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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상' 대명사 그래미, 그들도 완벽하지는 않다

[기획] 백인-미국 중심 비판 지속... 가짜 가수 파문, 특정 장르 배제 등 논란도

등록|2017.02.09 11:30 수정|2017.02.09 11:47
미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음악상 그래미 어워드가 올해로 59회째를 맞이했다. 현지시간으로 12일 열리는 이번 시상식에선 아델, 저스틴 비버, 비욘세 등 쟁쟁한 스타들이 주요 부문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철저히 상업적 인기만을 고려해 시상하는 한국 대부분의 가요 시상식과 달리, 음악성-상업성을 안배한 그래미만의 특징은 우리로선 부러움이 대상이 되곤 했다.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한국대중음악상>도 일정 부분 "한국판 그래미"를 표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래미 역시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때론 굴욕의 역사를 썼던 일도 종종 발생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당신이 알아야 할 그래미상의 모든 것)

미국, 백인들만의 잔치?

▲ 지난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 경쟁작 켄드릭 라마의 탈락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 Grammy


그래미가 비판받아온 일 중 하나는 미국(미국인) 중심의 시상식이라는 점이다. 물론 U2, 아델 등 아일랜드, 영국 출신 뮤지션들도 그래미의 사랑을 받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미국 대중음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상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시상 기관인 미국 레코딩 예술과학 아카데미(NARAS: 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s)의 회원이자 투표권 행사자들이 상당수 미국인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는 오랜 속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백인 강세 vs. 유색인종 약세를 보여주는 시상식이라는 데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라틴 록의 영웅' 산타나 등이 역대급 다관왕으로 그래미의 스타가 되기도 했지만 이른바 본상 4개 부문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신인상)에서 흑인 음악인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지난해의 경우, 유력 다관왕 후보였던 켄드릭 라마가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밀렸다든지 역대 단골 수상자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조차도 그간의 업적에 비해선 본상 부문 수상에선 쓴맛을 많이 보곤 했다.

여러 시상 부문 중 하나인 재즈 장르에서도 미국 위주 시상은 이런저런 뒷말을 일으켰다. 미국의 대형 음반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2000년대 이후 재즈 음반 제작을 대거 축소했지만, 유럽 지역에 기반을 둔 ECM, ACT 등의 레이블들이 숱한 걸작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이들 업체의 좋은 음반들은 일찌감치 후보 선정부터 배제되기 일 수였다.

특유의 보수성... 헤비메탈 푸대접

NARAS 특성상 음악 업계에서 일정 기간 종사해야 회원이 될 수 있으므로 이들 회원의 연령대는 아무래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인해 투표 성향 역시 보수적으로 흐르는 게 당연시되었다. 앞서 언급한 미국-백인 선호 역시 이 부분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장르적인 특성에서도 이런 보수적인 색깔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다.  197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주류로 자리 잡은 하드 록/헤비메탈은 장시간 그래미의 외면을 받아온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였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키쓰 등 이 분야 전설들은 그래미 수상은 둘째치고 후보작으로 선정되는 일이 손으로 꼽을 만큼 드물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1989년이 돼서야 록 부문 중 <최우수 하드록/메탈 퍼포먼스 보컬 또는 연주 (Best Hard Rock/Metal Performance Vocal or Instrumental)>상 신설로 그래미는 점차 대세를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후보 및 수상자 선정에서 숱한 논란을 일으켰고 이후 빈번한 시상 기준 변경 및 개별 부문 통·폐합 등의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종종 불분명한 후보/수상자 선정 기준

▲ 나탈리 콜이 부른 'Unfogettable'은 1992년 작곡가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곡이 처음 발표된 건 1951년이다. ⓒ 워너뮤직코리아


그래미가 권위를 쌓아온 이유 중 하나는 나름의 확실한 후보자/수상자 선정 기준을 내세우고 시상식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매번 불분명한 기준으로 비판받는 한국의 각종 가요상에 비해 그래미의 이러한 운영은 좋은 귀감이 될 만 했다.

하지만 그래미도 때론 선정 기준에 대해서 논란 및 비판을 받곤 한다.

록, 재즈 등 별도의 음반 부문 시상이 없던 일부 장르에선 과거엔 노래(트랙)과 음반이 동일한 조건에서 같이 후보자로 선정이 되기도 했다  과연 이게 합당한 경쟁인지에 대해선 수년 넘게 논란이 빚어지자 지난 2011년 그래미는 시상 부문 통폐합을 거쳐 재정비를 진행했다.

상업적으로 발매된 실물 음반(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선정을 하다보니 최근 들어 급증한 유튜브, 사운드클라우드를 활용한 무료 배포 음원 및 믹스 테이프 등은 배제되기 일 수다.

또한 동일 음반 수록곡으로 2년 연속 후보 선정 및 수상자로 선정되는 경우도 있다.

록그룹 U2는 2001년(제43회)엔 싱글 'Beatiful Day', 이듬해 제44회에선 또 다른 싱글 'Walk On'로 2년 연속 <올해의 레코드 (Record Of The Year)> 부문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 두곡은 모두 2000년 발매된 정규 음반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수록곡이다.

일반적이라면 이후 치러진 2002년 시상식 후보로는 배제될 법하지만 'Walk On'의 경우 별도의 싱글로 발매된 시점이 2001년 11월인 이유로 44회 시상식 후보 자격이 얻을 수 있었다. (시상식 당일 기준으로 전전해 10월 1일~전해 9월 30일 발매된 음반, 노래 등에 후보 자격 부여)

물론 U2의 작품이 훌륭했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후보로 넣고 시상해야 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거리다.

심지어 나온 지 40년 이상 된 작품으로도 상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 1992년(제34회)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부문은 'Unforgettable'(나탈리 콜 & 냇 킹 콜 노래)을 작곡한 어빙 고든이 차지했다. 그런데 이 곡이 발표된 건 한참 이전인 1951년.

비록 나탈리 콜의 동명 리메이크 음반이 1991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영향이 컸지만 이미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자기만의 스타일로 'Unforgettable'을 재녹음할 만큼 고전으로 평가받은 지 오래여서 뜬금없는 수상자 선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악의 대참사... '가짜 가수' 밀리 바닐리 신인상 수상

▲ 밀리 바닐리의 미국 시장 데뷔 음반 < Girl You Know It's True > 표지. ⓒ 소니뮤직코리아


지난 1990년 2월 열린 제32회 시상식은 그래미 역대급 치욕의 순간으로 손꼽힌다. 이때 <신인상>의 영예는 독일 출신의 댄스 듀오 밀리 바닐리에게 돌아갔다. 당시 'Baby Don't Forget My Number' 등 3곡 연속 빌보드 1위 차지 등 내놓는 곡마다 히트 행진을 기록했던 이들의 수상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해 말 "밀리 바닐리는 립싱크만 했고 실제로 부른 가수는 따로 있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면서 업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결국 NARAS는 신인상 수상을 박탈했고 밀리 바닐리는 사실상 음악계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메탈리카 거르고 제쓰로 툴? 메탈 팬들 분노하게 만든 31회 시상식

하드 록/헤비메탈 장르가 정식으로 그래미의 수상 장르로 등장한 것은 앞서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1989년(제31회)부터였다. 이때 후보자로는 AC/DC, 이기 팝, 메탈리카, 제쓰로 툴, 제인스 어딕션 등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펑크 록으로 분류될법한 이기 팝의 후보 지명은 그렇다 쳐도 공격적인 음향과는 전혀 연관 없는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쓰로 툴이 이 분야에 이름을 올리자 당시 음악계 팬들 대부분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심지어 강력한 수상 후보 메탈리카를 제치고 제쓰로 툴이 최종 수상자로 발표되자 당일 시상식 참석자 일부로부터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때의 논란이 큰 원인이었는지는 몰라도 NARAS는 이듬해 해당 부문을 폐지하고 <최우수 하드록 퍼포먼스(Best Hard Rock Performance)>와 <최우수 메탈 퍼포먼스(Best Metal Performance)> 2개로 분할/신설했다. 그리고 첫 번째 메탈 부문 수상자는 '당연히' 메탈리카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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