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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성벽이 '도민준'이라면?

[여행, 나의 일상에서 그대 일상으로 16]

등록|2017.03.10 10:43 수정|2017.03.10 10:43
'중국 정말, 다 크고 다 길구나!'

시안성벽을 걸으며 생각했다. 여기는 시안. 쑤저우에서 15시간 기차를 타고 중국 대륙 중심부로 들어왔다. 쑤저우가 그 옛날 기품 있는 예복을 입은 귀족 같았다면, 시안은 견고한 갑옷을 두른 늠름한 장수 같다.

쑤저우를 떠나며 '이제 고대 도시는 됐어' 하는 맘이었지만, 시안역을 나서자마자 '우와, 여긴 또 다르네?' 하며 호기심이 불끈 솟았다. 눈 앞의 거대한 구조물이 600년을 훨씬 넘은 '시안성벽'인 건 다음 날 알았다.

▲ 시안역 앞 시안성벽 ⓒ 이명주


시안성벽 위다. 전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성벽은 직선이 아닌 사각형이다. 총 길이 약 15킬로미터, 높이 12미터, 너비는 차 두 대가 족히 다닐 정도. 이런 구조물이 도심 한가운데 있고 여전히 실용적 가치가 있음이 놀랍다. 동서남북 네 개 문 중에 남문으로 올라왔다. 입장료는 54위안.

성벽을 걷는 기분이 오묘하다. 지금의 성벽은 명나라 초기인 1370년 경 재건해 수백 년에 걸친 대공사의 결과물. 그것만도 동시대 사람 전부가 최소 6번 태어나 죽었다를 반복하는 시간인데 2004년에 1400여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조각이 발견되었다.

▲ 시안성벽 위 ⓒ 이명주


곧바로 자전거 대여소가 보였다. 2시간 기준 1인용 자전거는 45위안, 2인용 자전거는 90위안. 하지만 '웬 자전거?' 하면서 가볍게 무시했다. 중국 물가 대비 입장료가 꽤 비싸다 싶었는데, 대여료가 그것에 맞먹고 무엇보다 천천히 걸으며 성벽 안팎을 자세히 봐야지 했다.  

하지만, 무지와 자만은 여행(=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자전거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고, 특히 대여 시간이 2시간인 것에 주목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때만 해도 나는 시안성벽의 실체를 몰랐던 것!

▲ 성벽 위 자전거 대여소 ⓒ 이명주


1시간도 채 안 걸었을 때다. 목이 마르고 추웠다. 처음 자전거 대여소와 함께 지나친 이동식 카페 이후 먹거리 파는 곳을 못 봤다. 게다가 한낮 자외선과 바람을 피할 곳도 없다. 내려가고 싶다고 맘대로 내려갈 수도 없다. 왜? 동서남북 문이 네 개라 하지 않았나.

조금 더 걸어가자 다행히 실내 박물관이 있었다. 1400년 전 쌓은 성벽 조각이 전시돼 있는. 덕분에 몸도 녹이고 화장실도 갔다. 용기를 내서 다시 밖으로. 남문에서 서문으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양옆으로 뻗은 길을 보니 난감하다. 하지만 슬슬 오기도 발동했다.

▲ 태양도 바람도 피할 길 없는 성벽 위 ⓒ 이명주


결국 성벽에서 내려온 건 5시간 후. 오후 2시경 남문에서 출발, 서문을 지나 해질녘 북문으로 내려왔다. 정확히 성벽의 절반(ㄷ)을 돈 것. 그 사이 자전거 대여소가 몇 개 더 있었지만 타지 않았다. 서문에선 잠깐 고민했지만 지나쳤다. 중간에 매점을 발견, 물을 마셨기에 가능했다.

성벽 위에선 도시의 변화상을 볼 수 있었다. 남문 구간은 성벽을 경계로 왼쪽은 첨단 기술과 자본이 집중된 화려한 건물들이, 오른쪽엔 과거를 붙들어 놓은 듯한 전통 가옥들이 있다. 서문부터는 몰개성한 아파트가 급격히 늘고, 나머지 구간을 너절한 판자촌이 차지하고 있다.

▲ 성벽 위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 성벽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 성벽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 성벽 위에서 본 도시 풍경 ⓒ 이명주


비극적인 역사의 순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여유로이 오가며 풍광을 감상하고 있지만, 과거 누군가들은 이곳에서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 벌어진 다리 난간 사이로 총구를 겨누고 화살을 던지기도, 또 그것에 맞아 아프게, 슬프게 죽어갔을 나와 같은 존재들…….

이 슬픔은 며칠 후 그 유명한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면서 극대화됐다.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그것들을 직접 만들었을 터. 어마어마한 규모와 정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극소수 인간의 광기어린 폭력에 의한 노동의 산물임을 기억하니 뜨악해졌다.

▲ 병마용 ⓒ 이명주


밤이 되면 고성은 변신을 한다. 이웃한 현대식 건물들과 함께 조명옷을 입고 화려하지만 천박한 쇼에 동참하는 것. 숙소 옆 술집 문 앞엔 가짜 병마용이 삐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러 날 밤산책을 하면서, 문득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떠올랐다.

시안성벽이 천 년 넘게 산 '도민준'이라면? 성벽을 향해 레이저를 쏘아대는 백화점은 '천송이'? 술집의 병마용이 과거 전쟁통에 죽은 어느 젊은이의 환생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저속하게만 보이던 밤의 풍경이 싫지 않았다. 누군들 엄숙하고 고독한 삶만을 바랄까 싶어서.

▲ 밤의 시안성벽 ⓒ 이명주


덧붙이는 글 '여행은 결국 나의 일상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오가는 여정.
고로 내 일상에선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하듯 천진하고 호기심어리게,
어딘가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할 땐 나와 내 삶을 아끼듯 그렇게.

지난 2016년 11월 9일부터 세 달간의 대만-중국-베트남 여행 이야기입니다.
facebook /travelforall.Myoun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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