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폭설 오던 날, '대박' 택배 받았습니다

겨울이 오면 택배 올까 두려웠던 내가 '눈님' 덕분에 변했다

등록|2017.01.23 09:56 수정|2017.01.23 09:56
눈발이 휘몰아치는 며칠 전 아침. 우체국에서 카톡이 왔다. 오늘 택배 배달한다고. '보낼 사람 딱히 없는데, 누구지?'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부터 앞선다. 이렇게 눈이 휘날리는데 택배 기사님 어찌 오시려나, 우체국 택배는 거의 오토바이 타고 오던데….' 상하는 먹을거리 아님, 다음 주에 오시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다행히 보낸 사람 이름이 찍혀 있다. 낯익은 친구. 전화를 거니 사과를 주문해 보낸다나. 말 한마디 없었는데, 깜짝 선물로 준비했나 보다. 내가 사과 보내줘도 시원찮을, 돈도 많이 못 버는 이 친구가…. 짠한 감동이 밀려오지만 '눈길 택배' 생각에 얼른 정신 차리고 말을 건넨다.

눈 평펑 오는데 택배도 온다니 걱정, 또 걱정 눈발이 휘몰아치는 아침. 우체국에서 택배 배달한다는 카톡이 왔다.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부터 앞선다. 이렇게 눈이 휘날리는데 택배 기사님 어찌 오시려나, 우체국 택배는 거의 오토바이 타고 오던데…. ⓒ 조혜원


"여기 눈 엄청 많이 와서 택배기사님 오기 어려울까 봐, 내용물 물어봤지. 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사과를 상자로 보내고 그래.^^ 사과면 며칠 늦게 받아도 되겠다. 택배기사님한테 연락해 볼게."

깜짝 선물 리듬을 끊어도 유분수지. (친구야, 전화하고 나서 좀 미안했다. 그래도 이해해 줘라. 눈 오는 날 산골 택배는 뭔가 엄청 어려워서는. ㅜㅜ) 택배 기사님께 바로 전화.

"기사님~ 어디 마을 누군데요, 오늘 저희 것만 있으면 배달 나중에 해주셔도 되는데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오시기 힘들까 봐요."

우리 집 말고 다른 배달도 있어서 와야만 한단다. 어쩔 수 없지. 에구, 저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오토바이 타고 어찌 오실지 걱정 또 걱정…. 안 되겠다, 눈을 치워야겠다. 택배 기사님 오시기 전에!

부부 눈 청소단 출동!

부부 눈 청소단 출동! 내 집 앞 눈을 쓸어 보고자 나간 우리 부부. 온통 하얀 저 마을길이 모두 내 집 앞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길, 남편은 저 아래 마을회관 길까지 눈을 쓴다, 아니 젖먹던 힘까지 쓴다. ⓒ 조혜원


점심 먹고 나니 눈이 잦아든다. (차라리 치울 엄두도 못 내게 계속 내리길, 솔직히 바라기도 했으나) 눈님이 잠시 쉬는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다시 또 오시더라도.

산골 부부, 내 집 앞 눈을 쓸어 보고자 나간다. 눈에 보이는 마을 길이 온통 하얗다. 산골 마을에서 겨울을 네 번째 보내는 우리 부부, 이미 알고 있다. 온통 하얀 저 마을 길이 모두 내 집 앞이라는 걸. 부부 눈 청소단 출동! 나는 우리 집 가까운 길, 남편은 집에서 보이지 않는, 저 아래 마을회관 길까지 눈을 쓴다, 아니 젖 먹던 힘까지 마구 쓴다. 땀이 뻘뻘 나도록.

'바그적, 버그적, 벅벅.' 눈삽에 눈 쓸리는 낯익은 그 소리에 마을 분들 하나둘씩 등장. 팔순 가까운 앞집 할머니가 가장 먼저 말을 건네신다. "걸어 다니는 길만 쓸어도 되는데." "택배도 오고 차도 다녀야 하잖아요. 주말에 계속 눈 온다는데 조금이라도 치워 놓아야 나중에 또 치울 때 쉽죠." "그랴~"

끙끙대며 눈을 밀어내는데 저 아래 쪽에 한 아주머니가 보이고. "뭘 거기까지 쓸어요!"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남편도 저 아래서 쓸고 있어요." 살짝 웃으면서 돌아가신다. 올해, 처음 뵙는다. 눈 쓸러 나오길 잘했지, 이렇게라도 새해 인사드릴 수 있어서. 눈이 많이 와 줘서 오히려 고맙다.

우리에게도 전성기가 있다!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털 고무장화랑 여기저기 뜯어진 겨울장갑, 그리고 눈삽을 꺼냈다. 눈이 와야만 바깥 구경을 하는 이 물건들은 오랜만에 제 세상을 만나, 전성기를 누렸다. ⓒ 조혜원


오토바이쯤은 거뜬히! 두 시간쯤 눈을 치우고 나니, 오토바이쯤 거뜬히 올라올 수 있게 길이 말끔해졌다. 그리고 눈 치우자마자 택배 기사님이 오셨다. 예상대로 오토바이를 타시고. ⓒ 조혜원


"눈 다 치우신 거예요? ^^"

그렇게 두 시간쯤 하고 나니 온몸이 힘겹다. 오후 일정 딱히 없지만, 오후 일정 접고 쉬어 버린다. 그래도 좋다. 올겨울, 눈이 너무 덜 와서 겨울 가뭄 들까 걱정이었는데. 눈 덕분에 마을 분들하고 인사도 나누었고. 게다가 눈이 와야만 세상 빛을 보는 눈삽과 털 고무장화,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제 몫을 다하며 전성기를 누린 날이기도 하니까.

눈 치우고 잠시 쉬는 그때, 전화로 먼저 만난 택배기사님이 오토바이 끌고 오셨다. 아, 빨리 치우길 잘했다, 잘했어! "눈 다 치우신 거예요?^^" 어느 때보다 환히 웃는 얼굴로 사과 상자랑 함께 인사말을 건네는 택배 기사님, 우리가 치웠는지 어찌 아셨을까? "네, 기사님 오시기 좋으라고 열심히 치웠어요."

꼭 기사님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중요하게 작용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 생색 좀 내 보았다. 껍질째 먹는 건강 사과, 뚜껑을 여니 향긋한 내음이 집 안에 가득 퍼진다. 사과 맛도 좋지, 택배기사님 밝은 얼굴에 기분도 좋지, 깜짝 선물에는 실패한 친구한테 이 기분 건네고 싶어서 카톡을 보낸다.

'사과 잘 받았어~ 너 평생 할 사과, 오늘 다 보낸 거다아~^^ 사과 엄청 맛있어. 잘 먹을게!'

껍찔째 먹는 숲골 사과 껍질째 먹는 건강 사과, 뚜껑을 여니 향긋한 내음이 집 안에 가득 퍼진다. 택배기사님 밝은 얼굴에 좋았던 기분, 사과 맛보며 한껏 더 올라간다. 깜짝 놀라는 데는 비록 실패했지만. ⓒ 조혜원


세상에, 또 택배다!

사과 내음에, 친구의 짠한 마음에 흠뻑 취해 있는 가운데 차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현관을 두드린다. '누구지?'

세상에, 또 택배다! 이번엔 사진 달력! 여러 해 전 일 하다 인연을 맺은 사진작가 선생님. 얼마 전 자기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보내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딱 오늘 도착한 거다. '오, 행운이시여! 오늘 내게 제대로 와주셨나이다!' 눈을 치우지 않았다면 달력 건네주신 택배기사님도 차 끌고 예까지 오긴 참 어려웠을 텐데. 깜짝 선물들이 아녔어도 이 눈은 치우긴 했을 테지만, 눈 쓸어낸 보람을 이렇게 제곱으로 안겨 주시다니. 아, 오늘 눈 쓸기를 잘했다. 아니, 눈님이 정말 잘 와주셨다.

눈과 함께 온 깜짝 선물, 여기서 끝인 줄 알았건만, 또다시 내게 온 선물. 우리 집 위쪽에 컨테이너 두고 귀농 준비하는 아저씨가, 이 눈길을 뚫고 오셨다. 눈길에 설마 오시랴 싶어 윗길은 쓸지 않았건만, 아래쪽이라도 눈 치운 게 고마우셨는지 아귀포를 주신다. 전에도 더러 맛보게 해 주신, 그래서 우리 부부 고급 술안주 몫을 톡톡히 했던 여수산 맛난 아귀포를, 하필 또 오늘!

아귀포 선물까지 받아들고 나니, 좀 멍하다. 우리 부부, 눈 한두 시간 쓸었을 뿐인데, 눈 치운 보람을 느끼기엔 이 많은 선물들이 도체 감당이 안 되는 거다. 우리 부부와 얽히고설킨 이 인연들은 눈 펑펑 오는 이 날, 이번 겨울 들어 처음 눈을 치운 오늘, 마치 다 같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한가득 깜짝 선물을 안겨 주었다.

깜짝 선물 릴레이멋진 사진 달력에 이어 여수산 아귀포까지. 눈이 펑펑 온 날, 깜짝 선물 릴레이가 이어졌다. 뭔가 감당이 안 될 만큼. ⓒ 조혜원


눈이 오는 날 받는 선물이란. 다른 때보다, 다른 무엇보다, 가슴 애타고도 찡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산골 살이 4년째 들어선 지금에야 제대로 느낀다. 그전에는, 집까지 못 올라오겠다며 하소연하는 택배기사님들께 화날 때가 많았다. 도시에서 만만하게 누렸던 택배 수령자 생활, 산골에 산다고 해서 못 온다는 둥, 마을회관에 놓겠다는 둥, 면으로 나와 달라는 둥, 이런 소리를 들을 때 솔직히 열, 많이 받았다. 

겨울이 오면 택배가 올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눈마저 오면, 누가 택배라도 보낼까 봐 지레 걱정부터 했다. 두렵기까지 했다. 누가 택배 보낼까 연락 오면 손사래 치며 말리기도 여러 번. (시어머니의 사랑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땐, 시어머니 표 택배를 막는 노릇을 눈님이 톡톡히 해 주었다만) 전화 올일 거의 없어서 모르는 번호가 뜨면 여지없이 택배 기사님. 전화기 너머로 여지없이 들려오던, '거기도 눈 많죠? 어디 어디에 두고 갈게요' 하던 목소리. 그럴 때마다 화를 낼 수도 안 낼 수도 없어서 속이 엄청 부글거렸다. '택배 기사님이 오기 어려운 길은, 우리도 받으러 나가기 힘든 길이거든요! ㅜㅜ'

눈 덕분에, 깜짝 선물 안겨준 고마운 인연들 덕분에, 택배기사님들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볼 마음을 얻은 것 같다. 이 마음 잊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꼬불꼬불 산길, 마을 길 다니느라 고생 많으신 수많은 시골 택배 기사님들의 삶도, 마음도 이해하며 더불어 잘 살아가고 싶다. 다 떠나서, 그분들이 없으면 늘 자식들에게 보내는 것 많은 마을 어르신들도, 우리처럼 주야장천 받는 것 많은 집도 그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지니.

눈을 그대로 두고 싶다 눈 치운 지 하루 지나니 다시금 눈이 온다. 눈은 땅 위에 그대로 얹혀 있다 햇볕에 자연스레 녹아야 맞지 않을까. 그게 이 지구에도, 자연에도 훨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 조혜원


눈 치우고 하루를 넘기자마자 다시금 눈이 온다. 사람이, 차가 다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저 새하얀 눈을 밀어내기는 하지만, 눈은 땅 위에 그대로 얹혀 있다 햇볕에 자연스레 녹아야 맞지 않을까. 그게 이 지구에도, 자연에도 훨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최소한만 길목을 내거나 그조차 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 살아가는 삶을 다시금 꿈꿔 본다. 지금은 나도, 사람보다는 차가 다닐 수 있게 눈을 치워야만 마음이 놓이기에, 나부터 아직 멀었다. 그래도 그런 삶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조금씩, 끈질기게…. 그전까지는 택배 기사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눈을 치워야지. 내 집 앞부터 저 아랫마을길까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