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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불출마, 서울시 "때가 아니었다" "차라리 잘 됐다"

[현장] 박 시장 "시장 두 번 쉽게 돼 정치를 잘 몰랐던 듯"

등록|2017.01.26 14:37 수정|2017.01.26 15:43

▲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대선 불출마선언을 마치고 시청 기자실에 들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서울시제공



"시장 두 번을 그리 어렵지 않게 됐던 것 때문에 아마 정치라는 것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깜짝 불출마선언을 발표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곧바로 시청 기자실에 들러 한 말이다.

갑작스런 사퇴 결단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묻는 말에는 "무엇보다도 국민 뜻이 정권교체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저 개인의 준비도 많이 부족했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국민들의 뜻이 정권교체에 있는 만큼 지지율 답보 상태인 자신이 깨끗하게 물러나는 게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또한 지난 두 번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난히 승리한 데 도취해 정작 대선 준비에는 소홀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읽히기도 한다.

박 시장, 어제 저녁 최종결정... 그러나 며칠 전부터 고민한 듯

"정말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어제까지도 아무 눈치를 못 챘는데... 이게 웬일이냐."

26일 아침 일찍 언론보도를 보고 소식을 알게 된 서울시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박 시장의 출마 포기를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시장은 최근까지도 "아직 경선이 시작도 하지 않았다, 검증이 시작되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지지율 반등을 자신해왔다.

어제만 해도 청년정책을 발표하며 '대통령이 되면' 청년 기본소득 3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어제 저녁 일정을 마친 뒤 간부들에게 불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지난 주말 이전부터 사퇴를 고민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정무라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어제 저녁 최종적으로 결정하셨지만 실은 며칠 전부터 고민했다"며 "이번주 들어 언론 인터뷰가 하나도 안 나갔지 않냐"고 말했다. 지난 일요일 KBS 인터뷰도 포기할까 했는데 일정이 잡혀있어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것.

▲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들이 혁신보단 정권교체에 관심... 지금은 때 아닌듯"

서울시 간부들은 박 시장의 갑작스런 사퇴가 아쉽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반응이다.

하승창 정무부시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박 시장이) 그간 열심히 했지만 낮은 지지율도 그렇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즉, 특검이나 탄핵심판 등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정권교체로만 가있는 상황에서 박 시장이 외치고 있는 '혁신' 구호가 제대로 먹혀들어갈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도 "서울시장 5년을 통해 박 시장이 갈고닦은 자신의 컨텐츠는 엄청나다"며 "작년말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촛불정국과 조기대선으로 인해 이를 알릴 기회나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게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잘 됐다는 반응도 많다.

한 개방직 고위간부는 "시민 혁신가인 박 시장이 정치가로 변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며 "대선 출마를 무리하게 강행해 그저 그런 한 명의 정치인처럼 소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출마선언을 반겼다.

그는 최근 박 시장이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다가 역풍을 맞았던 것을 예로 들고, "오히려 불출마선언이 더 빨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전격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잠재력이 많으신 분인데 굉장히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설인사를 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 ⓒ 유성애


"박원순표 사업 완성에 시간 필요... 차라리 잘 됐다"

큰 바다로 나아가는 뱃머리를 돌려 제자리로 돌아온 박 시장은 일단 시정에 전념하며 자신의 행보를 다시 설계한다는 생각이다.

홀가분한 표정의 박 시장은 이날 기자실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난 몇 달 동안 너무나 긴 여행을 했던 것 같다"며 "(이제) 확인한 민심도 되돌아보고 성찰도 하고 스스로 추스르면서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겠다"고 말했다.

시 간부들도 일단 말을 아끼면서도 "차라리 잘 된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 국장급 간부는 "박 시장이 당초 국민의 뜻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하지 않았냐"면서 "시장이 시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됐으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또 다른 간부도 "마을공동체, 사회적기업 등 '박원순표 혁신'이 토대는 구축했지만, 하나의 사회적 대세나 가치를 완성하려면 아직 미진하다"며 "그런게 꽃을 피우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만큼 차라리 잘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시장이나 간부들 모두 3선 도전에 대한 입장에는 "아직 시간이 많다"며 판단을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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