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 무는 블랙리스트 의혹, 몸통은 박 대통령?
[주장] 김기춘, 조윤선 연루 의혹에 박 대통령까지... 특검 수사 30일 연장 필요하다
▲ 9일,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7차 청문회에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우)이 조윤선 문체부 장관(좌)에게 블랙리스트 문건의 존재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결국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한 조윤선 장관. 이용주 의원의 집요함이 승리한 순간이었다. ⓒ 오마이TV / 그래픽 최주호
9일 열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7차 청문회. 지난해 11월 3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던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7차 청문회에서 동행명령장이 발부되자 청문회에 출석했다. 하지만 증인선서는 없었다. 조 장관은 증인선서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위증혐의에 대해 특조위가 고발한 상태에서 과거 자신이 했던 위증 혐의가 있는 진술을 반복하든, 다른 진술을 하든 위증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궤변에 가까운 변명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의 집요한 질의다. 이용주 의원은 조 장관에게 "(문건으로 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게 맞아요? 안 맞아요?"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18번이나 반복했다. 조 장관은 때로는 한숨을 짓기도 하고 "특정 예술인들을 지원에서 배제했었던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고..."라는 등 답변을 계속 회피했다. 하지만 이용주 의원의 폭풍처럼 몰아붙이는 반복 질문에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습니다"라며 결국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다.
김기춘도 얽힌 블랙리스트, 결국 몸통은 박근혜?
▲ 김기춘은 2013년 영화 변호인을 보고,"영화를 만든 CJ를 왜 제재 안하느냐?"며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을 질책한다. 그리고 곧 있지 않아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유신을 입안했던 김기춘이 이번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입안한 것이다. ⓒ JTBC
유신을 입안한 공작 정치의 대가 김기춘. 그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1975년 11월 22일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사건(11.22 사건)'을 언론 앞에서 직접 발표했다. 40년이 지난 후, 간첩으로 몰렸던 이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김기춘은 사실상 이 간첩 사건을 조작한 장본인으로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용공 조작의 대가인 김기춘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으며 또 다른 조작 정치를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검과 언론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주범으로 그를 지목하고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김기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2013년 영화 <변호인> 보고 못마땅해하면서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는 회사들을 제재하지 않느냐"고 따지듯 말했다고 증언했다.
더 나아가 김기춘은 "순수 문화예술 쪽에서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에 대해 왜 지원을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러한 요구는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다. 유 전 장관은 김기춘이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 등을 통해 문체부를 닦달했고, 이것이 결국 블랙리스트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는 진술을 한다. 유 전 장관은 최초 블랙리스트를 파쇄할 것을 지시하고 김기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결국 유 전 장관은 후임 인선도 없이 1년만에 면직 당하게 된다. 허수아비 장관으로 불린 김종덕 전 장관이 후임이 되고, 김종덕 후임으로 조윤선이 뒤를 잇는다. 블랙리스트를 더 노골적으로 실행할 사람들을 계속해서 인선한 것이다. ⓒ JTBC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제작과 유통 과정을 이렇게 추정하고 있다. 김기춘이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고, 정무수석실과 교육문화수석실이 (지난해 12월 30일 <중앙일보>의 전 문체부 고위관료 A씨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국민소통비서관이 주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작성하여 문체부 예술정책과에 전달했다. 예술정책과에서는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으로 하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 블랙리스트는 좀 더 명확하고 확실하게 문화예술계를 탄압하는 데 사용된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문화 예술계 좌파 책동 투쟁적 대응', '영화계 좌파 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이라는 충격적 지시가 나온다.
10일, 청와대와 문체부 관계자들의 특검 진술을 다룬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창비'와 '문학동네' 등 특정 출판사를 꼭 집어 정부 지원 삭감을 지시했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이 출판사들을 배제할 것을 지시한 이유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정부 비판적 내용의 책을 출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중앙일보>는 블랙리스트에 대해 김기춘이 '빨갱이 말살정책'으로 불렀다는 관련자 진술을 특검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유신시대로 완전히 회귀한 느낌이다. 간첩 조작 사건에 얽힌 김기춘이 40여 년이 지나서도 또 다른 조작을 일삼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실제 문화예술인들을 제재했다. 혹시 나중에 이들 중 몇몇을 간첩으로 몰고 가려고 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박 대통령 또한 블랙리스트를 보고받은 것뿐만 아니라 직접 관련 내용을 지시했을 가능성도 농후해 보인다. 이번 블랙리스트의 최종 몸통은 박 대통령이 아닐지 의심 간다.
김영한 비망록 속 '우병우팀'
▲ 김기춘은 우병우팀에게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될 예정이던 홍성담 화백의 그림 '세월오월'에 대해 보수단체를 통한 홍 화백 고발을 지시한다. ⓒ JTBC
김영한 비망록에는 홍성담 화백이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가 연상되는 제목을 단 홍성담 화백 작품 <세월오월>. 박 대통령을 김기춘이 조종하는 허수아비로 풍자했다. (실제 조종자는 최순실이었지만). 비망록에는 '우병우팀,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 광주비엔날레에서 홍 화백의 그림은 끝내 걸리지 못했고, 보수단체는 홍 화백을 고발한다.
우병우는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다. 민정수석실은 사정 감찰의 기능도 한다. 우병우팀을 통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사찰했을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민정수석인 김영한 전 수석을 건너뛰고 김기춘이 우병우를 통해 일을 보았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유족에 따르면, 김영한 전 수석은 쫓겨나듯 청와대를 그만두고 나왔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은 청와대를 나온 후 매일 폭음을 했고 급성간암으로 사망한다. 김 전 수석의 후임으로 우병우가 승진하며 민정수석이 된다.
우병우의 영전에 대해 당시 정치권과 검찰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사정기관을 관장하는 민정수석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보다 연배와 기수에서 너무 차이 나게 어렸던 것이다. 기수를 중요시하는 검찰조직에서는 큰 충격이었다.(검찰에서는 자신의 기수보다 낮은 후배가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할 경우 옷을 벗는 관례가 있다.)
블랙리스트의 최초 입안자가 김기춘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만큼, 이를 실행했을 법한 우병우가 계속해서 민정수석실에서 박근혜와 김기춘의 복심대로 사정기관을 장악하고, 블랙리스트에 나오는 인물을 사찰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병우는 이렇게 최고권력의 주구로 역할을 잘 수행했고(특히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때 대응) 그랬기에 청와대의 치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야당이 강력히 요구한 우병우 경질을 끝까지 무시하며 비호했던 것을 상기해보자.
특검 왜 블랙리스트에 대해 포커스 맞추나?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주요 인사들. 1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한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통제의 한 모습이다. ⓒ JTBC
검찰이 놓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특검 수사를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다. 특검은 삼성의 뇌물죄 수사와 블랙리스트 의혹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지난 9일, 특검은 블랙리스트 관련 4인방인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등에 대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이들의 구속 여부를 보고 실제 몸통들인 조윤선과 김기춘을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블랙리스트에 집중하는 이유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예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었고, 이 의혹만 제대로 밝혀지더라도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가 충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 22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하며 '예술의 자유'에 대해 보장하고 있다. 예술의 자유는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는 자유이며, 단체도 예술의 자유 주체로 보아야 한다. 헌재도 예술출판자 등도 예술표현의 자유를 갖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91헌바17).
전술한 보도 내용대로 박 대통령이 특정출판사들을 제재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명백한 헌법 위반으로 탄핵 인용 사유가 될 수 있다. 또한 1만여 명에 달하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이 암묵적 묵인 또는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나온다면 이는 예술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을 위반한 헌정질서 파괴에 해당한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 주목된다. 10일 SBS에 따르면 특검은 김기춘이 청와대 각 수석비서관실을 총동원하여 모든 분야의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특검은 정무수석실이 각 분야 블랙리스트의 통합 관리 및 업무 조율의 역할을 맡은 정황도 파악했다. 따라서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조윤선이 블랙리스트에 깊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수사를 진행할수록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등장하는 만큼, 특검 수사 기간을 반드시 연장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최주호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http://blog.ohmynews.com/rkeldj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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