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동갑내기 예술가 모네와 졸라의 파리

[인문학자와 함께하는 말랑말랑 파리여행 31]

등록|2017.01.20 12:00 수정|2017.01.20 12:01
"드니즈는 자신의 두 남동생과 생 라자르 역에서부터 걸어왔다. 셰르부르에서 기차를 타고 3등칸의 딱딱한 나무 의자에서 밤을 지새운 후 파리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드니즈는 한 손으로 어린 동생 페페를 꼭 잡고 있었고, 장이 그 뒤를 따라왔다. 기차 여행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세 남매는 거대한 파리 한가운데서 헤매는 동안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높다란 건물들을 올려다보느라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다."

▲ 파리 풍경 ⓒ 김윤주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의 장편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의 첫 부분이다. 시골 출신 여주인공 드니즈 보뒤가 부모를 잃고 두 동생과 함께 거대한 도시 파리에 도착한 시점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파리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셰(Bon Marché)'를 모델로 하였으며, 주인공 무레 사장은 자본주의의 유혹과 환영을, 여주인공 드니즈는 이에 굴하지 않는 강한 인간 정신을 상징한다.

1883년 출간된 이 소설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던 시대의 파리 풍경을 그리고 있다. 'Belle Époque'는 'beautiful era', 즉,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다. 근 80여 년에 걸친 지루하고 격렬했던 혁명의 시기가 끝나고 제3공화국이 들어선 것이 1870년. 이 무렵부터 1914년 6월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전 인류가 화염에 휩싸이는 비극이 벌이지기 이전까지, 어렵사리 맞은 이 평화의 시기에 파리는 전에 없던 풍요를 경험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넘어가던 이 시기를 후대 사람들이 진한 향수의 감상을 실어 부르는 이름이 '벨 에포크'이다.

▲ 에밀 졸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시공사 ⓒ 김윤주


전기와 증기기관의 발달은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고, 과학 기술의 혁신과 경제적 번영은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다. 낙관주의가 풍요로운 사회 전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었다. 도시는 나날이 모습을 달리하고 확장되어 갔으며, 사람들은 말끔하게 정비된 화려한 도시로 몰려들었다. 풍요와 번영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시대는 19세기와 20세기의 사이에 선 인간의 세기말적 허무와 공허의 체험 공간이기도 했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여가 시간이 늘어 표면적으로는 여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도시 빈민은 증가하고 정신적 공허와 불안은 커져만 갔다.

거대한 자본이 시장을 독식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 가게와 상인이 맥없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동안 믿어왔던 가치와 도덕이 허물어지고 그러한 위기의 상황에 무력한 인간을 체험하게 된다. 새롭게 구축된 사회 질서 속에선 물질 만능과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속도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사회 전반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도시는 인간의 욕망과 환영으로 들끓는다.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누구나 이방인이다.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바로 이런 욕망과 환영의 용광로인 도시를 '백화점'이라는 현대적 공간, 자본주의의 상징인 이 공간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불안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예전엔 예배당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사람들은 이제 백화점에서 죽이며 공허하고 외로운 시간들을 채워 간다.

▲ 파리 풍경 ⓒ 김윤주


자본과 탐욕으로 어지러운 거대한 도시와 현대적 욕망과 유혹의 공간인 백화점, 그 안에서 이루어질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해 작가 에밀 졸라가 선택한 첫 공간은 '생 라자르 역'이었다. 당시 생 라자르 역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졸라와 같은 해에 태어난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Oscar Monet, 1840-1926)도 1877년, 78년 무렵, '생 라자르 역'이라는 제목의 기차 역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를 전후로 파리와 인근 지역에서는, 미술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역사를 만들어낼 일군의 예술가들이 일제히 태어난다.

모네보다 한 해 앞선 1839년에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과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 1839-1899)가, 모네가 태어난 이듬해 1841년에는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가, 그리고 몇 년 후엔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까지.

물론 그들보다 조금 앞선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1834-1917),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o, 1830-1903)도 빼 놓을 수 없다.

▲ 파리 풍경 ⓒ 김윤주


각자의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은 세월이 흘러 파리의 화실과 카페에서 만난다. 그리고 1874년 개최한 최초의 단체 전시회에서 그들이 의도한 적 없지만 숙명이었던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 개성 강한 작품 세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서로의 모습을 그려주고,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갔다. 바지유는 르누아르를, 르누아르는 모네와 시슬레와 바지유를, 세잔은 피사로를, 드가는 귀스타브 모로를, 마네는 모리조와 모네의 가족을 그린다.

시공사에서 출간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표지 앞날개에는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1868)이 실려 있다. 마네는 자신의 작품 '올랭피아'가 화단으로부터 비난 일색의 반응만을 받고 있을 때 오직 졸라만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옹호하고 찬사를 보내 준 것에 대한 화답으로 이 작품을 그렸다. 졸라가 손에 들고 있는 책 <그림의 역사>나 졸라 뒤에 보이는 일본풍 그림 등은 모두 마네가 세상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당시 화가와 작가와 예술가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세상에 소리를 냈는지 보여주는 그림이다.

▲ 에두아르 마네, <에밀 졸라의 초상>(1868), 오르세 미술관 ⓒ 김윤주


화가들 중 부유했던 바지유는 가난한 모네와 르누아르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게 한다. 나중에 작업실을 바티뇰로 옮긴 후에는 시슬레도 같은 건물에서 살게 된다. 모네의 오랜 친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는 프랑스 총리를 지냈다. 그의 권유가 없었으면,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연작을 오늘날 우리는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단체전에 다섯 차례나 그림을 내 건 화가였지만 후원가로 더 이름이 높았다. 은행가인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거부로, 가난한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는 데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 화가와 작가와 음악가와 후원자와 관료들은 참으로 복잡하게 얽혀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나갔다. 이들의 관계망과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는 도시의 거대하고 화려한 외관보다 더 복잡하고 조밀하다.

▲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 비 오는 날> ⓒ 김윤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첫 부분, 시골에서 막 올라온 드니즈와 어린 두 동생은 거대하고 화려한 파리의 모습에 어지럼증을 느낀다. 당시 도시의 모습은 카유보트의 그림에서처럼 현대적인 건물과 도로로 말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저분한 중세도시의 흔적을 싹 거둬낸 깨끗한 거리엔 세련된 차림새의 도시인이 활보를 한다.

비 오는 날에도 산책이 가능해진 도시의 거리는 산뜻하기 이를 데 없다. 방금 대도시 한복판에 던져진 이들이 느꼈을 혼란이야 거대한 도시의 낯선 풍경 때문이었겠지만, 그들이 아직 감지하지 못한, 이 도시 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변화의 기류는 도시 외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힘 있는 것이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