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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코 앞이다, 냉장고 파먹기 대작전 돌입

[단짠단짠 그림요리] 완두콩조림

등록|2017.01.26 13:20 수정|2017.01.26 17:49
나는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여간해선 입맛을 잃는 일이 없고, 늘 먹고 싶은 게 많아 날마다 새로운 음식을 해먹는다. 그러면 냉장고에 남아나는 음식이 없을 거라고 짐작하겠지만, 천만에. 매일 새 음식을 해먹으려면 다양한 재료를 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콩나물과 두부는 기본이고, 삼겹살과 생선 한 종류, 떡국떡과 만두, 멸치, 양파 같은 양념채소들, 요즘 한창인 시금치와 봄동, 샐러드용 양상추, 그리고 과일도 두 가지는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게다가 고정으로 박혀 있는 김치통과 각종 장아찌들까지. 이렇게 냉장고가 어느 정도 차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여기에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님이 두세 달에 한 번씩 먹을거리를 택배로 보내주신다. 냉장고에 비상이 걸린다. 보내주신 먹거리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냉장고 빈 공간이 부족해 애를 먹을 때가 많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난감한 상황은 명절 후에 벌어진다. 명절엔 그깟 택배 상자 하나가 아니라 차 트렁크 가득 실을 수 있으니, 먹을 것을 챙겨주려는 시어머님 입장에선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바로 그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냉장고를 비워야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만 요리를 하는, 이른바 '냉장고 파먹기' 작전에 돌입했다.

우선 지난 추석 때 냉동실에 얼려둔 송편을 쪄놓고 오며가며 집어먹었다. 역시 같은 시기 시어머님이 싸주신 고사리나물과 조기로 국물 자작한 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은 김치와 함께 볶았다. 매생이 국도 끓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은 완두콩이었다.

▲ 완두콩조림 ⓒ 심혜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작년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택배상자엔 육해공을 총망라한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이름 모를 작은 생선들도 있었다. 얼어있던 생선들이 오는 동안 녹아 주위에 물이 흥건했다. 그 물을 옴팡 뒤집어 쓴 검은 봉지 하나가 상자 바닥에서 나왔다. 완두콩이었다. 생선 물에 젖은 완두콩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냄새가 심한 것은 골라내고, 남은 것은 물에 헹궈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그러고는 금세 잊었다.

이 많은 완두콩으로 무얼 할까. 생선 냄새가 살짝 배어 밥에 넣을 순 없다. 이럴 땐 검색이 답이다. '완두콩 요리'를 검색하자 완두콩조림이 맨 먼저 나왔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음식이다. 즉각 만들기에 돌입했다.

씻은 완두콩을 냄비에 담고 콩이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완두콩이 살짝 익으면 간장을 넣고 끓이다가 국물이 거의 졸아들면 식용유를 살짝 둘러 윤기를 낸다. 마지막으로 취향 껏 올리고당을 넣고 불을 끄면 끝이다. 이렇게 간단하다니! 맛은, 말 그대로 완두콩조림 맛이다. 식감은 검은콩조림보다 부드럽고 살짝 쫄깃하기도 하다. 푸르스름한 색감에 먹는 재미가 있다. 성공이다.

며칠 동안 조리대에서 씨름을 했는데, 아, 아직 멀었다. 저 많은 음식들을 언제 처리하나. 벌써 지치면 안 된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냉장고를 파먹어야겠다. 설날을 맞아, 모든 가정의 냉장고에 안부 인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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