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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까지 1년...진상 규명은 끊임없이 늦춰졌다

[어느 보급병의 반성문 : 중]

등록|2017.02.28 05:32 수정|2017.02.28 05:32
내가 사고의 전말을 보고한 것은 2014년 3월 초였다. 당시 나는 적어도 상반기 중으로는 이 사건이 마무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진상 규명은 끊임없이 지연됐다. K중사에 대한 재판도, 내가 전역을 하고도 2달이 지나서야 열렸다. 전산 조작이 이뤄진 기간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진상 규명부터 처벌까지는 1년이 넘게 걸렸다.

신속한 보고 대신 지휘관 눈치 보기

'신속, 정확한 보고가 생명이다.'

육군훈련소에 입영한 훈련병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다. 위험 상황에서 보고가 지연되거나 누락되면, 결국 적에게 생명을 잃는다는 준엄한 경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육군훈련소 안에서만큼은 그랬다.

▲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의 보급창고 ⓒ 국방TV


이 사건이 상부에 보고된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2014년 3월 초, 나는 00연대 군수과장 S대위와 K중사의 후임자였던 O중사에게 보고했다. 두 사람이 사고 경위를 파악하던 중이었던 3월 중순, K중사가 00연대 연대장 N대령을 독대했다. 이때 N대령은 전산 처리 과정에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3월 말, S대위가 N대령에게 실제 재고가 부족해서 전산을 조작했음을 보고했다. 이 무렵에 훈련소 고위 관계자들도 관련 내용을 인지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다. 4월 초부터 갑자기 훈련소 고위 관계자들이 연대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수 차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창고를 열라고 했다. 그러더니 몇 가지 품목을 실셈해보고는, "물자 관리를 이따위로 하느냐"거나 "사태 파악이 왜 이리 늦느냐"며 다그치기 일쑤였다. 6년 동안 창고를 관리했던 K중사는 당연히 그 자리에 없었다.

▲ 육군훈련소장 재임 당시 김규하 소장의 모습 ⓒ 더불어민주당 디지털미디어국


"소장님한테 보고 올라가면 우리 다 죽는 거야."

당시 훈련소 군수과장이었던 L중령은 수시로 이런 말을 했다. 당시 훈련소장은 현재 육군종합행정학교장인 김규하 소장이었다. 당시 훈련소 내에서 김규하 소장은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L중령의 발언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L중령의 보고 누락 및 지연이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깨질 때 깨지더라도 보고를 했어야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보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선에서 문제를 끝내려 했다.

전산을 조작한 것은 결국 물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K중사를 조사해, 물자가 없어진 경위부터 밝혀야 했다. 그 후, 사라진 물자를 손실 처리하고 연대의 재산을 실 재고와 맞춰야 했다.

그러나 L중령은 누차 "어떻게든 (물자를) 구해와서 메꾸라"는 안이한 지시만 내렸다. 조사도, 손실 처리도 없었다. L중령보다 계급은 높았지만, 기수상으로는 후배였던 N대령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심지어 "K중사를 너무 독촉하면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으니 다그치지 말라"는 인자한 지시도 내렸다. 아마 당시 K중사 입장에서는 L중령이나 N대령이 구세주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L중령의 말처럼, 모자란 물자를 구해올 수만 있었다면 금상첨화였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문제를 끝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상적으로 물자를 관리해왔다면, 어떤 부대에 물자가 남아서 넘쳐나겠느냐는 것이다. 특히나 훈련병 물자는 육군훈련소에 가장 많았다. 육군훈련소 외부의 다른 부대에서 훈련병 물자를 구해오겠다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K중사가 옮겨간 부대에서도 반발이 거셌다. K중사에게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S대위와 O중사는 수시로 K중사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해당 부대에서 업무 태만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해당 부대의 부대장은 심지어 00연대에서 옮겨간 사람이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자신이 몸담던 부대에 사고가 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인수인계가 끝난 상황에서 왜 K중사에게 책임을 묻느냐"며 K중사를 두둔했다. 결국 K중사는 '더 이상 00연대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적반하장 식 태도로 돌변했다. 이대로라면 K중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판이었다.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심지어 N대령을 찾아가 K중사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상 규명과 처벌 없이, 정상화는 불가능했다.

오랜 고민 끝에 2014년 5월, 나는 인트라넷을 통해 훈련소장에게 직접 사태의 전말을 알렸다. L중령 등 훈련소 간부들의 전횡과 진상규명 방해, 주먹구구 식의 해결과정 등을 보고했다. 사흘쯤 지났을까. 김규하 소장이 회의석상에서 참모장 박주성 준장에게 이 사안의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내가 김규하 소장에게 직보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훈련소 전체에 알려졌다. 군 인트라넷이 익명성을 담보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당시 간부들은 몰랐겠지만, 훈련소 곳곳에 나의 지인들이 병사로 복무 중이었고 이들은 거의 매일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몇몇 간부들은 상관모독죄로 나를 징계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김규하 소장의 보호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징계는 시도조차 없었다.

▲ 2014년 8월 육군훈련소를 찾아 보급품을 살피는 박영선 의원과 백군기 의원의 모습 ⓒ 더불어민주당 디지털미디어국


보험, 그들이 손 안대고 코푸는 방법

김규하 소장의 지시에 따라 군 검찰이 K중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훈련소 전체적으로 재물조사가 실시되는 등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L중령은 물자 구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손 안대고 코 풀' 방법을 찾았다. 연대 행정보급관들에게 부족한 재산에 대한 손실 처리를 떠안으라고 한 것이다.

행정보급관에게는 '물품 책임관 보험'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보험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실수로 물건을 잃어 버리거나 파손했을 경우에 대비해, 일정 금액까지는 책임을 묻지 않고 보험으로 변상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였다. 아이러닉하게도, 훨씬 많은 규모의 물자를 관리하는 연대 군수담당관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L중령은 "행정보급관들이 연대 책임을 지라"고 한 것이다.

나는 강하게 반대했다. 변상 처리를 위해서는 '손망실 보고서'라는 것을 작성해야 했다. 행정보급관들이 책임을 져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물자를 잃어버린 적은 간간이 있었지만, 그것이 연대 전체에 손실을 끼쳤다고 소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L중령은 면전에서 일축했다. 맞든 틀리든, 일개 상병의 말을 들어줄 간부는 군 안에 없었다. 나로서는 손실 처리를 위한 행정업무를 거부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저항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 국방부 '손망실업무처리에 관한 훈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손망실 보고서 양식 ⓒ 국방부


사실 그들의 관점에서는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다. 보험금 처리만 제대로 되면 재산은 거의 완벽하게 정리되는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험금 한도액 내의 손실은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방책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질 나쁜 선례를 남겼다. 물품 책임관 보험의 보험료는 세금으로 부담한다. 세금으로 구입한 물자가 없어져 생긴 손실을, 세금으로 낸 보험금으로 변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실 경위를 허위로 꾸며,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웠다는 점에서 심각한 군법 위반이다.

육군훈련소의 '시한폭탄 떠넘기기'

가을로 접어들 무렵, 김규하 소장이 육군 인사사령관으로 영전하면서 훈련소는 일시적으로 지휘관 공백 상태를 맞았다. 자연히 이 사고에 대한 지휘부의 관심 역시 떨어졌고, 그사이 K중사가 육군 2사단으로 떠난다는 소문을 접할 수 있었다.

육군훈련소 군 검찰은 7월 중순부터 K중사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고, 나 역시 세 차례 증인으로서 진술을 했다. 그러나 K중사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소환조사를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K중사가 타 부대로 떠난다니,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전출 신청은 K중사가 한 것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승인한 육군훈련소의 책임이 오히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당시 내가 일기에 남긴 추정은 이렇다. K중사가 육군훈련소 내에 복무하는 상태로 처벌받으면, 육군훈련소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 보고 일부 고위 관계자들이 그를 타 부대로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군 검찰의 내사를 방해한 것이자 범인을 도피시킨 것이나 다름 없다.

▲ <진짜사나이>에 소개된 2사단의 모습 ⓒ MBC


나는 K중사의 전출 소식을 군 검찰에 알렸지만, 당시 관계자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전출을 막지는 못했다. 군 검찰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사명령을 강행한 것은, 결국 이유가 있어서 K중사의 전출을 승인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일 것이다.

더구나 K중사는 당시 훈련소 내에서도 유명인사였다. K중사의 전출 인사명령의 결재라인에 있던 이들이 K중사의 전출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한다. 당시 훈련소장 직무대리였던 참모장 박주성 준장 역시 이 사안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문제만큼은 반드시 군 당국이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육군훈련소에 잘못이 없다면, 이토록 무리한 인사 이동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당시 훈련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K중사가 2사단으로 전출되면서 2사단은 아무 잘못도 없이 피해를 입었다. K중사가 2사단으로 간지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구속됐기 때문이다. 병참 특기 부사관은 그리 흔치 않아서, 결원이 발생하면 부대가 타격을 입는다.

뿐만 아니라 육군훈련소 법무부가 했어야 할 K중사에 대한 기소 역시, 2사단 법무부가 떠안았다. 재판정에서 만난 2사단 법무부 관계자들은 "난생 처음 듣는 용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K중사를 조사하기 위해 몇날 밤을 지새웠다고 토로했다.

이쯤 되면, 후방 비전투부대인 육군훈련소가 전방 전투부대인 2사단을 어떠한 이유에서건 기만한 셈이다. 고의였다면 악질이고, 실수였다면 무능이다.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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