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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날, 공인중개사가 들고온 묵직한 보따리의 정체

시루떡 챙겨온 공인중개사... 오가는 정이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등록|2017.02.13 16:27 수정|2017.02.13 16:27
시국이 혼란하다. 이럴 땐 따뜻한 기억 하나가 위안이 된다. 달포 전에 아들이 서울에 전세 집을 얻고 이사했다. 수도권, 특히 서울 시내의 전세 집 얻기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금을 스스로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부모가 도와준다 해도 많은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떡하니 지낼 방을 마련한 것이다. 이럴 땐 아들이 좀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1월 초순의 어느 토요일, 아이는 짐을 옮겼다. 친구의 차로 고시원에 있는 짐을 빼서 새로 얻은 전세방(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자기 돈으로 마련한 집도 아닌데, 왜 아이는 굳이 '전세방'이 아닌 '전셋집'으로 부르려는 것일까.

스스로 이런 집을 얻기란 우리 사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대학생들 주거 해결책의 일환으로 전셋집을 얻어 주는 제도가 있다. 아들이 이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내가 공부할 때만 해도 이런 제도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조금이나마 살기 좋아졌다는 증거다.

▲ 스스로 이런 집을 얻기란 우리 사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사진은 내용과 관계 없음) ⓒ pixabay


서울 목동 학교 근처에 전셋집을 하나 얻었다. 아이도 애들 엄마도 마음에 들어 한다. 주인 댁 아주머니는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신방을 차려도 된다고 비행기를 태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아이는 스스로 전셋집을 갖게 된 데 대해 대단히 만족했다. 기본적인 가재도구는 아이가 마련했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다. 집에 들어간 이틀 뒤인 월요일, 아내와 함께 아들네 집(?)에 갔다.

​사내 아이 혼자 한 이사 현장을 상상해 보라. 어수선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내가 집을 정리해 주고 있을 때 한 젊은 아주머니가 찾아 왔다. 이 집을 소개해 준 공인중개사 사무실 대표였다.

나와는 초면이지만 아내와는 두 번째여서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그의 손에는 제법 묵직한 짐이 들려 있었다. 궁금해하는 줄 알고 공인중개사 대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모님, 이거 떡입니다. 이웃에 이사 떡을 돌리셔야죠. 멀리서 오시는 줄 알고 제가 준비해 왔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사 떡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들이 아직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방을 옮기는데 무슨 이사 떡까지….' 이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당한 일이어서 더 놀라웠다. 아내는 기분 좋게 이웃에 시루떡을 돌리며 인사하기에 바빴다.

팍팍한 세상이지만, 웃음 짓게 하는 작은 행동

▲ 시루떡 ⓒ flickr


"저희 아이가 바로 저기 201호로 이사를 왔습니다. 대학생이라곤 하지만 모든 게 부족해요. 잘 부탁드릴게요."

​모두들 좋아했다. 잘 지내자, 아들을 관심 갖고 지켜보겠다, 아들이 잘 생겼다는 등의 덕담이 돌아왔다. 동행한 아이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꾸뻑하며 허리 굽혀 인사했다. 인정이 살아 있는 것 같아 보는 이들까지 흐뭇해했다.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말에 공인중개사 대표는 가 볼 데가 있다면서 자리를 떴다. 멀지 않으니 가끔 아들의 근황을 살피겠다고 했다. 그냥 가려다 발길을 잠시 돌렸다.

"사모님, 지난 번 보내 주신 사과 맛있게 먹었어요. 저 혼자 먹기 아까워 김천의 교회 사모님이 보내신 거라고 막 자랑하며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집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이 많으면 어디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하늘에 별 따기다. LH에서 대학생 전세 자금을 지원받아 집을 얻어야 하는 우리 아이와 같은 입장엔 더욱 그렇다. 그런데 흡족하기까지한 집을 얻다니!

​이렇게 되는 데는 중개사 대표의 역할이 컸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집주인도 LH 대학생 전세금 대출 조건을 수용했고, 입주할 집도 근저당 설정이 전무해서 LH의 계약 조건에 부합하는 물건(物件)이었다. 공인중개사가 이런 조건의 집은 흔치 않다면서 즉석에서 계약서를 작성해 준 것이다.

아내가 선물한 청송사과청송 사과를 한 상자 사면서 아들 전셋집을 연결해 준 공인중개사에게도 한 상자를 따로 보냈다. 무척 고마워했다. 짧지 않은 중개 일을 하면서 이런 선물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 이명재


그 얼마 뒤 당도 높기로 유명한 청송 사과를 한 상자 사면서 아들 전셋집을 연결해 준 공인중개사에게도 한 상자를 따로 보냈다. 무척 고마워했다. 짧지 않은 중개 일을 하면서 이런 선물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작은 선물이 사람을 이렇게 기쁘게 할 수 있다니.

사랑과 인정 나눔은 늘 상대적이고 또 하기 나름이다. 인심이 점점 피폐해져 간다고 하지만 그것을 되돌리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나부터, 작은 것부터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꼭 물질이 아니어도 좋다.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 같은 마음이면 족하다.

​어제 오후엔 서울 아들 집주인으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에게 한 달에 두세 번은 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전화를 끊기 전 하는 말이 솔직히 사모님 보고 싶어 하는 말이라며 속내를 내비쳤다. 이제 서울 가서 하루 편히 묵을 집이 있어서 좋다.

사방에서 나를 협공한다 해도 이런 따뜻한 인정의 빛 한 줄기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랑과 정(情)은 사람이 지녀야 할 불변의 가치이다. 환경과 조건이 우리를 비굴하게 만든다 해도 그것을 뚫고 나갈 길은 오히려 곳곳에 열려 있다. 나는 그 문을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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