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굶주린 독수리에게 밥 주지 말라고?

[주장] 야생 철새가 AI 옮긴다는 잘못된 생각... 철새와 공존하는 방법 찾자

등록|2017.03.09 16:51 수정|2017.03.09 16:51

▲ 독수리 20여 마리가 낙동강변 위를 떼로 날고 있다. ⓒ 정수근


▲ 천연기념물 독수리가 낙동강 하늘 위를 날고 있다. ⓒ 정수근


AI로 배를 주리고 있다는 독수리를 찾아 나섰다. 낙동강 고령 개진은 예로부터 몽골 등지의 독수리가 월동을 위해 도래하는 유명한 철새도래지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지난 주말(3월 4일) 낙동강 고령 개진 강변으로 나가보았다.

차가 현풍 구지면의 도동서원에 다다를 무렵 저 서쪽 하늘에서 검은 물체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빙글빙글 원을 그리면서 날고 있는 것은 분명 독수리들이었다. 남서쪽 하늘을 온통 물들이며 날고 있는 검은 독수리 무리였다. 헤아려본 결과, 독수리 24마리가 고령지역 낙동강 일대를 선회하며 날고 있었다. 덩치가 워낙 큰 녀석들이라 24마리라도 떼로 날고 있으니 하늘이 꽉 차는 것이 장관이었다.

▲ 독수리와 패러글라이더의 만남. 하늘에서 시합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 정수근


바람을 타면서 날고 있는 녀석들은 날갯짓 한번 없이 선회비행을 하고 있다. 마침 날개를 활짝 편 패러글라이더들이 남쪽 산등성이 너머에서 다가왔다. 하늘을 나는 인간과 하늘의 제왕 독수리의 만남이라니.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장면인가? 공존을 말하는 것 같다.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 말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독수리 낙동강을 찾다

녀석들은 매년 겨울 그곳을 찾는다. 독수리는 사실 문화재청이 보호하는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가 보호하는 멸종위기2급종인 귀한 손님이다. 그 귀한 손님인 독수리가 낙동강을 찾은 것이다.

검독수리나 매 등의 맹금류와 달리 독수리는 산 생명을 잡아먹지 않는다. 주로 죽은 생물을 먹고 산다. 그래서 거름이나 두엄더미의 죽은 가축 사체 등을 먹고 살기도 한다. 그래서 독수리를 '자연의 청소부'라 일컫기도 한다.

▲ 독수리는 죽은 고기 사체 등을 먹기 때문에 자연의 청소부로 불린다. ⓒ 정수근


그런데 독수리의 먹잇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감자 농사를 많이 짓는 고령 개진의 들판도 점점 하우스 농사 위주로 바뀌고 있다. 두엄더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먹이경쟁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수리가 많이 도래하는 경남 고성이나 창녕 우포늪 주변에서는 겨우내 굶주린 독수리를 위해서 먹이 나누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인력과 예산이 들 수밖에 없다.

대구지방환경청에 먹이나누기 활동 제안하다

이것이 대구환경연합이 대구지방환경청에 제안을 하게 된 이유다. 환경부는 어차피 멸종위기종을 돌볼 의무와 책임이 있고, 쫄쫄 굶고 있을 독수리에게 먹이 나누기를 해보자고 제안한 배경인 것이다. 그것이 지지난 해 겨울이었고, 그 제안을 들을 대구지방환경청은 당연히 함께 하겠다 했다.

▲ 독수리 20여 마리가 하늘을 천천히 날며서 비행을 즐기고 있다 ⓒ 정수근


그로부터 1년 후인 이번 겨울 독수리는 역시나 개진 강변 쪽에 도래를 했다. 드디어 먹이나누기를 통해 낙동강을 찾은 귀한 손님인 독수리에게 대접을 할 수 있겠거니 하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대구지방환경청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마침 AI(조류 인플루엔자) 사태가 터졌고, AI 때문에 고령군에서 먹이나누기 활동에 제동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이나누기 활동을 좀 미루자는 게 아닌가?

철새들이 주범이라는, AI에 대한 뿌리깊은 미신

그때부터 이제 독수리가 돌아갈 때가 된 지금까지 먹이나누기 활동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독수리 먹이나누기를 못하게 된 것에는 AI에 대한 뿌리 깊은 미신 때문이다. AI의 주범이 철새라는 뿌리 깊은 미신 말이다.

이에 대해 환경과생명을지키는교사모임의 대표 오광석 선생은 말한다.

"감기(AI)는 누구나 걸릴 수 있다. 조류를 탓해서는 안된다. 독수리는 죽은 동물의 사체 등을 먹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계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독수리는 AI에 감염돼 죽은 조류를 먹어줌으로써 AI가 퍼지는 것을 오히려 막아준다. 독수리는 병원균이나 독성물질에 강한 유전적 특징마저 가지고 있다" 

▲ 자연계의 철새들은 건강하다. 오히려 공장식 사육을 당하는 닭과 오리 등이 약해서 병에 취약하다. 집단 폐사를 당하는 배경이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 정수근


문제는 AI에 걸려 집단 폐사하는 공장식 축산에 있는 것이다. 야생 조류 때문에 닭과 오리가 집단 폐사한다는 것은 원인을 조류에게 돌림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피해가려는 임기응변식의 처방일 뿐이다.

겨울철새들과의 공존을 위해서

비단 독수리만이 아니다. 매년 해평습지를 찾아오는 쇠기러기와 청둥오리 등도 마찬가지다. 주변 들판의 낙곡을 먹고 사는 녀석들에게 공장식 축산을 하는 인간은 볏짚단마저 비닐로 둘둘 말아버리는 곤포 사일리지를 만들어 버림으로써 최소한의 낙곡조차 허용치 않고 있다.

굶주린 철새들이 민가나 축산단지를 기웃거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결국 철새들이 AI에 감염이 되거나, AI를 옮기거나 둘 중의 하나의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 볏짚단을 가축 사료용으로 둘둘 말아버리기 때문에 더욱 낙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철새들이 축사 등을 접근하게 되는 배경이라 한다. ⓒ 정수근


▲ 해평습지를 찾은 쇠기러기 무리. 이들은 해평들판의 낙곡을 먹고 살아간다 ⓒ 정수근


겨울철 철새들에게 먹이나누기를 하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다. 따라서 단지 'AI 미신' 때문에 먹이나누기를 중단하라는 지자체나 그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서지 못하는 환경부나 해법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주길 바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거미줄이 끊기면 인간 또한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지난 8년 동안 4대강 현장을 기록해오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