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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개편하자"는 안철수 주장은 기만적

[안반김 ④] 안철수의 '기업가 정신' '창의성'에 대한 정의, 잘못됐다

등록|2017.02.19 12:42 수정|2017.02.19 12:42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을 방문해 바둑프로그램 제니스고 6(Zenith go 6)과 대국을 하고 있다. 왼쪽은 유창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오른쪽은 이창호 기사. ⓒ 이희훈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원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출신의 교육자이기도 했지만 정치권에 입문한 후에도 교육을 향한 열의를 보여왔다. 지난해 총선 이후 국민의당은 상임위원장 자리 2곳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때 안철수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를 가져와야 한다고 적극 어필했다. 자기 자신이 배정받을 상임위 1지망에도 교문위를 쓰고 2, 3지망은 그냥 공란으로 남겨둘 정도였다.

그만큼 "교육혁명"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일, 그는 국회 원내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교육혁명론의 내용을 구체화했다. 연설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선 그가 보기에 현재 대한민국은 이화여대 정유라씨 특혜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드러났듯 '공정'함과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지도자가 없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하고 "나라 곳곳에 공정, 자유, 책임의 가치가 뿌리내리도록 해야"한다는 게 그의 명분이다. 물론 실리 차원에서도 교육혁명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현재 우리 앞에 닥쳐온 "4차 산업혁명은 여러 분야의 첨단 기술들이 한꺼번에 발전하고 융합하는 혁명"이다. 분야별 경계가 사라지고 일자리가 급변할 것이다. 기존 일자리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길 것이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것이다. 안철수가 보기에, 이 변화는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실패한 이유는 "정부에서 지휘하다 보니 민간의 자율성을 빼앗고 새로운 시도들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럼 정부는 뭘 해야 할까.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교육 혁명을 통한 인재 양성"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교육을 통해 기적을 만들어온 나라"이지만 "낡은 교육 시스템은 한계"에 부딪쳤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교육부를 폐지하고, 초중고 및 대학 교육을 창의교육으로 전환하고, 평생교육 강화로 중장년층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본다. 그는 현 교육부 체제로 인해 장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고 학교의 자율성을 빼앗아 창의교육을 막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안철수의 제안, 교육지원처 체제로의 재편

대안은 국가교육위원회 및 교육지원처 체제로 재편하는 것이다. 교육위원회에 "교사, 학부모, 여야 정치권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매년 향후 10년 계획을 합의하고 "교육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그는 더 나아가 "근본적인 변화"도 필요하다고 부르짖는다. "창의교육, 대학입시로 왜곡된 보통교육의 정상화, 사교육의 혁명적 감소"를 위해서는 학제 개편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만 6세부터의 교육을 만 3세부터로 바꾸고 유치원 2년, 초등학교 5년, 중학교 5년, 진로탐색학교 또는 직업학교 2년, 대학교 4년 또는 직장으로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사회진출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 개편안의 핵심은 "보통교육과 대학교육을 분리함으로써 보통교육을 정상화"하고,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인성을 배우고 타인과 협력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르치는"데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진로탐색학교에 진학한 후 대학으로 진학할지, 직업학교로 진학한 후 직업훈련을 받고 직장에 다닐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는 이중 어떤 길을 선택해도 사교육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적이 아닌 학점이수로 학생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전자를 졸업하면 자격고사인 수능을 통과한 후 학생부 제출과 면접을 통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후자를 졸업해도 산업체에서 일정 기간을 일하면 학생이 원할 때 쉽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필자는 대선 주자 중 안철수만큼 일관성있게 교육 문제에 집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가 마침내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하고 "나라 곳곳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부르짖을 때는 소름까지 돋았다. 필자도 이러한 기본 인식에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이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바꿀 수도 있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는 것을 '진지하게' 인식한 후보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더욱 엄격한 잣대들을 적용해 비판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는 "기업가 정신"에 대한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는 줄기차게 아이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지난해 10월 '안철수의 미래혁명'이라는 유튜브 방송에서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과 대담을 한 적이 있다.

안철수의 돌잡이는 "국민의당 집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린 창당 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당 집권'이 적힌 돌잡이 족자를 펼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주승용 원내대표, 박지원 대표, 안철수 전 대표, 권노갑 상임고문. ⓒ 이희훈


이 당시 그는 "초중고 교육을 창의적으로 바꾸려면 소프트웨어 내지 코딩 교육을 제대로 도입하고,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도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기업가 정신"은, 바른정당 유승민이 청년 창업론을 통해 주창한 "기업가 정신"과는 '얼핏' 차별화된 정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가 했던 말들을 살펴보자.

"기업은 일으킬 기(起)에 업 업(業)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만드는 활동이다. 나는 기업가정신을 경영자, 창업자 마인드보다 훨씬 범위가 넓은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감히 자기가 선택하고 그것을 관철해 새로운 길을 가게 하는 전반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안철수의 미래혁명 중)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도전해서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들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2월 3일, 국회 의원회관, 제4차 산업혁명포럼 토론회 중)

하지만 이런 말들은 개념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혹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활동"은 '창조 능력'이라고 부르면 그만 아닌가? 또한 "여러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자기가 선택하고 그것을 관철"하고,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능력도 그냥 도전정신이라 부르면 그만 아닌가? 창의성과 도전정신은 기업가 정신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지는 모르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변혁은 노동자의 권리 신장을 필요로 한다

현실 속의 기업은 '순수한' 창의성, 도전정신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이상 속의 기업가는 잡스, 저커버그, 그리고 V3를 만든 안철수 자신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기업가는 이재용, 박용성이다. 필자는 안철수가 CEO 출신이라서 의도적으로 개념 혼란을 조장한다고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현재 '기업'과 '기업가 정신'이 엄연히 내포하는 온갖 부정적인 찌꺼기, 모순들을 교묘히 희석시킨다.

만약 안철수가 "기업가 정신"을 창조력, 도전정신 그 자체로 재정의하고 싶다면, 언어적 기교 따위가 아닌 현실의 변혁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이 변혁은 일부 기업가가 지녔을지 모를 창조력, 도전정신에 호소하는 것보다 노동자의 권리 신장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한다. 프랑스와 독일처럼 노사 협상과 노동법을(노동교육), 질문하고 토론하는 법을(철학교육), 글 쓰는 법을(작문교육), 시위하는 법을(정치교육)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안철수의 교육혁명론에서는 이런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들의 멘탈리티를 "기업가 정신"으로 물들이고 싶다면 "노동자 정신"도 갖게 해주어야 균형에 맞는 것 아닐가? 둘째, 안철수는 변화의 주도권을 민간이 가져가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물론 박근혜 정권은 권위주의적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로부터 변화의 주도권을 민간에게 내주고 정부는 거기에 보조나 맞춰 인재 양성이나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를 즉시 이끌어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시대적 요구(4차 산업혁명)에 부응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대가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비판하고 저항할 줄 아는 지성도 필요하다. 한데 안철수의 교육혁명론에서는 이 날카로운 죽창 같은 지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명박-박근혜 집권기 동안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해 인문계, 예체능 학과가 많이 줄었다. 산업 수요에 맞춘답시고 10년 치 인력 수요 전망치를 내놓고 학과를 통폐합시키고 교육과정도 '친기업적'으로 바꿨다. 그러나 기업에는 사내유보금이 쌓였는데 낙수효과도 없고 일자리의 총량도 늘지 않았다. 낚인 것이다. 학문 다양성만 황폐화됐으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기도 어렵게 됐다.

민간에게 주도권을 준다는 것의 위험성을 안철수는 철저히 사유한 티가 안 난다. 교육 정책을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민주적으로 결정하면 된다지만 여기에 가장 숫자가 많은 '학생'들을 포함시킬지는 언급조차 안 했다.

학제만 개편하면 공정성이 실현된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을 방문해 바둑프로그램 제니스고 6(Zenith go 6)과 대국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셋째, 그가 말하는 "창의성"이 정확히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필자는 대학을 다닐 때, 중앙대 강인구 교수(교육학)의 교육심리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당시 교수님은 창의성을 "새로운 것을 적절하게 생성해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눈여겨볼 점은 단지 새로운 것만을 생성해내면 그만인 게 아니라 "적절하게"라는 가치판단까지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 코딩 교육만 잘 시키면 적절한 것인가?

물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면(이것조차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이런 기술들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 창조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창조는 유(有)를 재조합해 새로운 유(有)를 만드는 활동이다. 이미 존재하는 지식들을 아이들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말하지 않고, 신기술의 교육과정 도입만을 주장하는 것은 막연하고 무책임한 기대에 불과하다.

넷째, 학제 개편과 공정, 자유, 책임 같은 가치들의 실현 사이에 논리적 연결고리가 불분명하다. 가령 학제 개편이 정확히 어떻게 '공정성'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건가. 안철수는 보통교육과 대학교육을 분리하고 성적순이 아닌 학점이수제도로 전환하면 사교육이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대학 서열과 학력위계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부모의 경제자본이 '사교육비'를 거쳐 자녀의 문화자본(학력)으로 환전 되는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학제 개편만으로 공정성이 실현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고로 기만적이다.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고, 학점이수제도로 학생부의 영향력을 줄여도, 또 '면접' 사교육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면접에서는 학생들이 "기업가 정신"을 갖췄는지 평가할 테고. 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인가. 교육은 산업의 요구에 부응만 해서는 안 된다. 정치 역시 개인의 순수함과 열의에만 근거해서는 안 된다.

(한국정치사에서 반갑지 않은 정치인. 안철수, 반기문, 김종인 - '안반김'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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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김종인, 그 강 건너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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