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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의 영원한 거목, 유벤투스

유벤투스의 꾸준하고도 당당한 행보

등록|2017.02.02 12:36 수정|2017.02.02 12:37

▲ 유벤투스 ⓒ 유벤투스 인스타그램 캡처


1940년대 세리에A는 발렌티노 마졸라를 중심으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토리노 FC의 시대였다. 토리노는 1942-1943시즌부터 1948-1949시즌까지 총 다섯 번의 스쿠데토(리그 우승)를 차지해 세리에A 패자로 거듭났다. 하지만 최악의 비행기 사고인 '리스본 참사' 이후 토리노는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최강자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세리에A는 대혼란을 겪는다. 많은 팀이 스쿠데토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곧 토리노에 있는 또 다른 팀에 의해 경쟁은 막을 내린다. 바로 이탈리아 축구의 자존심, 유벤투스다.

최초로 별을 새기다

토리노 몰락 이후 유벤투스는 1949-1950시즌부터 1960-1961시즌까지 다섯 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열두 번의 리그가 열리는 동안 다섯 번이나 우승을 달성했으니, 언뜻 보면 세리에A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독주를 펼친 건 아니었다. 같은 기간 AC 밀란은 네 번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인테르 역시 두 번의 스쿠데토를 유니폼에 새겼다.

그래도 1958년 열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이탈리아 클럽 중 최초로 유니폼에 별을 새겼다는 점에서 비안코네리의 판정승을 들어줄 만했다. 별을 새긴 이후 유벤투스는 기세를 한껏 높였다. 1960년대 시작과 함께 리그 2연패를 달성해 밀라노 형제와의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후 '전설의 골리' 디노 조프와 '하얀 깃털' 로베르토 베테가 활약한 1970년대 중반에도 2연속 스쿠데토(1972~1973)를 지키며 세리에A의 확실한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트라파토니 왕조의 시작을 알리다

이탈리아 내에서만큼은 두려울 것 없던 유벤투스였지만 이상하게도 무대를 유럽으로 옮기면 힘을 쓰지 못했다. 1955년 유러피언컵을 시작으로 유벤투스는 번번이 유럽대항전에서 고배를 들이켰다. 같은 시기 리그 라이벌인 AC 밀란과 인테르가 각각 두 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루며 유럽 맹주로 떠오른 점을 비교하면 더욱더 초라해지는 행보였다. 특히나 1973년에는 결승전서 '토털사커'로 위세를 떨친 아약스에게 패하며 코앞에서 빅이어를 놓쳐버렸다.

유럽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커지자 마침내 유벤투스는 승부수를 던진다. 그들이 자신 있게 내비친 카드는 바로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었다. '정열의 화신'이라 불릴 정도로 그라운드 안팎에서 열성적으로 선수들을 지휘하는 트라파토니는 유벤투스에 부족했던 2%를 채워줄 적임자였다.

▲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과 플라티니 ⓒ 유벤투스 공식 페이스북


명장을 데려왔으니 그에 걸맞은 전사들도 있어야 하는 법. 지금도 짱짱한 스쿼드를 자랑하지만 1980년대 트라파토니와 함께 왕조 구축을 이룬 유벤투스 스쿼드의 면면은 역대급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우선 1982 스페인 월드컵서 주가를 드높인 파올로 로시, 미셸 플라티니, 즈비그니에프 보니엑이라는 가공할 만한 공격 조합으로 창끝을 다듬었다. 이들을 든든히 보좌한 마르코 타르델리와 마시보 보니니도 빼놓을 수 없는 보석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1970년대 수비 레전드 클라우디오 젠틸레의 잔상을 지운 시레아-파브레오 센터백 콤비 역시 비안코네리의 든든한 방패막이였다.

최고의 명장과 이를 따르는 용맹스런 전사들을 앞세운 유벤투스는 본격적으로 왕조 구축을 이루기 시작한다. 트라파토니의 유벤투스는 1977~1978 세리에A 2연패를 달성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비록 유러피언컵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1977년, 아틀레틱 빌바오를 꺾고 UEFA컵 우승을 달성해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더해 1984년, 포르투갈 강호 FC 포르투를 상대로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루며 우물 밖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최악의 결승전- 헤이젤 참사

UEFA컵, 컵위너스컵까지 석권하며 예열을 마친 유벤투스는 1984-1985시즌 들어 유러피언컵 정복을 시작한다. 2년 전 결승전서 마가트가 이끄는 함부르크에 아쉽게 패해 목전에서 빅이어를 놓친 터라 더욱 독기 품고 대회에 임했다. 비안코네리 군단은 핀란드 클럽 라이브를 시작으로 그라스호퍼, 스파르타 프라하, 보르도를 차례로 격파하고 결승전에 올랐다.

4경기에서 총 18득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공격수 뺨치는 득점력을 갖고 있던 미드필더 플라티니(7골)와 토종 공격수 로시(5골)가 연일 화력을 뿜었다. 더욱 놀라운 건 보르도와의 4강 2차전 패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유벤투스의 유러피언컵 우승 의지는 대단했다.

결승전 파트너는 '붉은 제국' 리버풀이었다. 당시 리버풀은 전 시즌 AS 로마를 꺾고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유벤투스를 맞이했다. 막강한 전력을 갖춘 리버풀이었으나 유벤투스의 기세도 만만찮았다. 이미 1984년 유러피언 슈퍼컵서 '아름다운 밤' 보니엑의 활약에 힘입어 한 차례 레즈를 꺽은 바 있어 자신감이 넘쳤다.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는 두 팀이 결승 길목에서 만났으니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진 걸로 예상했으나, 안타깝게도 비극적인 참사가 그들을 기다렸다. 바로 헤이젤 참사다. 경기 시작 전부터 양 팀 팬들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리버풀 훌리건들의 위협에 겁을 먹은 유벤투스 팬들이 출구로 도망치다 무려 39명이 압사를 당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

대참사로 인해 경기는 1시간 정도 지연됐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고 경기를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석연치 않은 판정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 시작 후 유벤투스는 리버풀 미드필더 로니 웰란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허용하지만 타코니의 선방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후반 11분 페널티 박스로 쇄도하는 보니엑이 상대 수비수에게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보니엑이 파울을 당한 지점이 페널티박스 밖이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 1985 유러피언컵 결승전서 골을 성공시킨 플라티니 ⓒ 유벤투스 공식 페이스북


어찌 됐든 유벤투스는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지 않고 플라티니가 페널티골을 성공시켜 1-0으로 앞선다. 실점을 허용한 리버풀은 동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반면 유벤투스는 선제골 이후 운도 따랐다. 보니니가 패널티박스 지역에서 웰란에게 결정적 파울을 범했으나 주심은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 결국, 플라티니의 페널티골을 잘 지킨 비안코네리 군단이 그토록 고대하던 빅이어를 품는데 성공했다.

석연치 않은 판정 때문에 비안코네리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이 유러피언컵을 향해 걸어온 발자취를 곱씹어보면 응당 우승할 자격이 있었다.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은 바로 유벤투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유러피언컵 우승 전만 해도 유럽 무대에서 번번이 실패를 겪은 유벤투스는 1985년 유러피언컵 우승 후 3대 유럽 클럽 대항전(유러피언컵, 컵 위너스컵, 유로파리그)을 모두 제패한 최초의 클럽으로 등극했다. 더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유럽 최고의 패자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꾸준하고도 당당한 행보는 앞으로도 영원히

▲ 유벤투스의 행보는 앞으로도 당당할 것이다. ⓒ 유벤투스 공식 페이스북


유러피언컵 우승 후 트라파토니 감독을 비롯해 영광을 일군 스타들이 팀을 떠나자 유벤투스는 약 10년 동안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사실 슬럼프라 칭하기에도 머쓱할 정도다. 후임자인 디노 조프가 1988년 부임해 코파 이탈리아, 유로파리그 우승을 한 차례씩 일궈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슬럼프라 표현한 건 그들이 유벤투스이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최정상의 자리에 위치한 모습이 익숙한 그들에게 있어 잠깐의 숨 고르기도 허용되지 않는 걸 보면 이 또한 최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도 그렇고 유벤투스는 항상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상의 자리에 서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사이에도 흥망성쇠를 겪는 클럽이 부지기수임을 고려하면 정말이지 꾸준하고 또 꾸준했다. 예년보다 위상이 꺾인 세리에A가 유럽 어디에서도 쉽사리 무시받지 않는 것도 유벤투스라는 거목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색-하얀색 무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풍스러움과 쉬이 무너지지 않는 그들의 근엄함에서도 알 수 있듯 유벤투스의 행보는 앞으로도 당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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