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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 읽고, 조인성이 읽은 것... 모든 것이 좋았다

한국인의 독서력을 높이기 위한 방송작가의 생각

등록|2017.02.08 16:20 수정|2017.02.08 16:20

▲ 드라마 <도깨비> 한 장면. ⓒ tvn


사람들은 왜 책을 잘 읽지 않는 걸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안다. 유엔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이고, 성인 10명 중 9명은 독서량이 하루 10분이 안 된다고 한다. 심지어 성인 4명 중 1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단다.

물론 조사 통계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는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9.1권이라고 한다. 많이 봐줘서 한 달에 1권 정도는 본다는 얘긴데, 글쎄다, 그렇게 많이 읽나 싶긴 하다.

내 주변을 돌아봐도 한 달에 1권이라도 읽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펼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카메라가 짜잔 나타나서 축하를 보내고 양심 냉장고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게 할 수 있을까. 정부와 시민 사회에서 그동안 국민의 독서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을 것이다. 이렇다 할 소득은 없다. 방송작가로서 고민해본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안전벨트가 생각났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운전자는 물론이고 옆의 조수석에 앉는 사람도 누구나 안전벨트를 한다. 최근에는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다. 출장을 갈 때는 주로 다인승 승합차를 타는데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고속버스를 타도 착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안전벨트 착용이 당연한 문화가 된 게, 처음부터 그랬던 걸까. 그렇지 않다.

정확하게 몇 년 전이라도 기억하진 못하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던 90년대에서 2000년대만 하더라도 안전벨트 착용은 당연하지 않았다. 자유로를 달릴 때도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던 때가 많았다. 조수석에 타는 경우에는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운전자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운전 시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게 당연시 된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론 안전벨트 착용에 관한 캠페인은 많았다. 도로 곳곳의 현수막과 공익광고도 적지 않게 방영되었다. 당연히 안전벨트 착용 문화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작가로서 내 눈에 포착된 것이 있는데, 바로 TV다. 특히 드라마의 힘을 얘기하고 싶다. 드라마는 차가 나오는 장면이 참 많다. 이동을 할 때, 데이트를 할 때, 실연을 하고 혼자 도로를 질주하며 눈물을 훔칠 때 등 연기자는 차를 타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차를 타는 등장인물들이 안전벨트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동건이 안전벨트를 맸고 고소영이 맸다. 박신양이 조수석의 전도연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미치고 팔딱 뛰는 상황이더라도 차에 타면 누구라도 일단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 연기를 했다. 아마도 심의규정의 변화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어색했겠지만 이내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느 새 안전벨트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의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면화가 되어, 지금과 같은 문화로 정착이 된 것이다.

안전벨트에 대한 생각을 책에 적용해 본다면? 나는 제안하고자 한다. 드라마에는 등장인물이 책을 읽는 장면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간접광고 규정에는 몇 가지 룰이 있다. 광고물이 화면의 1/4을 넘지 않아야 한다거나, 분량에 대한 이런저런 제한이 있다. 이러한 규정에 책을 넣어 운용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주인공과 주·조연은 무조건 책을 읽는 연기를 하게 하는 거다. 여의치 않다면 소지한 모습이라도 보여주면 어떨까.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연기를 할 경우는 무조건 책을 보게 하면 어떨까. 데이트 장소에 서점이나 도서관을 무조건 들어가게 하는 건 어떨까. 책 도둑이 나오는 소재는 어떨까. 의지만 있다면 책을 매개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어색하지 않겠냐고? 공유와 김고은이 툭하면 설렁탕 집에서 만나는 건 어색하지 않은가? 휴대폰의 기능을 굳이 설명하는 건 어색하지 않은가? 주원이 방을 구하는데 방구하기 앱을 통해 하는 건 어색하지 않은가? 드라마 <도깨비>에 적용된 PPL(간접광고)이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본 기사가 있다. 16회 분에 270여 개가 광고가 되었다. 1회에 무려 17건이나 PPL이 진행되었고 5회는 33차례나 PPL 장면이 노출되었다. 굉장히 어색한 장면들이 많지 않았을까.

만약 책 관련 설정을 한 회에 1번이라도 하게 한다면, 16회 동안 고작 16번 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색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도깨비> 4회에서 유인나가 음료수를 직접 들고 "보여 내 노력이? 피부 생각해 매일 마시는 거?"라고 하는 장면과 유인나가 책을 보다가 "나 이 대목 보니까 이런 생각이 나" 하는 장면 중 어떤 게 더 어색할까.

책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끝날 때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도 무수히 많은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물론 해당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좀 더 많은 기여를 하는 동기부여를 위해서였다. 가수나 소속회사가 돈을 내는 것도 아니었는데 단지 그런 이유로 그렇게 틀었다. 순수했다.

오로지 프로그램을 위한 열정이었다. 그러한 열정을 책에도 나눠주면 어떨까. 왜 가수들만 혜택을 받아야 하는 건가. 저자들도 혜택을 받으면 어떨까. 출판사도 혜택을 주면 어떨까. 예능 프로그램 말미에 북 트레일러를 트는 건 어떨까. 프로그램은 많다. 교양 프로그램이 끝날 때 책을 보여줘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려면, 책이 많이 보여야 한다. 책을 보는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야 한다. 그 사람이 가능하다면 스타라면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영화 <더 킹>에 의미 있는 장면이 있다. 조인성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책을 본다. (비록 교과서였다 하더라도) 싸우면서도 책을 보고 심지어 도망가면서까지 책을 본다. 코미디로 포장한 장면이겠지만, 조인성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반가웠다.

한국 사람들 책 안 읽는다고 개탄만 하지 말자. 미디어가 나서야 한다. 안전벨트가 그랬듯이 책도 자연스러운 문화가 될 수 있게 미디어가 신경 쓰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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