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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전 날 작은딸의 '주정'

등록|2017.01.28 11:20 수정|2017.01.28 11:20

▲ ⓒ 조상연


명절 전 날 작은딸의 주정.

24시간 막교대로 일하는 경비원, 3년 반 동안 운이 좋아 추석과 설날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었다. 운이 다했는지 올해 처음으로 설날 출근을 하게 됐다. 한편으로 아쉽고 다르게 생각하면 상대방 교대조에 덜 미안해서 좋다. 명절 다음 날 근무교대를 하면서 항상 미안한 마음에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를 못했으니,

작은딸이 맥주 한 잔 하자는 걸 속이 거북해 너나 마시라며 통닭 한 마리를 시켜줬더니 달랑 맥주 두 병에 취해서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가며 주정을 한다. 그렇게 한동안 아버지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조물락거리며 놀더니 제 방으로 건너가 뭘 하는지 잠잠하다.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심심하다고 같이 놀아달라며 술주정을 부린다. 가끔, 아내도 일하는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심심하다며 같이 놀아달라고 하더니 하는 짓이 어찌 제 어미하고 똑같다.

잠시후 딸이 내 방으로 건너오더니 설날 일해서 어떻하냐며 또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버지 머리가 제놈 장난감도 아니고 그것 참! 징징대는 딸아이를 앉혀놓고 고요히 타일렀다.

"4년 전 사진관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다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나이부터 물어보더라. 54세라고 했더니 나이가 많아서 안 되겠다며 전화를 끊어. 다시 전화를 했지. 내가 나이는 많지만 동안이어서 젊어보이고 체력도 좋다. 면접이라도 보면 안 되겠냐고 사정을 했어. 그랬더니 와보라고 하데. 깔끔하게 차려입고 갔지. 무조건 생글생글 웃으며 예 예 했어.

소장이랑 면접관이 한참을 얘기하더니 내일부터 출근을 하라고 해. 그게 벌써 4년 전이네. 설날이고 추석이고 365일 중에 이틀이지. 그 이틀 너희와 함께 못한다고 서운해할 것 없어.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또 아버지가 일하는 만큼 남들이 편히 쉬잖아. 그리고 설날 일한다고 서운해할 것도 없는 게 아버지가 선택한 직업인 걸. 그것도 사정 사정해서.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잖아. 설 다음 날 연극표 예약해놓았다며? 고맙다. 아버지랑 놀아줘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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