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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정치교체의 꿈 무너뜨린 가짜뉴스의 실체

반기문법 제정하겠다는 정치권... "올바른 토론 문화 정착되어야"

등록|2017.02.04 01:23 수정|2017.02.04 01:35

기자들에 둘러 싸인 반기문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에 둘러 싸여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가짜뉴스'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1일 대선 불출마를 발표한 반 전 총장이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며 가짜 뉴스로 인해 받은 상처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바른정당은 법을 통해 가짜뉴스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반기문 법' 제정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가짜 뉴스 단속에 나섰다. 선관위는 지난달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입후보예정자에 대한 비방․허위사실의 유포에 대해서 엄중하고 신속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짜뉴스를 법으로 막고 처벌로 줄이겠다는 포부다.

반 전 총장의 정치교체를 포기하게 만든 가짜뉴스. 가짜뉴스는 과연 법으로 막고 신고로 제재하면 해결 될 문제일까.

가짜뉴스는 왜 반기문만 괴롭힐까

가짜뉴스는 말 그대로 거짓으로 포장된 가짜 소식이다.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기도 하다. 보통 허위 정보를 사실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기사 형식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유포된다. 기사 제목만 보면 실제 뉴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기사 내용에 검증된 사실이나 근거는 없다. 기사 형식을 띠지 않은 경우도 있다. '거짓을 포장해 수용자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목적을 지닌 가짜 소식' 모두가 가짜뉴스인 셈이다.

가짜뉴스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가짜뉴스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트럼프 지지해 전 세계 놀라게 하다'는 제목의 가짜뉴스는 미국 대선 직전 석 달간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많이 공유된 뉴스 중 하나였다.

이 가짜뉴스가 퍼진 후 교황은 "가짜뉴스는 스캔들과 가십거리만을 쫓는 미디어의 배설물에 불과하다"며 "이를 읽는 독자들도 배설물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돌프 히틀러의 딸이라거나, '슈타지'(동독 비밀경찰) 출신이라는 기사 역시 전 세계적으로 퍼진 가짜뉴스다. 힐러리 클린턴이 피자 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믿은 한 남성이 직접 피자 가게를 찾아 총격을 가한 사건은 가짜 뉴스가 현실 세계에 미친 비극이기도 하다.

반 전 총장이 억울함을 호소한 가짜뉴스는 어떤 것일까. 그의 대통령 출마가 유엔법을 위반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한 온라인 매체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를 후임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장이 유엔법 위반으로 판단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구테흐스 유엔 신임 사무총장이 반기문 전 총장의 한국 대통령 출마에 유엔법 위반을 들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반 전 총장이 퇴임 직후에 바로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 된다. 그럴 경우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들도 북한에 대해 강제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기사의 근거가 된 '유엔 결의안 11호'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이 결의안은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이후 정부의 요직보다 유엔의 가치와 닿아있는 다른 문제 등에 투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결의안을 근거로 반 전 총장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의 출마를 반대할 강제력은 없는 셈이다.

반 전 총장의 억울함은 '신천지'와의 연루설로 이어졌다. 반 전 총장이 신천지 관련단체로 알려진 세계여성평화그룹의 대표와 악수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며 이른바 '신천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퍼진 것이다. 이에 보수 성향의 기독교 단체는 그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반 전 총장은 "당일에 함께 사진을 찍은 수천 명의 사람 중 한 명일 뿐 신천지 문제는 저와 무관하다"며 "그냥 새가 하늘 가다가 '쫙' 하는 거에 맞은 기분"이라고 답했다.

금괴왕 문재인,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시달린 박원순은?

▲ . ⓒ 아이엠피터


가짜뉴스에 시달린 정치인은 반기만 뿐만이 아니다. 야권 대선 후보들 역시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반 전 총장에 앞서 가짜뉴스로 인해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문 전 대표에게 금 200톤에 달하는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2015년 당시 한 50대 남성은 문 전 대표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문현동 금괴사건 도굴범 문재인을 즉각 구속하라'며 인질극을 벌였다. 이 남성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형이 발견한 일제가 약탈한 금괴가 매장된 굴을 참여정부가 도굴꾼들과 모의해 금괴를 빼돌리고 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일부 보수성향의 지지자들은 이 남성의 주장을 근거로 '금괴왕 문재인의 실체를 밝히라'는 요구를 SNS로 퍼 날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에 시달렸다. 강용석 전 의원이 처음 제기했던 의혹의 내용은 '박 시장 아들이 병역비리를 통해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양승오 동남권 원자력의학원 암센터 핵의학과 주임과장을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가 박 시장의 아들을 고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의 아들은 신체검사를 받은 X-RAY, MRI 자료를 제출하고 2013년 검찰에 의해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이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의 아들이 받은 검사마저 비리가 있다며 재검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SNS 게시물이 퍼지기도 했다.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가짜뉴스는 지난달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서울시장 밀약설이 나도는 등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대응방식을 택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터뷰를 통해 가짜뉴스에 대한 날선 비판을 했다면 문재인 전 대표는 금괴에 대해 웃어 넘겼다. 지난해 금괴 여부를 묻는 대학생의 질문에 문 전 대표는 "제가 금괴를 한 200톤 갖고 있죠. 그걸로 제가 젊은 사람들 일자리 문제 다 해결해드릴게요"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문 전 대표에게 금화 모양의 초콜릿을 선물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민·형사상 법적 대응에 나섰다. 2015년 박 시장은 강용석 변호사를 대상으로 1억 100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같은 해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 이용자 1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2013년 박원순 아들 병역기피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했던 검찰은 2015년 9월 보수단체의 고발을 이유로 재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지난해 2월, 법원은 '박 시장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가짜뉴스에도 굳건한 야당 정치인

문 전 대표와 박 시장은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었지만, 정치적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지지율 역시 변함이 없었다. 2012년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도 박 시장은 2014년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문 전 대표 역시 30%가 넘는 지지를 받으며 대선주자 1위를 사수하고 있다. '정권교체'라는 자신의 정치적 명분을 가짜뉴스가 앗아갔다며 대선 불출마까지 선언한 반 전 총장의 행보와 비교된다.

전문가들은 가짜뉴스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무조건 법으로 강제할 경우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석 텍사스대-샌 안토니오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월간 <신문과 방송> 1월호 '미국 대선 과정의 가짜뉴스 논란'이라는 글을 통해 가짜뉴스가 언론사의 위기이자 기회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가짜뉴스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토론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토론과 논의가 활성화돼서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확인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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