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7번 바뀔 동안 꽃과 나무 가꾼 이 사람
울산 태화강에서 36년째 나무·꽃·새 돌보는 곽용씨... AI 오면 눈총 받기도
▲ 울산 태화강변에서 비둘기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분 후 모이를 뿌리자 어디선가 갈매기들이 몰려오고 있다 ⓒ 박석철
울산 태화강에서 36년째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꾸고, 23년 전부터는 비둘기를, 20년 전부터는 갈매기까지 돌보고 있는 곽용(76)씨. '비둘기 아저씨'로 불리는 그는 근래 들어 찾아온 병마와 싸우면서도 여전히 꽃과 나무, 새와 함께하고 있었다.
교육공무원이었던 그는 고향인 경남 합천교육청 청사를 꽃으로 가꾸다 울산으로 부임하던 1979년 이삿차량에 꽃씨를 싣고 와 이후 울산에서도 꽃을 가꾸었다. 2002년 울산 강북교육청 과장으로 정년 퇴임한 이후에도 태화강에서 꽃과 새와 나무를 돌보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꽃과 새와 사람은 하나죠!")
병마·태풍 피해... 하지만 여전한 꽃과 새 사랑
비둘기 아저씨는 그동안 자비를 들여 새 모이를 사고, 새벽부터 태화강변으로 달려 나와 꽃과 새를 돌보는 자원봉사를 스스럼없이 해왔다. 하지만 비둘기의 위생을 문제 삼는 민원과, 특히 지금처럼 AI(조류인플루엔자)가 찾아오는 해에는 주위의 싸늘한 시선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비둘기 아저씨에겐 이같은 주위의 냉대보다도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몇 년 전부터 찾아온 병마다. 서울까지 가서 대수술을 받기도 했던 그는 현재 큰 고비는 넘겼지만 예전과 달리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해져 있었고, 여전히 매일 치료를 받고 있다.
여기다 아저씨는 지난해 10월 울산을 휩쓸었던 태풍 '차바'로 인해 오랜 세월 길러오던 수백 그루 나무가 쓰러져 피해를 봤다. 창고에 쌓아 놓았던 비둘기 모이 수십 포대는 범람한 태화강 강물에 훼손됐다. 지난해 태풍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울산 태화·우정 시장은 이곳 비둘기공원에서 직선으로 불과 30미터 거리에 있다.
▲ 2016년 10월 태풍 차바로 곽용씨가 심어 기르던 나무 수백 그루가 훼손됐다. 곽용씨는 나무를 일으켜 세워 가지를 친 후 다시 심었다 ⓒ 박석철
곽용씨는 지난 36년간 무궁화, 백일홍, 라일락, 누릅나무 등 1900여 그루의 꽃나무를 심고 가꾸어왔다. 하지만 이번 태풍으로 3미터가 넘는 나무들이 쓰러지고, 뽑히고, 다쳤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가지를 잘라 다시 심었다.
요즘 비둘기 아저씨는 몸이 좋지가 않아 예전처럼 새벽에 태화강변에 나오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태화강을 찾는 비둘기와 갈매기에게 모이를 주고 태풍으로 상처 입은 나무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다. 비둘기 공원을 찾은 지난 10일,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부르자 갈매기 수백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왔다. 갈매기들은 아저씨가 뿌리는 모이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비둘기 아저씨는 "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오면 이곳에 국화며 분꽃, 맨드라미 등 꽃씨를 심을 것"이라고 했다. 아저씨의 정성으로 조만간 따뜻한 기온이 느껴질 때쯤이면 다시 태화강변은 울긋불긋 꽃세상이 될 것이다.
'죽는 날까지 꽃과 새를 돌보겠다'는 곽용씨
곽용씨는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다. 공무원이 된 후에도 직장에 꽃을 심고 가꾸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80년대초, 당시로써는 체계적인 꽃밭이 없던 울산 태화강변(과거 젊음의 거리로 불림)에 꽃밭을 조성했다.
태화강변에 꽃밭을 조성한지 10여 년째던 지난 1996년, 곽용씨는 모범공무원으로 선정돼 동료들과 이탈리아로 연수를 갔다. 연수 중이던 그는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앞 광장에서 팝콘을 구입해 던져주자 모여드는 비둘기를 보고 '참 신기하다. 나도 귀국하면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바티칸시국의 교황청에서는 교황이 비둘기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 울산 태화강변에 있는 모이 창고 앞에서 비둘기 아저씨가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로 인해 못쓰게 된 갈매기 모이를 가르키고 있다. 퇴비로 활용할 계획이다 ⓒ 박석철
이후 그는 자비들 들여 모이를 구입해 태화강변에서 비둘기를 돌봤다. 지자체가 마련한 것도 아닌데 이곳은 어느새 비둘기공원과 꽃밭이 됐다. 한때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곽용씨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 모여들어 모이를 먹는 모습은 그동안 방송사에서도 수차례 촬영해 보도되기도 했다. 비둘기가 찾아온 지 3년 뒤에는 갈매기까지 가세해 아저씨가 주는 모이를 먹었다.
새들은 비둘기공원에서 모이를 먹고 저녁이면 바로 옆 태화다리 밑부분에 들어가 잠을 잤다. 하지만 밀려드는 민원 등으로 태화다리 밑쪽은 철조망으로 가려졌다. 이 때문에 한때 수천 마리까지 몰려오던 비둘기와 갈매기의 수는 이제 수백 마리로 줄었다.
▲ 울산 태화강변에서 비둘기 아저씨가 이곳이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 게시판을 보고 있다. 아저씨의 노력으로 울산 중구청은 지난 2013년 이곳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 박석철
곽용씨는 "한번은 길 건너편 우정시장에 짜장면을 먹으러 갔는데 주인이 '태화강변에서 비둘기가 날아와 똥을 싸는 등 더러워서 못살겠다. 비둘기를 좀 없애달라'고 하더라"면서 "나는 호통을 쳤다. '비둘기가 가게로 왔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제발 비둘기를 사랑해 주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비둘기 아저씨는 자신이 태화강변에서 일해온 세월이 어느듯 역사가 됐다고 했다. 그는 "80년 대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90년대 김영삼, 김대중, 2000년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태화강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비둘기를 돌봐왔다"면서 "태화강변을 공원화 하고 비둘기공원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일을 인정받아 때로는 공로상도 받았지만, 때로는 해코지 민원으로 고통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운명이라 생각한다"면서 "죽는 날까지 새와 나무와 꽃을 돌보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곽용씨는 지난 1994년 정다운 스님에게 자신의 운명을 의뢰해 받은 책자를 소개했다. 책자에는 곽용씨가 '전생국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전생에 우리나라 임금으로 천하를 다스렸으니 이생에서도 민족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힘쓰며"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아저씨는 "책자의 내용이 내가 해온 일과 비슷하지 않나, 나는 비둘기들의 임금쯤 되려나" 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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