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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하나만 달랑 들고 노르웨이행, 겨울빛 보고 싶었다

노란봉고차를 타고 1만 5천 킬로미터 첼로 버스킹,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

등록|2017.01.24 12:22 수정|2017.01.24 12:22

▲ '아무나 따라하지 말 것.' 이라는 경고문구 대신에 '용기가 있는 자라면 따라할 것'이라고 해주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첼로 버스킹 여행기. ⓒ 필로소픽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걸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나의 일상을 바꾼다는 건 마치 안전하고 큰 배에서 뛰어내려 거친 물살을 향해 달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저하고만 있을 때 벌어지는 비극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일은 변화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파리가 날리는 바를 운영하는 친구의 가게에 얹혀살던 그녀의 삶은 진즉에 바뀌었어야 했다. 이제 남자친구는 멀리 떠났고 친구는 사고로 영영 떠나버렸다. 노란색 봉고차를 몰고 첼로를 켜고 버스킹을 한 돈으로 영국에서 노르웨이까지 가겠다는 한 여인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덜덜거리는 낡은 승합차를 몰고 랜즈엔드에서 타인사이드 터널까지 열네 시간을 달린 뒤, 노르웨이행 페리를 타고 스물 네 시간 동안 북해를 건넌 건, 내가 뭐 대단히 독립적이라거나 용감해서도 아니고 나란 사람은 원래 이런 여행이 일상이라서도 절대 아니었다. 내가 길을 나선 건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안 해본 짓이 없는 두 가지 이유, 즉 사랑과 죽음 때문이었다."

무전여행이 로맨틱하다고?

나 역시도 무전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가이드북에서 본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이 뺏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차표를 끊어 떠났다.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여행은 쉽지 않았다. 폭우로 소지품이 쫄딱 젖어 며칠씩 발이 묶이기도 했고 배탈이 나 숙소에서 끙끙 앓기도 했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큰 자유가 주어진다는 건 매력이지만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건 더없이 불안한 일이기도 했다. 그 후로는 감히 혼자서는 계획 없이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여정에 박수를 보내기도 전에 나까지 덜컥 겁이 났다.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버스킹을 하지 않을 땐 걱정을 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내내 걱정을 했다. 주로 돈 걱정이었다. (중략) 이러다 굶어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지 않을 땐 내 첼로가 망가지거나 부서질까봐 걱정했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크게 다칠까 봐 걱정했고, 버스킹 허가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중략) 걱정 때문에 심장마비가 올까 봐 걱정했다."

첼로로 인생을 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의 여정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었던 건 첼로를 가지고 연주를 하며 경비를 충당하겠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사실 그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에 가까웠다. 프로연주자도 아닌 그녀가 갑자기 첼로로 버스킹을 하겠다니.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예술을 너무 먼 것이라고 여겨왔다.

심심할 때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접어 작품을 만들던 아이는 이제 영화를 보고 텔레비전을 보고 옷을 사고 커피를 마시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버스킹을 하며 노르웨이로 떠나겠다는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단순히 경비를 벌기 위해 벌이는 소동극이 아닌 첼로로 인생을 다시 켜겠다는 일종의 출사표와 같아보였으니까.

길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인생을 책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있다. 학교에서 사회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 삶이 뭔지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처럼 내가 배움을 경험하는 곳에는 한계가 없다. 그녀는 거리에서 모든 걸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의 호의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뭔지 상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죽음이란 뭔지 그 모든 혼란스러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길에서 얻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자세만 가지고 있다면 어디든 인생의 학교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걸 그녀도 나도 깨닫게 되었다.

겨울의 빛을 찾아

그녀가 노르웨이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세상의 끝에 서서 겨울의 빛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고생길이 훤한 이 계획이 나를 포함한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건 겨울에 대한 로망 때문이기도 할 거다.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고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찬 공기는 더 없이 신선하다. 우리에게도 용기가 있다면 계기가 생긴다면 그녀처럼 겨울의 빛을 찾아 떠날 수 있을 거다.

"오랫동안 꿈꾸어온 곳 노르카프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극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 거대하고 붉은 악어와 닮았다. 하늘에 무수한 별이 흩뿌려져지지는 않았지만 태양은 무대 위를 떠나고 싶지 않은 팬터마임 배우처럼 연신 고개를 까닥이며 수평선 주위에서 부지런히 흔들리고 있었다. (중략) 그러고는 땅으로 얼굴을 돌리고 울었다. 마침내 해냈다. 한밤중의 태양은 과연 사람들의 말처럼 굉장했다."

이 모든 여정이 끝났을 때 그녀의 인생이 변했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노란 봉고차를 타고 노르웨이까지 다녀왔다는 건 물론 개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실제 남긴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여정을 통해 그녀는 깨달았을 거다. 앞으로의 삶은 절대 그 전과는 같지 않을 거라는 걸.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 길 위에서부터.

"그렇지만 이제 나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안다.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며 허황된 길들. 익숙하지도 않으며 안전하지도 않으며 유명인이든 친구든 어느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길들, 이런 길들은 무시하고 지나치기가 아주 쉽다. 그 길을 따라가려면 굳건한 믿음,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으며 애써 결과를 보지 않으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겉에서는 아무리 정신 나간 짓으로 보일지라도 그 길을 죽 따라간다면, 용기를 내어 걸음을 옮긴다면, 그때 비로소 자신을 변화시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덧붙이는 글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 / 카트리나 데이비스 저/ 서민아 역 / 출판사 필로소픽/ 정가/ 14500원/ 출간일 2015년 08월 07일/ 페이지수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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