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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도 못봤던 영화, <종로의 기적>의 가치

[리뷰] 국내 최초 게이 커밍아웃 다큐영화, 시네마달 구하는 촛불영화제로 만나다

등록|2017.02.20 17:27 수정|2017.02.20 17:27

▲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 포스터. 시네마달에서 배급했다. ⓒ 시네마달


<종로의 기적>(2010)은 <두 개의 문>(2011)과 함께 2010년대 이후 제작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중 많이 회자되는 영화 중 하나다. 다운로드 서비스가 안 되는 터라, 개봉 이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상영회를 종종 개최해왔지만, 최근 <종로의 기적>이 다시 독립 영화팬들 사이에서 소환된 것은 아마도 지난해 12월 개봉한 <위켄즈>(2016) 영향이 크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18일, 19일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이틀간 열렸던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촛불 영화'에서 전설의 그 영화 <종로의 기적>을 만날 수 있었다.

7년 만에 다신 만난 전설의 영화

<종로의 기적>은 국내 최초 게이 커밍아웃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2011년 개봉 당시에도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종로의 기적>을 제작한 '성적 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아래 연분홍치마)의 차기작 <두 개의 문>도 개봉 당시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연이어 성공을 거둔 터라, 독립영화계 내에서 연분홍치마를 집중 조명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이후 연분홍치마는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과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이 공동 연출한 <공동정범>(2016)을 공개하며, 관객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종로의 기적>이 만들어진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성 소수자(LGBT)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종로의 기적>은 이미 2000년대 후반에 성 소수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외치는 용감한 영화다. 굉장한 선구자적 자세다. 하지만 <종로의 기적>을 촬영 중이던 2008년이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7년에도 동성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인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더욱 보수화되었고, LGBT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 한 장면. 성 소수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어렵다. ⓒ 시네마달


하지만 성 소수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종로의 기적> 이후 6년 만에 등장한 <위켄즈>는 국내 최초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 단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보이스'는 주로 성 소수자들을 위한 공연을 중점으로 활동하지만, 때로는 쌍용자동차 복직투쟁현장, 세월호 참사 추모 공연,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 등 그들을 필요로 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인권 운동계의 아이돌'로 통한다. 이전에는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을 위주로 활동했던 '지보이스'가 각종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계기는 자신들을 비롯한 세상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혁상 감독이 만든 <종로의 기적>도 <위켄즈>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종로의 기적>에는 4명의 게이가 등장한다. 게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이들은 직업도 성격도 좋아하는 파트너 취향도 제각각이다. 지금도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소준문씨는 <종로의 기적> 다큐멘터리 촬영 당시 진행하고 있던 자신의 영화에서 스태프들과의 연이은 소통 실패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열혈 인권 운동가 장병권씨는 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이곳저곳 열심히 뛰어다닌다. 다큐멘터리 촬영 도중 세상을 떠나 모두를 안타깝게 했던 고 최영수씨는 <위켄즈>의 배경이기도 한 '지보이스'의 열혈 단원으로 그의 인생 최고의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정욜씨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HIV/AIDS에 걸린 환자들의 인권 향상 운동에 틈틈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7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 <종로의 기적>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소준문 감독은 게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고, 동성애자 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병권씨는 최근 연분홍치마팀에 합류하여 성 소수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정욜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HIV/AIDS 감염인들의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영수씨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지보이스'는 <위켄즈>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종로의 기적> 촬영 당시, 이혁상 감독을 포함한 <종로의 기적> 출연진들은 한결같이 성 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받고, 자신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LGBT들은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가볍게 취급하고, 그들을 '예외적, 일탈적' 존재로 규정하는, 변하지 않는 세상의 태도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몇몇 성 소수자들 사이에서는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하는 격양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웠던 영화가 대중 앞에 나설 기회를 만드는 데, 시네마달은 언제나 앞장섰다. ⓒ 시네마달


<종로의 기적> <위켄즈>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과 사랑 또한 다수의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랑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촘촘히 따라가는 <종로의 기적>, <위켄즈>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종로의 기적>이 개봉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독립영화팬들이 찾는 스테디셀러로 주목받는 것은 게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요소도 있지만, 그 어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로의 기적>처럼 <위켄즈>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명작이 될 것이다.

다운로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웠던 <종로의 기적>을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는 취지에서 마련한 촛불영화제를 통해 관람할 기회를 제공한 분들께 감사의 인사라도 드려야 하나. 몇 년 뒤에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서 <종로의 기적> 주인공들과 함께 웃으면서 영화를 보는 그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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