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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상처로 남은 마라카낭의 비극 "비극, 그리고 영광"

[역사적인 경기] 1950년 월드컵, 우루과이 vs. 브라질

등록|2017.01.31 17:48 수정|2017.02.15 17:06
"어머니, 저 선수가 누구인가요?"

"브라질의 온 국민들을 절망과 좌절감에 빠뜨린 인물이란다."

"브라질에서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도 43년 이상 형을 선고받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50년 이상을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모아시르 바르보사)

우루과이 vs 브라질우루과이 vs 브라질 ⓒ FIFA.COM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경기장 안에 가득 퍼졌다. 알시데스 기지아의 슈팅이 브라질의 골문을 흔들면서 우루과이가 역사상 두 번째 쥘 리메 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경기장에는 함성 대신에 침묵만이 가득했다. 경기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총소리뿐이었다. 우승을 차지한 우루과이 대표 팀은 축하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12년이 지나서야 브라질에서 월드컵이 다시 열렸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이기 때문에 브라질은 첫 우승에 엄청난 자신감을 보였다. 또한 라이벌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서 프랑스, 포르투갈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브라질이 우승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월드컵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 세계는 이미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분위기였다.

우루과이 VS 브라질우루과이 VS 브라질 ⓒ FIFA.COM


브라질의 설레발

당시 브라질이 보여주었던 설레발은 엄청났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아본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FIFA 측에서는 월드컵이 끝나기도 전에 브라질에게 쥘 리메 컵을 전달했다. 당시 회장이었던 쥘 리메 역시도 포르투갈어로 된 우승 연설만 준비했다. 브라질 월드컵 조직 위원회에서도 '1950년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이라는 글귀를 우승 메달에 새겼다.(당시 우승 메달은 FIFA 측에서 제작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국가들의 우승 메달은 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설레발은 오히려 더 큰 비극을 만들었다.

브라질과 우루과이, 결승전에 올라오기까지

1950년 대회에서는 이상한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당시 브라질 월드컵 조직 위원회에서는 최대한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기 위해서 모든 경기를 조별 방식으로 구성했다.

브라질은 조별 예선 첫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4 - 0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2 - 2 무승부를 기록하지만 유고슬라비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2 - 0 승리를 기록하면서 결승 리그 진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결승 리그에서 브라질은 스웨덴을 상대로 7 - 1 승리, 스페인을 상대로 6 - 1 승리를 기록했다. 마지막 경기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무승부만 기록해도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우루과이는 조별 예선에서 볼리비아를 상대로 8 - 0 완승을 기록하고 결승 리그에 진출했다. 당시 우루과이는 볼리비아, 터키, 스코틀랜드와 한 조에 속했다. 하지만 터키, 스코틀랜드가 기권을 선언했고, 대신 출전할 프랑스, 포르투갈도 모두 기권을 선언하였다. 결승 리그에서 우루과이는 스페인을 상대로 2 - 2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스웨덴을 상대로 간신히 3 - 2 승리를 기록했다.

선발 라인업우루과이(좌), 브라질(우)의 선발 라인업 ⓒ FOOTBALLUSER.COM


우루과이 vs. 브라질 선발 라인업

우루과이는 로케 마스폴리, 마티아스 곤살레스, 에우세비오 테헤라, 슈베르트 감베타, 옵둘리오 바렐라(주장), 빅토르 안드라데, 알시데스 기지아, 훌리오 페레스, 오스카 미게스, 후안 스키아피노, 루벤 모란이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브라질은 모아시르 바르보사, 아우구스투(주장), 주베나우, 바우에르, 다닐루 아우빙, 비고지, 프리아사, 지지뉴, 아데미르, 자이르, 치쿠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우루과이 VS 브라질우루과이 VS 브라질 ⓒ FIFA.COM


경기 내용

"월드컵의 승자, 바로 브라질이다. 몇 시간 뒤면 수많은 국민들이 브라질을 향해서 환호할 것이다. 브라질은 지구에서 가장 강한 팀이며, 다른 누구도 브라질의 상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상파울루의 시장인 나는 그들에게 미리 경의를 표한다." (안젤루 멘데스 지 모라에스 상파울루 시장)

경기 시작 전부터 상파울루 시장이었던 안젤루 멘데스 지 모라에스는 브라질이 우승을 축하하는 듯한 연설을 하였다. 또한 브라질 국민들을 이미 크고 작은 축제를 즐기고 있던 상황이었다. 총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마라카낭 스타디움에는 약 198,854명의 관중들로 가득했으며, 비공식 기록으로는 25만 명으로 추정된다.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브라질이 경기력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브라질과 우루과이 모두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여졌다. 오히려 우루과이의 경기력에 당황한 브라질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브라질은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이르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왔으며, 마스폴리의 선방에 계속해서 득점에 실패했다. 결국 전반전 양 팀 모두 한 골도 기록하지 못 했다.

이어진 후반 2분, 아데미르의 패스를 받은 프리아사가 우루과이 골문을 흔들면서 브라질이 선제골을 기록했다. 마라카낭 스타디움은 함성으로 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굴복하지 않았다. 우루과이는 선제골을 허용한 이후 더욱 공격적으로 나오면서 브라질을 압박했다. 후반 21분, 기지아가 올린 크로스를 스키아피노가 동점골로 연결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후반 34분, 기지아가 바르보사 골키퍼를 속이고 역전골을 기록했다. 브라질은 두 번째 골을 허용한 이후 공격을 계속해서 시도했지만 득점으로는 연결되지 못 했다. 결국 주심의 종료 휘슬이 경기장을 울렸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우루과이가 두 번째 쥘 리메 컵을 들어 올리게 되었다.

우루과이 VS 브라질마라카낭 스타디움 ⓒ FIFA.COM


마라카낭의 비극

우루과이가 우승했다는 사실을 브라질 축구팬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약 20만 명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마라카낭 스타디움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경기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파리가 날아다니는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2번의 총 소리가 이어진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경기장에서 2명의 관중들이 총으로 자살을 했고, 2명의 관중들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우루과이 선수들은 줄 뤼메 컵 한 번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한 채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브라질은 자신들을 위해서 준비한 우승 메달을 폐기 처분해야 했다. 또한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노래인 'Brasil os Vencedores(Brazil The Victors)'도 결국 마라카낭의 비극과 함께 사라졌다. 우루과이가 우승하면서 브라질에서 준비된 축하 행사는 모두 취소되었다. 브라질 전국에 있던 조기는 계양 되었다. 그리고 분노에 가득한 브라질 팬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이후 브라질에서는 전국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이 발견됐다.

우루과이 VS 브라질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하얀색 유니폼 ⓒ FIFA.COM


마라카낭의 비극, 그리고 이후

마라카낭의 비극은 결국 영원한 상처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마라카낭의 비극을 잊기 위해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야만 했다. 브라질 축구 협회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유니폼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들은 결승전에 선수들이 입었던 유니폼을 모두 태웠다. 그리고 새로 디자인한 노란색 유니폼인 카나리냐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들에게 하얀색 유니폼은 항복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또한 결승전에서 패배의 주범으로 뽑힌 선수들은 더 이상 브라질 대표 팀에서 볼 수 없었다. 특히 당시 브라질 대표 팀의 골키퍼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유독 심하게 비판받았다. 한 아이는 그에게 "어머니, 저 선수가 누구예요?"라고 묻자, 아이의 어머니는 "브라질의 온 국민들을 좌절과 절망감에 빠진 인물이란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브라질에서는 아무리 큰 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도 4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단 한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50년 이상을 범죄자처럼 살아야 했다."

그리고 마라카낭의 비극 이후로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이후 브라질 대표 팀은 우루과이 대표 팀과 경기를 할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각오로 경기를 치른다.

비극 속에 숨겨진 영광

모두가 마라카낭의 비극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우루과이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브라질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을 때, 우루과이는 무시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두 번째 쥘 리메 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루과이 대표 팀의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가 있었다.

월드컵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에는 브라질이 우승한다는 뉘앙스의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본 바렐라는 신문에 오줌을 누면서 "우리가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라는 말로 동료들을 격려해준다. 또한 결승 리그에서 브라질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이후에 "이제 우리가 본때를 보여줄 때가 왔다."라는 말을 하면서 우루과이 대표 팀의 사기를 올렸다. 결국 브라질을 이기고 우승에 차지한 우루과이를 대신해서 그는 한 마디를 남긴다.

"항상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머릿수만 채우려고 대회에 참가한 게 아니다."

한편, 당시 라디오에서 브라질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브라질을 반드시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들겠다고 맹세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에지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바로 펠레였다.

덧붙이는 글 History Match, 그 두 번째 이야기. 누구에게는 비극, 그리고 누구에게는 영광이었던 마라카낭 비극. 약 67년 전에 일이지만 한 편의 글을 통해서 그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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