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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대신 분노로 뒤바뀐 문명고 입학식 '파행'

학생과 학부모 피켓 들고 '국정교과서 철회' 외쳐, 재학생들도 신입생 응원

등록|2017.03.02 15:10 수정|2017.03.02 15:10

▲ 문명고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은 2일 오전 입학식이 열리기 전 운동장에서 '국정교과서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조정훈


▲ 문명고 2.3학년 학생들이 2일 오전 교실 밖으로 몸을 내밀어 신입생들의 입학식 거부를 응원하고 있다. ⓒ 조정훈


전국 유일의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에서 2일 오전 열릴 예정이던 입학식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로 중단됐다. 일부 학부모는 교복을 반납하고 전학을 신청했다.

학생과 학부모 150여 명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학교 운동장에 모여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경산지역 시민단체들도 학교 정문 앞에서 '역사왜곡 국정교과서 철회' 등의 피켓을 들었다.

파행으로 입학식 치르지 못해, 재학생은 신입생 응원

운동장에 모인 신입생과 학부모들은 왼쪽 가슴에 '국정교과서 철회'라고 쓴 검은 근조리본을 달고 "교장선생님 국정교과서 철회해 주세요"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은 '우리는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등의 피켓을 들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2,3학년 학생들은 교실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힘내라", "국정화 교과서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손을 치켜들어 신입생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 문명고 신입생들이 2일 오전 입학식이 열리기 전 운동장에 모여 국정교과서 철회를 외치고 있다. ⓒ 조정훈


▲ 문명고 신입생들이 2일 오전 왼쪽 가슴에 '국정교과서 철회' 검은리본을 달고 입학식 전에 운동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 조정훈


오전 10시 20분쯤 김태동 교장이 입학식이 진행될 예정인 대강당으로 가기 위해 운동장에 나타나자, 학생과 학부모들은 "국정교과서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쳤다. 학부모들은 김 교장을 막아서기도 했다.

김 교장이 대강당으로 들어간 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몰려 들어가자 학교는 강당 문을 걸어 잠갔다. 하지만 학생들은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는 말로 강하게 항의하며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당초 오전 10시 30분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함께 진행 될 예정이었지만, 강당 안에서도 학부모와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중단됐다. 국민의례를 진행하던 중학생들은 소강당으로 옮겨 입학식을 치렀고 고등학생들은 교실로 이동했다.

입학식이 취소되자 일부 학생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정아무개(17) 학생은 "입학식은 설레는 마음으로 해야 되는데 교장선생님 때문에 망쳤다"며 "이런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아무개(17) 학생은 "교장이 최순실과 비슷한 것 같다"며 "최순실이 나라 망치고 외국으로 도망쳤었는데 교장은 국정교과서 신청한 뒤 병가내고 도망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만든 것처럼 국정교과서 반대한 교사 보직을 해임한 것도 그렇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로 역사왜곡을 꼽았다. 김아무개 학생은 "우리가 배울 교과서인데 전교조나 민주노총이 반대한다고 싫어하겠느냐"며 "우리는 왜곡되지 않은 올바른 교과서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최아무개(!7) 학생은 "우리가 연구 대상이 되는 게 싫다"며 "나중에 수능 볼 때도 피해를 입어야 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손가락질 당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문명고 출신이라고 하면 안 좋게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교장 입학식 파행 학부모에 책임 돌려 "우리가 옳은 정책"

▲ 문명고 신입생과 학부모들이 2일 오전 입학식이 열린 학교 강당에서 국정교과서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조정훈


▲ 문명고 신입생들이 2일 오전 입학식이 열린 학교 강당에서 국정교과서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조정훈


하지만 입학식이 취소된 데 대해 김태동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는 "어머니들이 이렇게 심하게 입학식 못하게 (반대)할지 몰랐다"며 "의견이 있어도 우리가 옳은 정책을 하고 있는데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학을 신청하거나 자퇴한 학생들도 부모가 부추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장은 "그 사람들도 따라주면 좋겠는데 우리 학교가 하는 일들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학생들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전학간 학생이 한두 명 있지만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을 철회할 뜻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교재인 국정교과서와 부교재 검정교과서를 비교 연구한다"며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학생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학교는 신입생들에게 교과서를 배부했지만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배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교장은 "우선 앞 부분에 검정 역사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국정교과서가 필요할 때 국정으로 수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태동 문명고 교장이 2일 오전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파행된 뒤 책임을 학부모들에게 돌렸다. ⓒ 조정훈


▲ 자신의 자녀를 전학시키겠다고 밝힌 문명고 학부모 2명이 2일 오전 신입생 교복을 들고 교장실로 들어가고 있다. ⓒ 조정훈


이날도 전학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잇따랐다. 학부모 2명은 교장실에 교복을 반납하고 전학을 신청했다.

아이를 전학시켜 미안하다는 학부모 문아무개씨는 "아이도 그렇고 저도 학교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부정적인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봤다"며 "입학도 하기 전 2주 동안의 모습이 대단히 불통이었고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이어 2명 또 전학 신청, 추가 전학 이어질 듯

입학식을 가졌지만 당장 오늘이라도 전학을 시키겠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이아무개씨는 "역사왜곡뿐 아니라 아이들의 사고가 잘못 형성될까 우려된다"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교육에 길들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우리 아이도 국정교과서에 대한 반감뿐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에 대해 굉장히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오늘 교장을 만나 전학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 경산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은 입학식이 예정된 2일 오전 문명고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 조정훈


한편 이날 오후 학부모 5명은 경북교육청을 상대로 '연구학교 지정처분취소' 및 '효력정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학부모들은 "지금도 신입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며 "역사교과서는 언제든지 수정보완할 수 있지만 지금 새 학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3월은 그들의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학부모들은 이어 "우리는 재단의 강압과 학교운영위원회를 파행으로 운영하여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룰 신청한 문명고에 대해 이영우 경북교육감을 상대로 '문명고 한국사교과서 연구학교지정처분의 효력정지신청'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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