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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것, 왜 이리 슬플까

[리뷰] 2004년 개봉한 영화 <자토이치>를 다시 보다

등록|2017.01.07 10:56 수정|2017.01.07 10:56
기타노 다케시는 '비트 다케시'라는 또 다른 그의 이름답게 시종일관 영화 <자토이치>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끈다. 긴박한 대결의 상황 속, 칼을 뽑으면서 옆에 있는 동료를 벤다. 밭을 갈 거나 집을 짓는 일상의 소리를 배경음과 섞어서 하나의 음악으로 표현한다. 그의 유머러스함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비현실적인 평화, 현실적인 비극

▲ '맹인 검객'이라는 설정의 <자토이치>. 그의 사연은 무엇일까. ⓒ 스폰지


자토이치는 떠돌이 생활 중 부모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게이샤 자매를 만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복수를 도와주고 마을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게 이야기의 주요 골자다. 하지만 영화는 게이샤 자매의 사연과 복수를 보여주는 장면 혹은 마을 사람들이 긴조 패거리에게 고통받는 부분을 덤덤하게 다룬다. 인문들의 기구한 사연은 건조하게 다뤄져 현실의 부조리함을 더 뚜렷하게 나타낸다.

오히려 영화는 복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액션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이 시점에서 왜 자토이치가 게이샤 자매의 복수에 뜻을 같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중심은 자토이치의 신기에 가까운 검술이 된다.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엔딩 부분에서는 자토이치를 제외한 인물들이 마을에 찾아온 평화를 축하하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 모여 화면을 보며 춤을 추는 모습은 연극이나 뮤지컬을 떠오르게 한다. 극적이며 환상적인 요소로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즉, 암울한 마을의 모습은 평면적으로 다뤄지지만, 안정을 취한 후 마을의 모습은 극적인 표현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비로 마을의 평화적인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며, 삶의 일상적인 비극은 더욱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러니 나보고 장님이라고 하지."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요소는 따로 있다. 자토이치가 '맹인 검객'이라는 설정이다. 자토이치는 영화 대부분 눈이 보이지 않는 행세를 하며 다닌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그는 자신이 사실은 눈이 보이는 사실을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이 보여도 눈으로 못 보는 게 있지."

영화는 자토이치가 눈을 감고도 혼자서 모든 적을 해치우는 모습을 통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자토이치가 돌에 걸려 넘어지는 장면은, 감독이 이 메시지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분명하게 나타낸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과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

▲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 스폰지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만으로는 한 사람의 전체를 표현할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도 그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부분으로만 보이고 평가받는다. 학생들은 성적과 학벌로, 취업준비생들은 외모나 스펙 등 이력서에 나타난 모습으로, 직장인들은 그들의 연봉으로.

그러나 우리는 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우리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영화에서 게이샤 자매 중 한 명인 '오세이'는 여장을 하고 춤을 춘다. 사람들은 그를 '눈으로만' 보고 여자 게이샤로 판단한다. 하지만 사실은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한 남자라는 사실은 '눈으로만' 볼 수 없는 이면에 존재한다.

그래서 더욱 영화의 '맹인 검객' 설정은 슬프게 다가온다. '오세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다른 모습을 봐주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기에.

▲ 2003년 일본영화 <자토이치>, 국내에는 지난 2004년 1월 30일에 개봉한 바 있다. ⓒ 스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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