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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도로에서 자동차는 '약자'

[스페인에서 한 달 살이-다섯 번째] 서울에서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에 탄다면?

등록|2017.02.17 16:55 수정|2017.02.17 16:55

지하철 역 플랫폼 풍경복잡한 출퇴근길 지하철 역에는 자전거와 킥보드를 들고 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방인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풍경이었다. ⓒ 서부원


스페인에서 한 달을 살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게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기차와 지하철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와 킥보드를 들고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정장 차림에 중년 신사가 접이 자전거를 손에 들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마치 손자의 장난감 같은 킥보드를 발로 구르는 모습이 처음엔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들도 엄연한 교통수단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하긴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 위를 보드를 타고 달리는 위험천만한 모습도 스페인에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때마다 차량 운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멈춰서 그들을 기다려주었다. 우리와는 달리 시내에 4차선 이상의 도로가 거의 없는 스페인에선 어느 곳을 가나 신호등이 무용지물 같았다. 건널목과 신호등의 색깔과 상관없이 사람이 나타나면 자동차는 무조건 멈춰 섰다.

스페인의 도로에서 자동차는 철저히 '약자'였다. 시내의 경우 도로도 비좁은 데다 일방통행도 많고 주정차 시설 또한 부족하다. 게다가 나란히 달리는 자전거와 킥보드에, 불쑥 도로로 튀어나오는 사람들까지 운전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그야말로 지천이다. 교행조차 힘들 만큼 좁은 이면 도로를 미꾸라지 헤엄치듯 잘도 내달리는 스페인의 운전자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를 떠나기 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대도시들 역시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몇몇 스페인을 다녀온 여행자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을 곁들여 열악한 스페인 도시의 교통 상황을 증명하기도 했다. 낯선 외국인 여행자가 렌터카를 빌려 시내를 관광하려는 건 최악의 선택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통체증에 느긋함으로 맞서는 사람들

사시사철 꽉 막힌 서울의 교통 체증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뉴스에서 소개된 것처럼 스페인도 교통 사정은 썩 좋지 못했다. 출퇴근 시간에는 교차로마다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 모습이 일상적이다. 그래도 견딜 만했던 건, 마치 차량마다 장치가 없나 의심이 될 정도로 경적 소리가 거의 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통 체증을 느긋함으로 맞서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우리나라 같으면 진작 도로를 손봤을 게 틀림없다. 길을 넓히든, 자전거나 킥보드의 통행을 법으로 금지시켜 단죄하든 여러 조치가 따랐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가 '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집스럽게 낡고 비좁은 도로를 짐짓 모르는 체 '방치'했다.

미로처럼 꼬부라진 도로망과 족히 수백 년은 됐음직한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저러다 자동차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쉽사리 망가지겠다며, 오지랖 넓게 남의 나라 운전자들을 걱정해줄 정도였다. 현실을 모르지 않을 스페인 당국의 교통 대책을 알 길은 없지만, 자동차 운전자의 입장에 서지 않는 건 분명해 보인다.

객차 내 자전거 거치대기차든 지하철이든 객차마다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돼 있다.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될 듯도 하지만, 불편해 하는 표정을 짓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서부원


우리는 교통 체증을 좁은 도로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길이 막히면 도로를 넓히는 게 하나의 '공식'이 됐다. 국토 면적 대비 도로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영예'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늘어나는 자동차 탓으로 돌리는 듯했다. 차량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고, 그렇게 되면 다른 것을 허물거나 자연을 훼손하지 않아도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셈이다.

부러운 풍경이지만, 스페인에선 자동차보다 자전거 탄 사람들이 더 편리하도록 교통 체계가 설계돼 있다. 택시 등을 제외하고는 어디든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배려돼 있고, 기차역과 지하철역 등지에는 자전거를 끌고 이동할 수 있도록 무빙워크를 경사지게 설치해놓았다. 심지어 출입문 안쪽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해둔 식당까지 있을 정도다.

자전거로 스페인 일주를 하고 있다는 젊은 외국인 여행자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여섯 배 가까이 넓은 나라를 어떻게 자전거로 돌아다닐 수 있을까 처음엔 의아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도시 간 이동은 기차를 이용하고, 시내 관광은 자전거로 한다고 했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꼼꼼하게 관광지를 찾아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편리한데다 비용 또한 아낄 수 있다며 자랑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조차 자전거를 보관하는 곳이 있다면서, 이렇게 편리한데 굳이 값비싼 자동차를 구입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듣기 힘든 말이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여행 왔다는 그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자전거는 궂은 날씨 때문에 타는 데 제약이 있을지언정 다른 불편함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어엿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유럽의 자전거

유럽에서는 자전거가 일찌감치 어엿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그의 말마따나, 자전거가 그토록 편리해진다면 우리도 자동차에 대한 선망과 집착을 던져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자동차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해도, 운전이 그토록 불편해지고 '갑'의 지위를 상실한다면, 결국 애물단지로 여겨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머지않아 우리나라엔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만 남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차가 자동차에 밀려 제2의 교통수단으로 밀려난 지 이미 오래다. 서울과 지방의 대도시를 잇는 고속열차와 대도시의 지하철을 제외하고는 수익을 내는 노선이 거의 없다고 한다. 기차가 지나지 않는 철로엔 잡풀만 무성하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여행상품이랍시고 '레일바이크'로 연명하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듣자니까, 조만간 벽지를 오가던 노선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모양이다. 얼마 전 코레일은 정부 예산 삭감을 이유로 벽지 노선 열차 운행 횟수를 대폭 축소할 계획임을 밝혔다. 공익보다 효율성을 앞세운 것이다. 그러나 편수가 줄어들고 무인 기차역이 늘어나면 교통 약자가 배제될 수밖에 없고, 결국 노선이 끊긴 마을이 쇠락해지는 건 불문가지다.

승객이 줄어 어쩔 수 없다는 인식과, 교통이 불편하니 사람이 더 떠나게 된다는 해묵은 논쟁에서 늘 승자는 전자였다. 흡사 아이들이 떠나니 시골 학교를 통폐합한다는 정부와, 학교가 사라지니 아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시골 사람들의 하소연이 충돌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대중 교통수단으로서 자동차와 자전거, 또 자동차와 기차의 우선 문제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로지 자동차를 위해서 자전거와 기차를 희생시키는 형국이다.

입만 열면 환경오염과 에너지 위기 운운하면서도 자전거를 대중 교통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아예 박탈하고 한낱 레포츠의 수단쯤으로 격하시켜버렸다. 도심의 자전거 전용 도로는 유명무실해진 지 이미 오래고, 자동차와 함께 도로 위를 달릴라치면 위험천만한 모험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는 동안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는 자전거 공장이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자동차 대수를 줄여야 하는 이유

세비야 역의 무빙워크 경사로 모습웬만한 역마다 계단과 함께 무빙워크가 설치된 경사로가 마련돼 있는데, 자전거를 들고 이동하기 편하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 서부원


밑도 끝도 없이 도로를 늘릴 게 아니라, 자동차 대수를 줄여야 한다. 그러자면 유럽처럼 철도와 자전거 교통을 활성화시켜야한다. 차도를 줄이고 자전거 전용 도로나 보도를 늘리는 등 자동차 운전자들을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이는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고속도로의 교통 혼잡과 대도시의 교통 체증을 줄이는 근본적인 방안일 수 있다.

혹자는 물신주의에 빠진 우리의 국민성을 탓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급차를 선호하는 허영심 때문이라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TV를 틀 때마다 나오는 자동차 광고에 현혹돼서 자동차에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운전하기 불편하고 확실한 대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선택을 달리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엔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돼 있다.

얼마 전 설날 때 꽉 막힌 성묫길 도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 고작 몇 킬로미터 가는 데 한두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데, 대안이 없어서 이러는 걸까 하고. 대책이라곤 안쓰럽게도 묘지 입구에서 경찰들이 새벽녘부터 나와 수신호를 해주는 것이 전부다. 성묫길 몰려드는 자동차의 물결 앞에 그들의 '헌신'은 늘 그렇듯 시늉으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기차역 하나가 있다. KTX나 새마을호는 아니어도 이따금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시골의 간이역이다. 설날이나 추석 당일 하루만이라도 기차를 이용해 그곳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묘지까지 수시로 셔틀버스를 운영하면 어떨까. 한편, 기차 이용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인근 초등학교에 주차장을 마련해놓은 다음, 셔틀버스 운영을 병행해도 될 일이다.

자신의 자전거를 챙겨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이를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을 보며 샘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하긴 장애인을 위한 시내버스조차 드물고, 장거리 고속버스엔 그들을 위한 편의 장치가 아예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부러움조차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어제도 오늘도 TV와 신문에는 온통 자동차 광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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