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면접관이 물었다, "차녀인데 책임감이 있나?"

[고조선이야 뭐야 ③] 엉망진창 구직문화... 부적절한 면접질문들 유형별 정리

등록|2017.02.27 11:58 수정|2017.02.27 11:58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공기처럼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을 마주할 때죠. 여성 구직자, 여성 노동자, 여성 청소년 등을 옭아매는 '고조선' 급의 낡은 편견을 진단합니다. [편집자말]
오늘날 구직자들의 모습을 보면,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떠오른다. 산짐승들도 간절함을 가지고 100일 동안 '노오력'을 하면 사람이 되는데, 구직자들은 쓰디쓴 인고의 열매를 먹으며 평균 13개월이라는 취업준비기간을 거쳐도 '사람 구실' 한번 하기가 녹록지 않다.

게다가 모두가 아는 그런 이유들로 -기업은 사람을 잘 안 뽑으려 하고, 그에 따라 구직자들의 스펙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고, 그에 반해 미래가 더 어두워지는 질 낮은 일자리들만 그득하고- 구직자들이 설 곳은 좁디좁다. 더군다나 소속의 부재로 인한 불안정함과 생존의 압박으로 인해 구직자들은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를 지키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구직자 스스로를 포함한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직자들은 '이미 사람'이라는, 존중의 대상이라는, 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다.

2016년, 한국여성민우회는 '9직X2직=18:나의 육두문자 구직라이프'라는 사업을 통해 20~30대 여성 12명의 구직 경험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와 구직사이트 모니터링을 통해 들여다본 구직현장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대우나 배려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갑의 모습을 한 기업이 새로울 것도 없다 싶었던 이유는, 아마 취업의 어려움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주변에서 쉬이 목격하거나 짐작할 수 있었던 풍경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또, 뭐, 청년들이 힘들다는 얘기겠지' 싶겠지만, 읽다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고조선의 향기'에 흠칫 놀랄 수 있으리라.

'애인 유무, 태몽, 태어난 시각' 황당 질문들... 진짜 고조선이야 뭐야

▲ 새로 터 잡은 지역에서 새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했다. ⓒ pexels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면접까지, 일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거치는 첫 관문에 도달하게 되면 나에 대해 묻는 수많은 빈 칸들과 마주하게 된다. 구직자라면 받게 되는 그 질문들을 나열해보자면 키, 몸무게, 시력, 재산, 부모님 직업, 애인 유무, 결혼, 육아 계획, 종교, 혈액형, 태어난 시각, 태몽, 아버지의 자동차 소유 여부, 자가 여부 등이다.

친한 친구도 나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까 싶은 이 무리한 질문들, 심지어 업무와 관련도 없어 보이는 질문들을 공적으로 만난 첫 자리에서 다 쏟아낼 것을 요구받는다. '우리 집이 자가면 뽑고, 반전세면 안 뽑을 건가?'라는 삐딱한 질문이 샘솟지만 성실한 답변으로라도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기에 이 질문들을 피할 뾰족한 수는 없다.

그렇게 나에 대해 있는 것, 없는 것 다 쏟아내도 구직자가 기업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란 거의 없다. 과장 아닌 과장을 보태 이야기하자면 기업의 이름과 위치나 겨우 알 수 있는 정도랄까? 어떤 업무를 맡게 될는지, 연봉은 얼마인지와 같은 최소한의 정보조차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쯤하면 '내규에 따름'이나 '추후 협상' 같은 말들로 구직자를 농락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항상 선택받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구직자들이 더 위축되는 것 같아요. 내가 당연히 알아야 될 정보이지만 어떤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물어보는 걸 꺼리게 되고. 혹시나 돈 밝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며 너무 눈치 많이 보는 것 같고. 그런 게 너무 이상한 것 같아요."

기업의 갑질이 사회에 만연한 것, 그리고 계속되는 것은 면접관 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만나는 모든 면접관마다 인성이 나쁠 리는 없으므로) 구직자에 대한 '을 취급'을 용인하는 기업의 태도 때문이다. 기업 앞에 한낱 개인인 구직자들은 당연히 대응하기 너무나 어렵고, 뿐만 아니라 그 기업에 입사의지가 있든 없든 대응 이후에 올 불이익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구직자 개인이 대처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이기에 사회적 대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인터뷰이들의 면접사례를 보면, 구직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부당함을 예방하거나 저지시킬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에 더욱 공감할 것이다.

부적절한 면접질문들 유형별 정리  

▲ "성형을 많이 했는데, 혹시 외모컴플렉스가 있나?" 구직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쏟아지는 면접 질문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엉망진창이다. ⓒ pixabay


[외모지적형] 이런 말이 하고 싶어질 수 있음... "거울 빌려드릴까요?"

"외모에 대한 얘기는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하거든요. 키가 작네, 말랐네, 너무 뚱뚱하네, 이런 식으로. 애초에 자기들이 무례하다는 생각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나는 평가하는 입장이니까 이런 말을 막 내뱉어도 돼' 약간 이렇게 생각하는.

같은 스터디원 언니한테 들었는데 면접관이 언니한테 '성형을 너무 많이 했다. 혹시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것 아니냐?' 하면서 '그걸로 불이익을 받고 자랐다면 사람이 성격이 약간 뒤틀려있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못생긴 사람은 자라온 환경 자체가 되게 불우할 거고, 그게 사회생활을 할 때 안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은)

[편견범벅형] 질문에 편견과 고정관념이 덕지덕지

"'차녀인데, 책임감이 있나?' '아 내가... 다음 생에는 장녀로 태어나겠어.(빵 터짐)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진짜."(기영)

[사생활캐묻기형] 하루에 화장실 몇 번 가는지까지 물어볼 듯

"아직 회사에 입사한 것도 아닌데, 점심시간에 밥 먹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사담 같은 걸 면접 자리에서 먼저 얘기한다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좀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하고 그랬어요." (경주)

"'내년에 사무실이 타 지역으로 이전을 하는데 그러면 남자친구가 싫어하지 않을까요? 남자친구가 반대하면 어떡할 거예요?' 내가 좀 황당했다. 처음에 첫 질문은 '부모님이랑 같이 사냐', '부모님이 다른 지역으로 내려간다고 하면 괜찮을까요?' 이거였어. 그 다음 질문이 '남자친구 있어요?' 내가 너무 황당해가지고 '제가 간다는데, 제 삶은 제 삶이고, 제가 간다는데...'" (명진)

[훈계형]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 구직자에게 푸는 자리인가?

"'좀 알고 지원해라'라고 하면서 훈계를 하는 거예요. 저는 부푼 마음을 안고 면접에 갔는데... '주제를 알고 지원해라'라고 하면서. 자기가 뭐 '이 업계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너를 불렀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거면 전화로 하던가. 문자로 해도 될 거 같은데. 굳이 면접을 위한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데 불러서 그렇게 하니까, 이럴 거면 왜 불러서..."(규진)

여성들에게만 묻는 질문도 있다, 이름하여 '결/남/출'

구직자에게 쏟아지는 황당한 질문들 속 특히 여성들에게만 묻는 질문도 있다. '결혼 계획은 어떠한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출산 계획의 여부'를 물어보는 질문은 여성들에게 향하는 필수적인 관문과도 같다. 그 질문들의 앞 글자만 줄여 '결/남/출'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근거로 작동된다.

왜 그러냐 하면 사실 그들이 질문하는 이유는 '여자들은 연애하면 SNS를 많이 해서 업무에 지장이 갈 것이다', '여자는 결혼하면 일을 그만둘 것이다'라는 편견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들은 남성에게는 물어볼 필요가 없기에 묻지 않거나, 묻는다 해도 답변이 편견으로 작동되지는 않는다. (모든 질문에 YES라는 답은 오히려 능력있는 남성으로 비춰지게 한다.)

여성들이 결혼한 후에 일을 그만두는 것은 사회구조와 조직문화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모두 개개인의 선택이듯 물어보는 회사, 결혼을 해도, 출산을 해도 여전히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게 아니라 '어차피 나갈 거잖아'라는 색안경으로 보는 회사는 이미 답이 없다.(절레 절레)

얼마 전, 민우회의 일고민상담실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면접에서 업무와 1도 상관없는 '몸무게는? 태음인인지 소음인인지? 결혼은? 그럼 사는 건 혼자? (feat. 아가씨가 위험해서 혼자 어떻게 사냐)' 등등의 질문에 멘탈이 탈탈 털렸는데 조치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본인도 할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아 전화를 거신 걸 텐데, 관련한 법 조항이 없어 당장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는 도움을 드릴 수 없었다.

그 대신, 채용문화를 개선하자는 의미로 기업에 인권적인 면접문화를 위해 제안하는 8가지 리스트를 발송하였다. (구직문화 개선을 위한 8가지 공개제안서 보러가기)

노동자에게는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근로기준법이 있는데, 구직자는 무엇으로 보호가 가능할까?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나 내용이 심히 부족하다. 거짓 채용광고를 금지하고, 구직자가 원하는 경우 구인자는 제출 서류를 반환하여야 한다는 내용인데 이마저도 홈페이지 또는 전자우편으로 제출한 서류는 예외이다.

요새 누가 서류로 제출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며 한숨이 나오는데, 다행스럽게도 모욕적 구직문화에 대한 공론화 속에 이 법안의 개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진란이 없는 표준이력서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변화의 흐름을 담고 있는 개정안들이니 결과를 주목해보자.

하지만 구직문화 전반의 깨알같은 엉망진창들을 생각하면 이런 개정안들로도 부족하다. 지금의 구직문화는 '면접 시 무례한 질문금지법'으로 '차녀인지 묻지마세요,' '외모 지적질은 금지'와 같은 조항이 필요한 형편이니 말이다. 이런 법안을 상상하며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온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법으로 금지해야 하다니. 그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하지 않을 무례한 말이라면 구직자한테도 안 하면 될 텐데 말이다. 아, 기업에 묻고 싶다. 이런 법이 꼭 있어야겠니. 그냥 너희들이 그만하면 안 되는 거니.

우리가 흔히 응원의 한 마디로 쓰는 파이팅(fighting)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한다. fighting은 정말 싸울(fight)때 쓰는 말이라고. 하지만 구직자에게는 fighting이란 말이 참으로 적절하겠다. 2017년에 느껴지는 고조선의 향기에 참을 만큼 참은 구직자들, 정말로 파이팅!!

※ 기사에 포함된 인터뷰는 한국여성민우회의 '<나의 육두문자 구직라이프> 인터뷰 키워드 모음집:참을 만큼 참았어'에서 인용하였음을 알립니다.

[관련기사]

[고조선이야 뭐야 ①] "여자 혼자 여행 간다는데 보내줘야 하나요?"
[고조선이야 뭐야 ②] 교복에 검정스타킹 금지, 이유는 "야해 보여서"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