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박근혜 가린 태극기, 처음부터 '취재방해용'이었나

[取중眞담] 지지자 동원해 기자들 사진도 못 찍게 한 청와대 경호원들

등록|2017.03.13 14:50 수정|2017.03.13 14:50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한지 사흘째인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 박사모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탄핵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끝까지 '불통'이었다. 대국민 담화 후 질의응답 없이 회견장을 빠져나가던 재임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476일 만에 청와대를 나와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언론사 기자들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을 결정한 10일부터 삼성동 자택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을 기다렸다. 그가 13년 전 연설처럼 헌재 심판에 승복할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을 앞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고 일갈했다. 기자들은 그의 헌법적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지 궁금했다.

지난 13일 늦은 오후,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퇴거 소식이 전해졌다. 파면 이틀 만에 그의 입장을 들을 기회가 찾아왔다. 황급히 모여든 기자들은 삼성동 자택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을 듣기만을 기다렸다. 몇몇 기자는 질문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미리 적어두었다.

박 전 대통령 출발 예정 시각에 가까워진 오후 6시. 청와대 경호원과 경찰 병력 수십여 명이 사저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취재진을 막아섰다. 기자들에게 사저 입구와 멀찍이 떨어진 도로 쪽으로 빠져달라면서 접근을 막았다. 박 전 대통령에게 질문하기는커녕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조차 볼 수 없는 위치였다. 기자들은 '취재방해'라고 항의했다. 청와대 경호원은 '안전상의 이유'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기자들은 '풀취재'를 제안했다. 2~4명의 소수인원이 대표로 취재를 맡는 방식이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에도 공개일정에 한해 풀취재가 이뤄져왔다. 진정으로 기자들의 안전이 문제였다면 소수취재는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었다. 경호원들은 '보도담당'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보도 담당'이라는 남성이 기자들에게 왔다. 그는 '풀취재'도 불가하다고 선을 그었다. 역시 '안전'을 이유로 들었다. 결국 기자들의 취재는 원천 봉쇄됐다. 질의응답도 무산됐다.

박근혜 도착하자 깃발로 카메라 가린 지지자들

태극기로 취재 방해하는 박사모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에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도착하자 박사모 회원들이 태극기를 높이 치켜들어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고 있다. ⓒ 남소연


취재진이 가로막힌 그 시각, 손바닥 크기의 태극기를 든 남성 3명과 여성 2명이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사저 앞에 자리했다. '우리 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모임(대사모)' 회장인 장민성씨는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각각 약 2미터 정도인 대형 현수막을 등에 걸고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렸다. 대사모 회원 10여 명도 각자 태극기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한 기자가 "취재진은 못 들어가게 막으면서 대사모 회장은 가만히 두는 이유가 뭐냐"라고 물었다. '보도 담당'이라는 남성은 "행사가 준비돼 있다, 이따가 보면 안다"라고 답하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오후 7시 37분 박 전 대통령을 태운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삼성동 자택 앞에 섰다. 대사모 회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나란히 서서 깃발과 태극기를 머리 위로 높게 펼쳐들고 사진·영상 카메라 기자들의 시야를 가렸다.

카메라 기자들은 삼성동 자택 앞 삼릉초등학교 담벼락에 서서 이른 시각부터 대기 중이었다. 그곳에서 TV 생방송 중계를 준비한 방송사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자택으로 들어가기 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사모의 방해로 기자들은 중요한 순간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언론사 사진기자는 "청와대 경호원이 작은 목소리로 대사모 회원에게 '대통령님이 오시면 사진 못 찍게 깃발로 가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라고 전했다.

밝은 표정으로 자유한국당 의원 만나는 박근혜헌법재판소의 파면(탄핵인용) 선고 후 이틀만인 12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이날 박 전 대통령은 기자 앞에 단 한 번도 서지 않고 자택으로 들어갔다. 앞에서 대기하던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게 전부였다.

국민을 향한 메시지는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전한 4줄짜리 입장문이 전부였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만 남겼을 뿐이다.

감사의 뜻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국민에게만 전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기를 바란 92%의 국민은 그 자리에 없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