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빠'였던 이재명 친형은 왜 '박사모'가 됐나
[대선주자 검증] '형수 욕설'에서 '친모 폭행'까지... 이재명 성남시장 형제 갈등의 진실
▲ 이재명 '네거티브 이미지 어떻게 고칠까' 이재명 성남시장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자신의 캠프에서 촛불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공약을 발표하던 도중 기자들의 질문에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 유성호
"둘 다 내 동생이고, 어머니에게도 미우나 고우나 자식인데…."
이재명 성남시장 둘째형 이재영씨가 지난 23일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족 문제를 정치에 악용하지 말아 달라"는 가족 호소문을 발표한 지 3년 만이다.
이른바 '이재명 형수 욕설' 논란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불거졌다. 이 시장 셋째형 이재선씨는 지난 2012년 6월 이 시장이 형수에게 욕설하는 내용이 담긴 전화녹음파일을 한 지역 언론과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재명 시장은 욕설한 건 인정하면서도 어머니를 욕하고 폭행하는 친형 부부의 '패륜' 때문이라며 자신의 가족사까지 SNS에 낱낱이 공개했다(관련 글: 나의 슬픈 가족사..'이재명 형수 쌍욕'의 진실).
3년 만에 입 연 둘째형 "동생 시장된 뒤 재선이 욕심이 많았다"
이 시장은 친형과 상대 후보의 공세에도 지난 2014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형수 욕설 논란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유교 윤리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선 전후 맥락을 떠나 형수에게 욕했다는 사실 자체를 '패륜'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고향 경북 안동 방문길에 전화를 받은 이재영씨는 5년 전 문제가 된 전화 통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사실 그때 셋째(재선)와 내가 먼저 통화중이었어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있었는데 셋째가 내게 먼저 욕을 하니까 참다못한 넷째(재명)가 나서 (전화기를) 빼앗아 그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때 상당히 오랫동안 통화했는데 녹음 파일 내용은 일부일 뿐이에요. (이재명 시장이) 형수에게 처음부터 욕하진 않았는데 재선이가 내게 먼저 욕을 하고 형수가 전화를 안 바꿔주니까…."
이재명 시장 가족은 모두 7남매다. 아버지 이경희씨는 지난 1986년 위암으로 숨졌고 어머니 구호명(86)씨 슬하에 큰아들 재국(63)씨, 큰딸 재순(61)씨, 둘째아들 재영(59)씨, 셋째아들 재선(57)씨, 넷째아들 재명(53), 다섯째아들 재문(49)씨가 있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둘째딸 재옥씨는 지난 2014년 8월 뇌출혈로 숨졌다. 이 시장과 공인회계사인 이재선씨를 뺀 나머지 남매들은 은퇴한 건설노동자(재국), 요양보호사(재순), 청소회사 직원(재영), 환경미화원(재문)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
네 살터울인 재명과 재선은 7남매 가운데서도 유독 가까웠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청소년기 공장을 옮겨 다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고, 각각 변호사와 공인회계사로 '출세'한 인생역정도 빼닮았다. 동생에 이어 건국대 경영학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재선씨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졸업 이후에도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1990년대 함께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정도로 가까웠던 이들 사이를 처음 갈라놓은 건 '돈 문제'였다.
"둘 사이가 처음부터 나쁘지는 않았어요. 셋째(재선)도 자기 동생 덕에 대학에 가게 된 거라. 성남참여연대(당시 성남시민모임)에서도 같이 활동했는데 넷째(재명)가 정치 현장으로 나간 뒤로 셋째가 욕심이 좀 많았어요. 셋째가 지난 2005-2006년쯤 어머니 집을 팔아 갖고 있던 돈 5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안 됐던 부분 때문에 갈등이 있었어요. 그게 사실 재명이가 돈을 못 풀게 막은 거예요. 자꾸 빌려주면 돈 간수 안 된다고. 그 일로 둘 사이가 좀 벌어지긴 했어도 왕래는 있었고 어머니와도 의절한 수준도 아니었어요."
성남에서 공인회계사 일을 있던 재선씨 경제사정은 다른 남매들보다 넉넉한 편이었지만, 당시 사무실을 분양받으면서 목돈이 필요했다. 재선씨는 애초 자신과 어머니 명의로 만든 계좌였고, 이미 동생 재명씨도 돈을 빌려간 적이 있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어머니에게 폭언을 내뱉기도 했다.
▲ 이재명-이재선 형제 갈등 4가지 포인트 ⓒ 고정미
친인척 시정 개입 막겠다는 동생과 친형 '평행선' 달리다 '파국'
이재명 시장이 몇 차례 고배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 둘 사이의 갈등은 더 커졌다. 이 시장이 지난 2010년 7월 취임 직후 전임 시장이 불려놓은 빚을 못 갚겠다며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면서 새누리당 시의원들과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친형인 재선씨까지 이 시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한동안 잠잠하던 재선씨는 지난 2012년 초 다시 이 시장 비판에 나섰다. 재선씨는 당시 성남시에서 반대단체 집회를 막으려고 관변단체에 사전 집회 신고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발끈했다고 한다. 이후 재선씨는 성남시청 게시판에 이 문제를 비롯한 이 시장과 성남시정을 비판하는 글을 78개씩 올려 날을 세웠다. 이에 맞서 이 시장쪽도 재선씨가 시장 친형임을 앞세워 각종 이권 개입, 인사 청탁 등을 했다며 시정 개입을 막았다.
"그래도 2012년까지는 서로 왕래했는데 그때 (재선이) 시청 마당까지 가서 농성하고 경원대(현 가천대) 교수 자리 알아봐 달라고 한 것도 그렇고. 내가 미안할 정도였어요. 동생(재명)도 불편했을 거예요."
이재선씨가 녹음한 '형수 욕설'이 퍼진 것도 양쪽 갈등이 첨예하던 상황이었다. 그해 5월 이 시장 수행비서와 말다툼을 계기로 갈등을 빚던 재선씨는 어머니 집을 찾아가 이 시장에게 전화해 말다툼을 벌였다. 어머니는 당시 재선씨가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폭언했다며, 법원에 100m 이내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해 접근을 막았다.
같은 해 6월 초 이 시장 부인 김혜경씨가 이재선씨 부부를 만나 화해를 시도했지만 그 자리에 나온 이재선씨 폭언은 '어머니 살해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갈등을 더 키웠다. 이재선씨도 당시 이 시장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재영씨도 당시 형제자매들이 의사소견서를 받아 성남시 보건소에 진단을 신청한 사실은 인정했다.
"셋째(재선)가 제 성질을 못 이겨 막하는 게 있거든요. 욕은 곧잘 하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성격이 점점 과격해져서 형제자매들이 (이재선씨 쪽에) 병원 진단을 받아보라고 요구했어요. 가족 일이라 숨기고 싶은 심정인데 우리도 오죽했으면 그랬겠어요. 그런데 셋째는 당연히 싫다고 하지요. 상태가 심해져 제수씨(박인복)가 결국 (2014년에) 입원시켰죠."
이재명 시장은 이재선씨가 친모를 폭행한 날 형에게 항의하면서 형수에게 욕을 했다고 해명했는데, 그 전인 6월 초에 녹음한 파일이 먼저 시중에 유포됐다. 친모 폭행 사건이 벌어진 지난 2012년 7월 15일 이재선씨 부부가 어머니 집을 다시 찾아간 것도 이 문제로 중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장 "폭언 심해져 정신과 치료 시도"... 재선씨 '형수 욕설 파일'로 역공
▲ 어머니 안아주는 이재명 성남시장이재명 성남시장(왼쪽)이 23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선 출마선언에 앞서 어머니를 안아주고 있다. ⓒ 남소연
당시 어머니 집에는 막내동생 이재문씨와 여동생 이재옥씨가 함께 있었는데, 재문씨는 6월 말 녹음 파일 유포 직후 이재선씨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서로 앙금이 쌓여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어머니도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재선씨 쪽은 당시 어머니는 자리를 피해 있었기 때문에 폭행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도 이듬해 4월 이재선씨의 존속상해(어머니 폭행)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은 애초 어머니 쪽에서 존속 상해 혐의로 재선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일반 상해 혐의로 고발 수위를 낮췄을 뿐 실제 어머니 폭행으로 약식기소돼 벌금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어머니를 때리는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재선씨에게) 맞았다고 하고 재선이는 (싸움을 말리는 어머니를) 밀치다가 때리는 것처럼 됐다고 하고 (얘기가 엇갈려요). 그때 재옥이도 어머니도 밀고 말리고 집안이 아수라장이었으니까."
재영씨는 당시 재선씨 쪽에서 존속 상해 혐의가 인정돼 구속되면 공인회계사 자격까지 잃을 수도 있다고 호소해서 자신이 중재했다고 밝혔다.
"(존속상해 건은)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겠나 싶었어요. 좋은 방법을 찾아보려고 (중재)한 건데, 결국 잘 안된 거죠. (재선씨는) 괜찮다가도 봄-가을만 되면 증세가 더 심해지고."
실제 이재선씨는 지난 2014년 11월 조울증(양극성 정동 장애)을 진단받고 한 병원에 30여 일 입원했다.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교차하는 정신장애다. 하지만 이재선씨는 2012년까지는 자신의 정신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당시 형제간 갈등에 따른 충격에다 2013년 3월 교통사고 이후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신경쇠약으로 입원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시장 형수인 박인복씨는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형수 욕설 논란은)가족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라면서 "2012년 초 이재명 시정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는 걸 막고 이재명의 실체를 알리려고 (형수 욕설 파일을) 당시 새누리당 정치인 등 지인과 언론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청은 그해 8월 이 시장 쪽에서 제기한 대화 내용 공개 및 유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재선씨쪽에 위반 행위 1회당 50만 원씩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누군가 악의적으로 편집한 '이재명 형수 욕설 파일'이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에 이어 지난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등 극우보수 사이트를 중심으로 계속 떠돌았다.
한때 노무현 흠모했던 이재선씨, 동생과 맞서려고 '박사모' 전향?
▲ 이재명씨 셋째형인 공인회계사 이재선씨는 지난해부터 박사모 성남지부장으로 활동해 관심을 모았다. ⓒ 이재선
지난해 이재명 시장 대선 출마가 가시화되자 이재선씨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성남지부장으로 활동하며 갈수록 각을 세우고 있다. 이씨는 심지어 이 시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자신의 부인도 출마시켜 이 시장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 이재선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자칭 '애국보수' 인터넷방송 '신의 한수'에 직접 출연해 당시 녹음 파일과 문자 메시지 등을 공개했다. 이에 이 시장 쪽에서는 지난 12월 말 재선씨가 법원 명령을 어기고 녹음파일 내용을 154차례 유포했다며 7700만 원 배상을 청구했다. 이재선씨도 올해 초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인 정준길 변호사를 앞세워 이 시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관련기사: 이재명, '형수 욕설 유포' 친형에 7700만 원 청구).
이재선씨에게 이같은 정치 활동은 2012년 이전과 비교하면 '사상적 전향'에 가깝다. 학생 운동권 출신인 이재선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과거 글과 수백 편의 서평을 보면, 각종 정치사회 이슈에서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빠져 노 대통령에 관한 책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을 정도였고 노 대통령 취임식에 직접 참석하는가 하면 사후엔 봉하마을을 직접 찾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 시장'인 이재명 시장에 맞서면서 자연스럽게 그 반대편에 있던 새누리당 정치인들, 국정원 직원, 박사모 회원들과 손을 맞잡은 것이다.
박인복씨도 "이재명 시장은 지금까지 욕설을 합리화하려고 자신의 형과 형수를 어머니에게 욕하고 폭행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다"면서 "형이 박사모 등 정치 활동을 하게 된 것도 이 시장의 권력과 그 옹호자들에 맞서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재선 형제와 함께 1994년 성남시민모임 결성 초기부터 함께 활동했던 이연중 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1990년대 이재명 시장이 집행위원장, 이재선씨가 감사로 활동할 때만 해도 두 사람 사이는 괜찮았다"면서 "전임 시장(이대엽 전 성남시장)이 친인척 비리로 감옥에 간 탓에 이재명 시장이 자신의 형이 이권에 개입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형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이재선씨의 시정 비판 활동에 대해서도 "이재선씨는 동생이 시장에 당선하기 전에 이미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뒀고 그 뒤로 성남참여연대에는 신경도 안 썼는데 (개인적 시정 비판을) 시민단체 활동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면서 "이재선씨도 결국 자기 이익을 챙기려다 잘 안 되니까 (이 시장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선기획취재팀]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 분석) 고정미(아트디렉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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