"대부분 모르고 있어요. 한가위에 혼자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장례를 치르셨대요. 다들 고향에 가고 오랜만에 동기들 만나 즐거운데 짐 될 수 없다고요."
이생진 시인께서 사모님이 한가윗날 돌아가시니 제자들이나 주변의 많은 문우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시고 홀로 외롭게 장례를 치르셨다는 김영희 선생의 말씀을 듣는 순간 멍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다른 일도 아닌 사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를 치르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시다니.
이렇게 시가연은 시인과 음악가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있고, 직접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인사동 시가연(詩歌演) 그 집
잊은 듯 살아왔던 날들도 바빴다
인사동 그 길 다시 찾던 날도 바빴다
"선생님 언제 오세요?"
인사동 시가연 주인 늘 물었다
오고감에 산이고 강이나 거리 어디든 막힘없건만
왜 그리 기다리는지 몰라도 구태여 묻지 않았다
죄 지은 것 없고
단 한 마디 속상할 말 한 적 없으니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려니 하였을 뿐
늦은 시간 술 상 차려
길에 내어 준 일도 추억이요
고이 간직하여 두었던 잘 삭힌
대추차 한 잔 참으로 향기로웠네
부추전에 막걸리 잘 어우러지건만
더덕구이와 김치찜 곁들임도 감지덕진데
알맞게 삭힌 가오리찜
하루 시간 버려도 아깝지 않았네
그 정성이라면
언제고 마음 내어
길나서기 주저하지 않으리.
인사동엔 늘 푸른 소나무같은 시가연이 있어 더 반갑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오래 많은 시인과 음악인들의 주막이 되어주면 좋겠다. 세상에 한 없이 내어 놓고도 여전히 맑은 물 퐁퐁 샘솟는 옹달샘으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미술도 미술이지만 문학 자체가 사라진 데서 불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오래전 대학로나 인사동은 전시장과 문학인들로 넘쳐났다. 다방도 그들이 찾지 않으면 다른 손님을 맞을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주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늘 그곳에 가면 걸쭉하게 풀어진 목소리로 간간히 고함을 치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오감도나 학림, 프리즘 등 대학로에 있던 많은 이들이 아끼던 장소 가운데 아직 그대로 남은 곳은 학림 하나 뿐이다. 인사동에 귀천이 남아 있으나 이젠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를 추억하는 이들이 간간이 찾을 뿐 문인들이 늘 함께 하던 공간은 아니다.
이런 공간들이 사라진 이유는 단 하나, '돈이 안 된다'는 경제적 논리 때문이다.
▲ 시가연돈이 안 되는 시와 문학,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은 물론이고 화랑도 대부분 사라진 인사동에서 3년 전부터 시와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부부가 있다. ⓒ 정덕수
그런 인사동에서 돈 안 되는 문학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남편 이봄비 선생과 아내 김영희 선생이 운영하는 시가연(詩歌演)이다. 그곳에 가면 언제든 시낭송을 들을 수 있고, 때로는 판소리와 민요, 민중가요도 들을 수 있으며,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이 지닌 소질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봄비, 김영희 선생 부부는 시와 음악에 대해 애착이 크다.
안국동로터리에서 인사동으로 접어들어 80m 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골목길이 나온다. 골목으로 접어들면 오른쪽에 바로 시가연이 있다.
▲ 시가연이생진 시인의 시 ‘인사동’이 현관에 새겨져 있는 시가연은 항상 출입문 앞에 그날의 행사가 안내된다. 어느 날은 판소리를 만날 수 있고, 시인의 시낭송이나 시인과의 만남,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과의 만남도 안내된다. ⓒ 정덕수
시가연엔 이생진 시인을 비롯해 많은 시인과 소리꾼들이 찾는다. 그만큼 그들에게 옹달샘 같은 역할을 한다는 증거다. 사람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게 하는 옹달샘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원천인 시심을 한 없이 길어 올리는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공간이 필요할 때 시가연이 인사동에 자리 잡았다.
벌써 3년이다. 그 기간 한결같이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공간을 유지하며 문인들과 독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 윤동주‘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다. 바로 그 시집 초판본을 이렇게 액자로 만들어 오랫동안 전시하기도 한 곳이 인사동의 시가연이다. 그만큼 시와 시인에 대한 애정이 깊다. ⓒ 정덕수
넓지 않은 공간이라 마이크 없이 판소리 한 구절 소리꾼이 풀어낼 때면 소리꾼의 호흡까지 그대로 청중에게 전달된다. 꾸며진 소리가 아닌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30여 명 내외의 단체로 행사를 추진하기 좋은 시가연은 종종 만나고 싶은 시인이나 소리꾼을 초청해 함께 어울릴 수 있어 문학단체 등이 많이 이용한다.
지난 11월 초 광화문광장으로 가기 위해 들렸을 때다. 김영희 선생께서 조용히 이끌었다.
"정 시인님, 어쩌면 좋아요?"
"무슨 난처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요. 이생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글쎄 선생님께서 얼마나 고지식하신지… 한가위에 사모님께서 돌아가셨데요."
"금시초문입니다. 아무도 그런 이야기들을 안 하던데요."
"대부분 모르고 있어요. 한가위에 혼자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장례를 치르셨대요. 다들 고향에 가고 오랜만에 동기들 만나 즐거운데 짐 될 수 없다고요."
이생진 시인께서 사모님이 한가윗날 돌아가시니 제자들이나 주변의 많은 문우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시고 홀로 외롭게 장례를 치르셨다는 김영희 선생의 말씀을 듣는 순간 멍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다른 일도 아닌 사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를 치르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시다니.
이렇게 시가연은 시인과 음악가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있고, 직접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인사동 시가연(詩歌演) 그 집
잊은 듯 살아왔던 날들도 바빴다
인사동 그 길 다시 찾던 날도 바빴다
"선생님 언제 오세요?"
인사동 시가연 주인 늘 물었다
오고감에 산이고 강이나 거리 어디든 막힘없건만
왜 그리 기다리는지 몰라도 구태여 묻지 않았다
죄 지은 것 없고
단 한 마디 속상할 말 한 적 없으니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려니 하였을 뿐
늦은 시간 술 상 차려
길에 내어 준 일도 추억이요
고이 간직하여 두었던 잘 삭힌
대추차 한 잔 참으로 향기로웠네
부추전에 막걸리 잘 어우러지건만
더덕구이와 김치찜 곁들임도 감지덕진데
알맞게 삭힌 가오리찜
하루 시간 버려도 아깝지 않았네
그 정성이라면
언제고 마음 내어
길나서기 주저하지 않으리.
▲ 시가연‘봄비’로 불리는 이봄비 선생과 부인 김영희 선생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 계단을 내려서면 먼저 손님을 맞는다. 별면 곳곳엔 시나 그림, 잊혀진 시집이 전시되곤 한다. ⓒ 정덕수
인사동엔 늘 푸른 소나무같은 시가연이 있어 더 반갑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오래 많은 시인과 음악인들의 주막이 되어주면 좋겠다. 세상에 한 없이 내어 놓고도 여전히 맑은 물 퐁퐁 샘솟는 옹달샘으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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