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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친정 못 가는 맏며느리,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처가'에 먼저 갑시다 ③] '명절' 생각하면 원망스러운 마음부터... 내 자식들은 안 그랬으면

등록|2017.01.28 15:21 수정|2017.01.28 15:21
'남성가족' 중심적인 명절 문화로 인해 '명절 나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막중한 가사노동의 부담을 떠안는 것은 물론, 명절임에도 친정에 가 본 적이 없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이번 설날, 혹은 다음 추석에는 며느리들이 '시가'로 가서 차례를 지내는 관습을 벗어나, 사위들이 '처가'로 먼저 가보는 게 어떨까요? 처가에서 명절 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명절 문화가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편집자말]
다시 설날입니다. 몇 년 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아 명절의 고통과 부담이 많이 줄었지만, 명절을 앞둔 요즘 마음이 그리 편하지 못합니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명절로 인한 좋지 못한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원망, 섭섭함과 '왜 그리 멍청하게 살았을까?'와 같은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해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 후 지낸 50여 차례의 명절. 걸핏하면 '예의와 범절' 운운, 자손들은 굶어도 조상들은 잘 모셔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며느리이다 보니 음식준비도 만만찮았습니다. 음식 준비로 눈앞이 핑핑 돌 정도로 힘들 때가 많지만 그뿐, 명절 지나면 대부분 털어지더라고요. 하지만 명절 때 친정에 제대로 가지 못한 것은 이렇게 두고두고 섭섭하기만 하네요.

몇 번이나 친정에 갔나? 헤아려보니 열 번도 채 되지 않네요. 그것도 차례를 지낸 후 점심 무렵 나서서 명절 당일에 간 것은 겨우 두 번에 불과, 나머지는 명절 일주일 지나서 가거나, 명절 직후 집안 잔치가 있어서 가기도 했으니 결혼 후 친정에서의 명절다운 명절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외갓집이 있는데 왜 안 가?" 가슴 아픈 딸 아이의 말

▲ (자료사진)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지만, 명절만 생각하면 좋지 못한 기억이 많다. ⓒ 연합뉴스


아들만 셋인 집에 첫째 며느리입니다. 4년 전까지 차례를 지냈습니다. 손이 큰 시어머니(아래 '어머니')는 도무지 이해 못 할 수준의 장을 이미 봐두곤 했습니다. 결혼 후 몇 번 일찍 와서 함께 음식을 준비하던 두 동서는 어느 해부턴가 어지간한 음식장만을 끝낸 시간이나 차례를 지내기 직전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도 차례를 지내는 동시에 친정으로 달려가기 일쑤더군요.

제가 친정에 거의 가지 못한 이유 중에는 '친정(전라도)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어 스스로 포기했거나, 악재들이 겹치며 사정이 좋지 않아서'도 있습니다. 가려고 했다면 훨씬 많이 갈 수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특히 큰 며느리에 대한 사고방식에는 분명히 문제가 많았고, 그래서 가지 못한 적이 더 많습니다.

동서들이 친정에 가겠다고 하면 "어서 가라"며 과일 상자 들려 떠밀곤 하던 어머니는 제겐 "명절날 큰 며느리가 어디를 가냐?"며 못 가게 하더군요. 대대로 물려오는 제사가 있는 종갓집도 아니고, 오는 손님도 시부모님 형제나 남편 사촌 정도에 불과한데도요.

처음 몇 년은 신혼이라 어머니가 어려워 서운해도 눌러 참았고, 몇 번은 명절날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아 참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 좀 낯부끄럽기도 한데요. 어느 해, 추석을 보름쯤 앞두고 친정에 갔다 올 거라 말씀드렸더니 명절 직전 없던 병을 만들어 자식들을 긴장하게 하더군요. 그런 와중에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명절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친정에 간다고 하거나, 갔다 오면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남편은 할 일이 없으면 장롱 속 이불 정리나 대청소라도 해드리고 올 정도로 친정이나 다른 형제들 집에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데요. 친정에 가기만 하면 어머니가 만든 일로 집안이 시끄러워지니 점점 갈수록 처가에 가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곤 하더군요.

"우리도 외갓집이 있는데 우리는 왜 안 가? 내 친구들은 간다는데. 엄마도 작은 엄마나 이모들처럼 외할머니 집에 가고 그래. 왜 엄마만 못 가는데? 아빠에게 할머니가 있다면 엄마에게는 외할머니가 있는데 우리 엄마는 왜 자기 엄마 보러 못 가게 하는지 내가 할머니께 따질 거야!"

어느 해 부턴가 아이들은 왜 외갓집에 안 가는지를 묻곤 했습니다. 특히 아들보다 섬세한 딸은 다른 이모들과 달리 친정에 거의 가지 않는 엄마가 측은했던지 할머니에 대한 반항과 원망을 담은 말을 하곤 했습니다.

11년 만에 명절에 친정 가보니... 부러웠다

▲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엘스아파트 경로당에서 설을 앞두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부리도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르신들에게 합동세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정은 칠 남매인데요. 어느 해 설날에 갔을 때, 차례상을 물린 후 누구 할 것 없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세배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은 아들 며느리 사위 조카들 구분 없이 똑같이 세뱃돈 만원 씩을 주시더군요. 어린 조카들에게까지 일일이 덕담을 하시거나 당부하면서. 손을 잡아 격려해주기도 하면서. 친정 부모님의 며느리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결혼 11년차, 결혼 후 처음으로 설날에 친정을 갔던 때입니다. 친정의 설날 풍경은 오랫동안 떠올랐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습니다. 감동이 크고 여운이 길수록 나만 뭔가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서글퍼지더군요. 물론 다른 딸들도 시가에서 차례를 지내다 보니 명절날 친정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은 아닌지라 이미 여러 차례 나눴더군요.

형제들이 다 모일 때 가지 못하는 날이 거듭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형제들은 다 알고 있는 것들을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보니 공유하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새삼스럽게 어색해질 때도 있었고요. 우리 아이들만 외톨이가 되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많았습니다. 소외감도 들어 서럽고 그랬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커질 수밖에요. 이제는 명절에 친정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많이 사그라졌습니다. 오래전에 체념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억지와 마음 씀은 원망과 섭섭함으로 남아 이처럼 명절이 가까워져 오면 떠오르고, 어머니의 어지간한 억지와 요구를 자기 선에서 차단해버리고 마는 남편도 헤아리지 못할 미움으로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알고 보니 차례를 단 한 번도 지내지 않았더라고요. 명절 때마다 큰 집에 갔대요. 우리가 결혼하면서 차례를 지낸 거였더라고요. 친구들 말 들어보면 우리 시어머니처럼 안 지내던 차례를 아들 결혼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 보더라고요. 차례를 지내야 권위가 선다? 뭐 그렇게 생각하시나 봐요. 웃기죠? 시어머니들은 왜 그럴까요?"

"설거지까지 마치고 친정에 간다니까 시누이네 보고 가라는 거예요. 친정이 지방인 것 잘 알면서. 가지 말라는 거죠. 시댁이 이런 건가. 내가 왜 결혼했나 싶더라고요. 웃기잖아요. 시부모님의 모순이. 자기 딸은 친정에 당연하게 와야 하고 며느리는 가지 않아도 되고"

몇 년 전 명절 후 들었던 후배들의 하소연이 떠오르네요. 시어머니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어지는 걸까요. 누구보다 며느리의 처지를 잘 알 텐데 말이지요.

절대로 며느리 옥죄는 시어머니 되지 않겠다는 다짐

▲   ⓒ pixabay


지난 20여 년간, 어머니는 걸핏하면 '예의와 범절' 운운하곤 했는데요. 어머니는 막상 당신의 아들이 사위의 도리란 것을 해야 하는 누군가의 사위라는 것을, 명절에 제가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것은 예의와 범절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 당신의 허물이 되기도 한다는 그 쉬운 것을 모르더라고요. 그리고 누구보다 당신의 아들이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남매를 뒀습니다. 내 아이들도 언젠가 결혼을 하겠지요. 그동안 즐거움보다 며느리로서의 도리와 의무가 앞서는 명절을 지내며 나는 제발 며느리 옥죄는 시어머니는 되지 말아야지. 전통도 좋지만 죽은 사람들을 위해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아야지 다짐다짐, 거듭 다짐하곤 했답니다.

몇 년 전, 언니에게 명절날 마음 놓고 친정에 한번 못 가는 처지를 하소연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일 때마다 다짐하곤 하는 것들을 이야기 했더니 "시집살이도 당해본 사람이 시킨다더라. 너도 시어머니 되면 달라질걸!"라며 웃더군요.

아니요.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제가 친정에 가지 못해 섭섭해하고 원망했더니 남편이 힘들어하더라고요. 사위의 도리를 하지 못함에 죄송해하고 왠지 주눅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 누구보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지요. 기껏 하나 또는 둘만 낳는 세상인데, 내게 하나뿐인 아들은 누군가의 하나뿐인 사위가 될 것이며, 하나뿐인 며느리는 누군가의 하나뿐인 딸인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 더더욱 명심할 일입니다.

"음, 이건 어떨까? 결혼한 해는 우리 집에 오는 걸로. 만약 짝수 해에 결혼했으면 짝수 해 명절에는 우리에게 오고, 홀수 해에는 처가에 가고. 그렇게 하면 공평하지 않을까?"

남편에게 "아들이 처가에서 명절을 보내거나 처가에 먼저 가고 그러면 어떡할 거야? 화도 나고 섭섭하지 않을까?"고 물었더니 이처럼 말하네요. 이런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지인은 명절 전날에는 무조건 처가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미리 장 본 것을 가지고 가서 처가 식구들과 차례 음식도 만들고, 나눠 먹을 음식도 함께 만들어 저녁까지 먹고 온다고요. 그런 후 본가로 가서 차례를 지낸다는군요.

처음 몇 년 부모님이 못마땅해했고, 그래서 시끄럽기도 했다고요. 그래서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부모님이 어서 갔다 오라며 사돈댁 선물까지 챙기곤 한다고요. 이렇게 몇 년째 해오면서 명절이 훨씬 즐거워졌답니다. 아내의 친정에 못가는 원망과 잔소리가 없으니 명절 내내 오히려 덜 힘들더라고 하더군요. 이런 방법도 괜찮지 않나요?

아직까지는 우리처럼 형제가 여럿인 경우가 많지만, 점점 갈수록 적은 형제로 명절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 만큼 현명한 조율이 필요할 것인데, 괜찮은 방법 같아 제안합니다. 명절에는 며느리의 도리와 의무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동시에 사위의 도리와 의무도 같은 비중으로 다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아 또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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