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부마항쟁 여성, 박근혜 탄핵에 "감격해서 울었다"

창원 최갑순씨 이야기 ... 2012년 12월 13일 '대통령 반대' 기자회견 열기도

등록|2017.03.10 18:06 수정|2017.03.10 18:06
"울었다. 너무 감격해서 울었다. 우리 역사에 이런 날도 있구나 싶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이런 날도 다 본다."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장과 부마민주항쟁경남동지회 회장을 지낸 최갑순(61)씨가 10일 오후 한 말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탄핵 인용 선고를 한 뒤 울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최갑순씨다. 그는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2012년 12월 13일, 경남도의회 브리핑실에서 열린 여성단체의 기자회견 때 울먹이며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당시 여성단체들은 경남지역 여성계 인사 1219명이 참여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박근혜 후보는 '여성대통령'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제목의 유권자 호소문을 발표했다.

최갑순씨는 부마민주항쟁 피해자다. 경남대 국어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9년, 그는 그해 10월 16~20일 부산과 마산(현 창원)에서 벌어진 부마항쟁에 가담했다.

4년 전 대선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씨는 울먹이면서 "박근혜 언니 들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당시 최씨는 "저는 당신이 고아가 된 계기인 부마항쟁의 피해 당사자"라며 "그때 당신은 26세로 퍼스트레이디였고, 구국청년봉사단을 꾸려 아버지의 독재정권을 뒷받침하면서 온갖 영화를 누렸을 때"라 했다.

그리고 그는 "부끄러운 여학생 둘이서(옥정애 포함) 남학생들을 설득해 3․15의거탑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려 하다 붙잡혔고, 속옷이 드러난 채 머리채가 질질 끌려 시멘트 포장길에 피를 뿌리며 잡혀 갔다"며 "경찰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 관련된 사람을 만났다고 말하면 풀어주겠다는 회유에 넘어가지 않자, 지하실로 끌고 가 안대를 채우고, 옷을 벗기고 강간한다고 협박하면서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최씨는 "당신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조차 되어서는 안 된다. 제발 조용히 사라져 달라. 당신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떠올라 살이 떨린다. 당신의 지지율은 아버지(박정희)가 18년 동안 국민을 세뇌시킨 결과다"고 했다.

또 그는 "어디서 여성 대통령 운운하고 다니느냐. 당신이 여성성의 진정함을 알기나 하느냐"고 했다. 최씨가 울먹이며 호소했지만,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감격해서 두 사람이 전화를 붙들고 울었다"

그리고 4년이 흘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최갑순씨는 헌재 선고 뒤 부마항쟁 때 뜻을 같이 했던 친구 옥정애씨와 전화통화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울었다.

최씨는 "옥정애와 전화통화하면서 울었다. 박정희가 부활한 것 같아 4년 동안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며 "감격해서 두 사람이 전화를 붙들고 울었다"고 말했다.

탄핵에 대해 최씨는 "사필귀정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역사에서 보면 나쁜 놈들이 큰소리 쳐왔다. 이번에는 역사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탄핵 선고 이전에는 걱정했다는 것. 최씨는 "사실 어제까지 걱정이 좀 됐다. 헌재가 탄핵 인용하지 않고 기각 내지 각하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어젯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며 "그런데 헌재 재판관 만장일치로 나오니까 더 눈물이 났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도 느낀다"고 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에 참석하기도 했다. 최씨는 "촛불집회에 다섯 번 정도 나갔다. 서울 촛불집회도 갔다"며 "딸 결혼식을 앞두고 사돈과 상견례를 서울에서 했는데, 마치고 나서 사위를 데리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같이 갔다. 사위가 되려면 촛불도 들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광화문 촛불집회 때 시민발언을 하려고 현장에서 신청했지만 되지 않았다. 최씨는 "부마항쟁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촛불집회 때 발언을 통해 밝히려고 했다"며 "그런데 발언자는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즉석 신청은 안 된다고 해서 발언을 못했다"고 말했다.

최갑순씨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씨를 대선 후보로 엄호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조금이라도 관심 있었던 사람들은 다 알 것인데, 최태민이나 최순실 관련해서 몰랐다고 하는 게 쉽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씨는 맨날 입만 열만 '국민', '국민'했다. 그런데 지금은 탄핵 찬성과 반대로 이렇게 분열시켜 놓고 가만히 있다. 지금 이 시각(10일 오후 5시)까지 탄핵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고, 통합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없다. 그래 놓고 무슨 지도자냐"고 했다.

이어 "만약에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었더라면, 난리 나고 무어라고 떠들었을 것 아니냐. 나라가 어떻게 되든, 국민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는 것"이라 덧붙였다.

최갑순씨는 "건강 때문에 요즘 수영장에 자주 다닌다. 거기서 만난 70대 언니들도 걱정된다고 하더라. 내가 만난 대부분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탄핵된다고 하더라. 탄핵이 안 되면 이상한 나라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젊은이들에 대한 조언도 했다. 최씨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래야 '제2의 박근혜'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모든 것이 정치와 떨어질 수 없다. 세금이나 미래, 일자리도 정치와 관련 있다. 젊은이들이 제발 정치에 관심을 갖고, 후보나 정책도 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서는 정치에 요구도 해야 한다. 이번 탄핵이 그래도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깨우치고,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하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