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꽃길만 걷게 하는 회사는 없다, 하지만

[서평] 성과주의와 권위주의에 지친 당신에게 <조직의 재창조>

등록|2017.03.08 11:07 수정|2017.03.08 13:54
조금 뻔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몇 년 전, 한 조직에서 일을 하며 조직 문화에 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곳의 주 업무는 문화 기획이었다. 조직 차원에서 수평적이고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려 노력했지만, 실제 구현된 문화는 전혀 딴판이었다.

회의에서 직급에 따라 발언이 무시되는 건 기본이고, 긴 회의 끝에 결정된 내용은 대표의 개인 사정으로 자주 뒤집혔다. 야근은 조직의 생존을 위한, 서로의 업무를 덜어주기 위한 희생으로 강요됐고 '주말에도 일을 했다'라는 자랑 섞인 은근한 압박을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말 일하기 싫었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며 나름대로 몇 가지 질문을 만들어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법으로만 성과를 낼 수 있는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조직이 생존하는 방법이 자립만 있는가? 각 조직의 강점, 자원을 교환 또는 공유하며 공생할 순 없을까?"
"개인이 만족과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그 동력으로 조직이 발전하며, 결국 조직의 성과가 사회발전에도 기여하는 구조를 만들 순 없을까?"

만약 당신도 이 질문들에 흥미를 느낀다면 <조직의 재창조>(프레데릭 라루, 생각사랑)는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 <조직의 재창조> 프레데릭 라루 ⓒ 생각사랑

<조직의 재창조>는 <Reinventing Organizations>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Reinventing Organizations>는 저자가 12곳의 혁신 기업을 관찰하며 얻은 통찰을 담은 책이다.

통합 심리학의 창시자 켄 윌버(Ken Wilber)의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원시 시대부터 현대까지 나타난 인간의 의식 수준 변천사와 이에 따른 조직 모델 변천사를 훑으며 앞으로 다가올 인간의 의식 수준, 조직 모델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의식 수준과 모델은 청록색 의식(Teal consciousness, 아래 청록색 의식), 청록색 조직(Teal Organization, 아래 청록색 조직)이다. 먼저 청록색 의식부터 살펴보자

"이전의 단계들은 부족, 희소성, 결핍의 의미에서 운영되었던 반면에, 이 새로운 수준은 다양한 연구자들이 "통합된(integrated)", "통합적인(integral)", "자율적", "이차적", "포용적", "시스템적"인 것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선, 진리, 아름다움이 마치 넘쳐 흐르는 것과 같이 엄청나게 풍요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것은 누군가가 심리적 계좌에 십억 달러를 입금한 후, 계좌가 너무 가득차 있으니 나누기를 원하는 것과 같았다.

(중략) 이 새로운 통합단계들은 이전 단계의 모든 가치구조들이 각자의 방식에서 볼 때 옳고 중요하며 모두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고, '일말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와 같이 볼 때 포스트모던적/다원주의적 단계들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합리적, 신화적 가치들을 본질적으로 혐오한다. 그러나 통합적 단계에서는 실제 그것들을 포함하거나, 포용하고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전체 세계관에서 그런 관점들을 위한 여지를 남겨둔다." - 14p

청록색 의식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되는가? 좀 더 살펴보자.

"청록색 단계에 이르면 우리는 외적인 기준에서 결정하던 것을 내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내적 올바름에 대한 질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결정이 옳은 것으로 보이는가? 내가 나 자신에게 진실한가? 이것은 내가 소명처럼 느끼는 바람직한 존재의 모습과 일치하는가? 나는 세상에 봉사하고 있는가?" - 100p

인용구를 봤을 때 청록색 의식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의견(가치 구조와 방식)을 존중하고 내적 기준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는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청록색 조직의 요소를 크게 자기 경영(Self-management, 아래 자기 경영), 전인성(Wholeness, 아래 전인성), 진화하는 목적(Evolutionary-Purpose, 아래 진화하는 목적)로 나누고 이를 소개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자기 경영은 모든 사람에게 권한이 돌아가는 구조다. 각 일에 대한 결정(자신의 역할, 일의 양과 진행 방식, 일정 등)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 단, 결정을 내릴 때 모두의 권한과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동료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조언을 받는다. 이때 조언하는 사람들은 제안만 한다. 선택을 강요할 순 없다.

전인성은 조직원들이 자신의 모든 면을 조직에서 드러낼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전인성이 보장되어 있는 조직은 자기 내면의 것을 다 분출해도 괜찮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로는 우리의 약점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보여도 괜찮은 '안전한 공간(Safe Space)'이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직에서 개인들은 조직의 기대나 그 안에서의 역할에 맞게 자신을 숨기며 일종의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사람들은 조직에서 자아나 내면을 구성하는 모습 중 '단호하고 결단력 있고 강한', '이성적인' 모습만 보일 수 있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연약한' 부분이나 직관, 영적인 면은 보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열정, 창의성도 아주 일부분만 발휘하게 된다.

전인성은 개인의 에너지를 온전히 분출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민감한 요소일 수 있지만, 잘 정착하면 굉장히 강한 에너지를 준다. 전인성이 실현되면 정치와 승인같은 눈치싸움이 사라지면서 개인의 에너지를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이는 창의성을 극대화 시킨다. 더하여 이는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도 연결되어 일에 대한 만족감을 더 높여준다. 

마지막 요소인 진화하는 목적은 계속 진화하고 싶게 만드는 그 조직만의 목적을 뜻한다. 저자는 뷔르트조르흐(Buurtzorg, 아래 뷔르트조르흐)라는 네덜란드 지역보건서비스 조직의 예를 드는데 그곳의 목적은 '사람들이 풍부하고 의미있으며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뷔르트조르흐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경쟁사에게 자사의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노하우를 공유하면 경쟁사가 현재보다 더 발전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고 이는 뷔르트조르흐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익을 최우선하는 시각에서는 이런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진화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뷔르트조르흐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된다.

이처럼 청록색 조직의 구성원들은 조직의 목적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조직의 목적을 더 귀기울여 듣기 위해, 회의 시간에 빈 의자를 갖다놓고 회의 시간 중간 마다 그 의자에 앉아 조직의 목적을 환기하는 관행을 갖기도 한다.

<조직의 재창조>를 읽으며 청록색 조직은 소명, 가치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듯 보였다. 자기 경영은 개인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소명을 실현할 수 있는 역할(즉, 일거리와 방식)과 동료들의 그것을 존중하며 업무를 조율해 나가는 원리다. '나'의 소명에 집중하고 동료의 소명도 존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며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료끼리 정치를 하고 성과만 추구하는 곳에선 외부의 기준이 선택 기준이 되어 자기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 이때 전인성은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 전인성은 서로를 경쟁자나 조직의 부속품이 아닌 존중할 가치가 있는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는 조직에서 거리낌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표현해도 괜찮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면 개인은 이 분위기에 안전함을 느껴 온전히 자신을 표현하며 스스로에게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실험할 수 있게 된다. 

더해서 소명의 존중은 조직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이익이 아닌 조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결국 조직이 '나'와 '너'와 '조직'의 소명,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문제를 발생시켰을 때와 똑같은 의식 수준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있다. <조직의 재창조>를 읽으며 이 말이 자주 떠올랐다. <조직의 재창조>에 따르면 조직 내 권력 문제와 생존 문제에 집중하는 게 아닌 소명과 가치에 집중할 때 이런 문제들은 자연스레 사라져 버렸다. 문제에 집중하는 게 아닌 관점을 달리하니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나 관행이 없어져 버렸다.

물론 청록색 조직이 완벽한 답이라 보기 어렵다. 이 조직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를 적용한다고 앞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모든 조직이 꽃길을 걸으리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이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 자포스의 상황을 다룬 기사("자포스 실험")를 보면 "완전 난리구만!"이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올 만큼 어마한 좌충우돌을 겪고 있다.

결국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여러분은 <조직의 재창조>가 제안하는 청록색 조직이 어떠한가? 이를 적용하거나 이곳에서 일하고 싶은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