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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진 달변의 재능, 어떻게 꽃피울까?

[서평] 쳬계적인 분석과 실용적인 조언이 돋보인 <힘 있는 말하기>

등록|2017.01.26 10:16 수정|2017.01.26 10:17
말을 좀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합니다. 남 앞에 나서는 일이 딱히 두렵지도 않고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말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마무리되거나 중간에 버벅거리다 끝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말보다는 글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좀 더 조리 있게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고, 뜻이 모호한 표현들을 검토해서 바로잡을 수 있으며, 무심코 저지르는 말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하기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걸까요?

▲ <힘 있는 말하기>의 표지. ⓒ 토트

이 책 <힘있는 말하기>의 저자인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달변가로서의 재능을 타고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다양한 화자의 자연스런 일상 대화를 녹음해서 들어 보면, 말하기에 자신 없는 사람들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말을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긴, 기억을 떠올려 보면 말을 참 잘하는 '달변가'들은 어디에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 모임이나 동호회 모임에서 간단한 소감을 말하거나, 팟캐스트나 강연을 진행하거나, 심지어 결혼식 주례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으니까요.

물론 이런 '달변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가족 모임에서의 간단한 테이블 스피치부터 마케팅 프리젠테이션, 정치 연설이나 토론회에 이르는 다양한 상황에서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유용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체는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말을 잘 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체크합니다. 우선 말하기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며, 말하는 장소와 청중의 특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할 지 내용을 결정해야 하고, 어느 시점에 어떤 순서로 말할 것인지 사람들의 주의 집중 시간을 고려하여 꼼꼼하게 계획해야 하지요.

이어 2부에서는 "Yes, We Can!"이라는 구호로 잘 알려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승리 연설문을 중심으로 달변가의 전략이 어떤 것인지 알아 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탁월한 대중 연설가인 것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가 연설에서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 분석하고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저자가 정리한 오바마의 말하기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우기 쉽도록 구성된 비슷한 형식의 구문들, 3단 화법과 2단 화법, 강조할 메시지에 따라 언급 순서와 단어의 위치를 다르게 하는 방법, 패턴을 다채롭게 변화시켜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는 기술 등입니다.

물론 어떤 전략들은 영어 문장 구조를 기초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에 그대로 적용시키기는 어렵습니다만, 여기서 제시된 방법들을 우리나라의 탁월한 '달변가'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 등에 적용하여 차근차근 분석해 보는 작업을 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실제 말하기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팁들을 꼼꼼하게 짚고 넘어갑니다.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말하는 기술, 말의 속도를 조절하고 운율을 만드는 법, 시청각 자료를 활용할 때 주의 사항 등이 나와 있습니다. 특히 간단한 개회사부터 시상식 소감, 정치 연설 등 대중 연설의 여러가지 하위 장르를 언급하며 각각의 핵심적인 사항을 짚어 주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권말 부록으로는 앞서 언급한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승리 연설문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절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워싱턴 대행진 연설문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어서, 저자가 분석한 내용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의 경우를 떠올려 보니, 그동안 말하기를 위한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말할 내용에 대해 대충 개요만 잡은 상태에서 아무 전략도 없이 무턱대고 말을 시작하니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나마 술술 막힘없이 말하며 '달변가'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때는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해 두었던 주제나 글로 한 번 정리했던 내용을 이야기했을 때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글 쓰는 것만큼 말하기에도 많은 준비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많이 겪을 텐데, 스스로의 부족함을 곱씹으면서 입맛만 다실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잠자고 있는 말 잘 하는 재능을 조금씩 일깨워 보면 어떨까요? 이 책은 그런 여정에 훌륭한 가이드이자, 성실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힘 있는 말하기>,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이희수 옮김, 토트 펴냄 (2016.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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