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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구걸하는 아이들, 아프리카에서 본 빛과 그림자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신이 내린 선물'이라 극찬한 테이블마운틴

등록|2017.03.14 15:13 수정|2017.03.14 15:13
기내에서만 20시간, 어렵게 케이프타운에 도착하다

아직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신비의 땅이다. 약 2백만 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퍼지면서 다양한 인간 종이 진화해 왔단다. 하여 아프리카는 호모 사피엔스의 발원지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2015)에서 인류는 동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 왔고, 약 30만 년 전부터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게다. 나는 더 늙기 전에 아프리카 남단을 꼭 한 번 밟고 싶어 하던 차였다.

아직 장거리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 아내의 호응에 힘입어 초등 6학년이 되는 손녀랑 세 사람이 약 15000 Km가 넘는 남아프리카 여행길에 올랐다. 인천서 홍콩까지 약 네 시간,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13시간, 다시 케이프타운까지 2시간을 합쳐 기내에서만 장장 스무 시간 가까이 버텨내야 했다.

기내에서 일박하고도 다음날 낮 12시경에 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였다. 점심 식사 후 세계 7대 자연경관 중 하나로 꼽히는 테이블 마운틴을 360도 회전 케이블카로 등정하였다. 맑은 공기에 검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쌓인 피로가 금방 풀리는 듯했다.

테입블 마운틴 정상에서 필자(중앙)와 아내(왼쪽)와 손녀랑 함께남아공 케이프타운이 한 눈에 내려다 뵈는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서 ⓒ 김병하


테이블 마운틴은 산 정상이 식탁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해발 약 1천m의 높이로 지각변동에 의해 4억6천만 년 전에 생긴 산으로 에베레스트산보다도 6배나 오래된 산이다. 정상의 평평한 지대는 약 3Km 정도 길이로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정상에서 케이프타운이 한 눈에 내려다 뵈고 멀리 운해(雲海)가 아득하게 깔려 있다. 이곳 정상을 한 시간 남짓 산책하면서 따가운 햇볕 아래 대서양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니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지구환경의 날(1998)을 맞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남아공의 케이블타운은 신이 내린 지구의 선물"이랬는가 보다.

천혜의 자연 혜택에 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원주민들의 삶은 아직도 빈곤과 차별의 질곡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961년에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은 되었지만,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삶의 애환은 군데군데 남아 있다.

공항을 벗어나자 양철지붕과 허술한 벽으로 가린 함석빈민촌이 줄을 이어 있다. 아름다운 항구로 알려진 워터프론트 골목 안과 광장에서는 흑인영가와 재즈가 뒤섞여 들려온다. 그래서인지 길거리의 흑인 표정들도 대부분은 고달파 보인다. 이곳에서 관광을 즐기는 사람들은 백인들뿐이다. 이렇게 아프리카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는 게다.

케이프타운에서 일박하고 대서양과 인도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케이프반도를 따라 관광길에 나섰다. 12사도 봉우리를 뒤로 하고 해안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캠스베이에서 바닷바람을 쐬니 기분이 상쾌했다.

유람선을 타고 물개들이 가득 서식하고 있는 도이커 섬을 다녀오니 어느듯 점심 때가 되었다. 피시 호크 비치에서 랍스타와 와인을 곁들여 점심식사를 하고 손녀랑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보드라운 감촉의 모래밭을 조금 걸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희망봉, 항상 높은 풍랑이 인다는 곳

남아프리카 남쪽 끝자락 희망봉에서 필자와 가족 일행남아프리카 희망봉 안내 표지판과 뒤에 희망봉을 배경으로 한 장면 ⓒ 김병하


오후에는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찾아 초원을 한참 달렸다. 옛날에는 대서양과 인도양 두 개의 바다가 만나서 항상 높은 풍랑이 인다고 해서 Cape of Storm이라 불렀으나, 유럽선원들이 인도로 가는 뱃길을 발견한 후 이곳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희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내가 아는 어느 교수가 자기는 아프리카 희망봉에 한 번 가보는 게 꿈이라고 했는데, 그가 이곳을 다녀갔는지 궁금하다.

희망봉을 끼고 있는 케이프 포인트를 올라가니 그곳에 'Historic Light House'라고 적힌 붉은 등대가 하나 있었다. 이 등대 불빛은 촛불 2천개의 밝기로 67Km까지 그 불빛이 뻗어간다고 한다.

'라이트 하우스'라는 이름은 내게 친숙하다. 대구 대명동에 맹·농아들이 기숙하는 장애인 숙사가 '라이트하우스'원인데, 대구맹아학교를 설립한 이영식(李永植; 1894-1981) 목사와 대구대 초대총장 이태영(李泰榮; 1929-1995) 박사는 평생을 그 '라이트 하우스'원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기숙하면서 살았다.

이름처럼 세상의 빛이 된 그 라이트 하우스의 역사적 연원을 이곳 케이프 포인트에서 보게 되니 내게는 놀라운 인연이다. 케이프 포인트에서 바다의 등대가 한반도 내륙의 등대가 된 게다.

남아프리카의 남쪽 끝자락에서 따가운 햇볕 아래 대서양과 인도양을 동시에 내려다보면서, 지구라는 위성 속의 내 존재감이 참으로 가벼우면서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희망봉을 향하던 길목에서 팽귄이 서식하는 곳을 들리고 오는 길에 보니 10대 남매가 슬리퍼 한 켤레를 서로 바꿔 신어 가면서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어가는 게 아닌가.

이곳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길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동전을 구걸한다. 내가 건네는 1달러가 저들의 가난을 덜어주기에는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또 다시 내 앞에 아프리카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남아공 중심도시 유하네스버그, 아프리카인 자존심 담은 유산 없어

나는 희망봉에서 돌아오면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은 더없이 풍요롭고 아름다우나, 그 속에서 살아온 흑인들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왜 그런가? 문제는 착취와 불평등의 심화다. 그들은 수렵채취생활을 할 때만 해도 행복하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그들의 삶은 고달파졌다. 그들이 4백년 이상이나 지속된 식민지 생활로부터 해방 된지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식민생활은 그들의 역사가 되어 살아 있고 그들에게 삶의 해방은 아득한 숙제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인의 비애와 슬픔이 언제쯤 희망과 환희로 바뀔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아프리카의 미래는 곧 지구촌의 미래다.

저녁 식사 후 호텔 근처 산책길에 나서다가 호텔에서 일하는 흑인 농인을 만났다. 그는 위험 신호를 보내면서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친절하게도 호텔 뒤편의 한길 쪽을 안내해 주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니, 그도 두 손 모아 응답하면서 미소 띤 얼굴로 돌아간다.

아프리카 농인의 손짓언어와 그의 친절함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때 묻지 않은 그의 심성은 객지에서 우리 가족 일행에게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그 아프리카 농인은 시인의 말처럼 '사람만이 희망'임을 나에게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이튿날 우리는 남아공 최대 도시이자 만델라의 정치적 고향인 요하네스버그로 갔다. 식민통치를 위해 네델란드와 영국의 협치(協治) 산물로 세운 유니온 빌딩 앞에 만델라의 동상이 덩그러니 서 있다. 아무런 글귀도 없이 그냥 엄청나게 큰 동상이 우뚝 서 있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하네스버그에는 식민통치의 유산은 풍부했으나, 남아공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유산이라곤 별로 보이질 않는다. 다만 만델라의 동상과 그의 이름을 기념하는 광장과 상가가 늘어서 있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의 정치적 중심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들 자신의 역사적 기록물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그들 고유의 문명이 제대로 축적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사실 이곳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금과 다이아몬드가 가장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던 곳이어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착취가 엄혹했던 전력을 지니고 있다. 금광자원이 풍부했던 게 도시형성의 입지조건으로 작용했지만, 그만큼 가혹한 착취와 인종차별의 온상이 되었던 게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총·균·쇠>에서 지적한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이곳은 지역적 환경(풍요로운 자원의 보고) 조건이 토착민에게는 아주 불리하게 영향을 미친 곳이 되고 말았다.

지나면서 보니, 남아프리카대학(University of South Africa; USA) 캠퍼스 건물 벽에 넬슨 만델라의 어록 "Education is a great energy of human development"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해 교육은 응당 위대한 에너지가 되어야겠지만, 내가 보기에 아직 아프리카는 교육에 의한 인적 자원개발 문턱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있다.

학교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의 미래가 밝다. 우리에게는 학교교육에서 과잉학습과 무한 경쟁이 문제지만, 이곳에서는 교육기회의 결핍이 기본 문제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교육다움이 문제라면, 그들에게는 균등한 공교육기회 제공이 아직도 현안 문제가 된다.

일행 분위기는 태극기 부대쪽, 그러려니 넘길 수밖에 없었다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필자(오른쪽)와 가족 일행잠브웨이 쪽 빅토리아 폭포를 배경으로 가족과 함께 ⓒ 김병하


우리 일행은 비행기로 중부 아프리카의 내륙도시인 리빙스톤으로 갔다. 이곳서 국경을 넘어 잠비아를 거쳐 잠바브웨 쪽 빅토리아 폭포 관광길에 올랐다. 이곳 잠베지 강은 아프리카 내륙에서 인도양 쪽으로 흘러드는 2700Km의 장강이다.

'잠베지'는 '큰 수로' 혹은 '위대한 강'이라는 뜻이란다. 폭포의 수량이나 그 크기는 남미의 이과수 폭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폭포수 낙차가 70m 이상이어서 물 떨어지는 소리와 물안개가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우리는 세계 3대 폭포로 미국의 나이아가라, 남미의 이과수, 그리고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를 들고 있다. 근데 그 규모의 장엄함은 아무래도 이과수  폭포가 으뜸이다. 나는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앞에서 내 영혼이 거기로 빨려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아 그냥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곳 빅토리아 폭포에서는 이과수에 버금가는 장엄함은 아니었지만, 폭포수의 낙차 울림과 물안개, 그리고 그 위에 피어난 무지개는 여전히 이과수 못지않게 환상적이었다. 살아 있는 대자연의 역동성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감동적 순간이다.

이튿날 헬기를 타고 위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내려다보았지만, 폭포는 역시 지상에서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실감이 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헬기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아프리카 초원을 두루 내려다 볼 수 있었다는 게 특별한 부수적 경험이었다.

원래 잠베지 강의 폭포를 현지에서는 '천둥소리가 나는 물'이라는 뜻으로 불렀다가, 1855년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턴에 의해 발견된 이래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로 명명하게 된 게다. 폭포 이름마저도 식민 잔재가 그냥 유지되고 있는 게 목하 아프리카의 현실이다.

해질녘에 빅토리아 폭포의 수원지 잠베지 강 상류에서 크루즈 관광을 하면서 무한 제공되는 와인을 즐기는 기회를 가졌다. 안주로 아프리카 산 땅콩 볶은 것이 나왔는데, 크기가 잔잔한 땅콩을 껍질 채로 씹어 먹으니 옛날 고향에서 먹던 땅콩 맛이 신통하게 재현되었다. 고소하면서 간간한 땅콩 맛이 꼭 내 입에 맞았다.

모처럼 일행 남자들 8명이 한 자리에 둘러 않아 와인을 즐기면서 이런저런 환담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술기운이 돌자 자연히 정치 쪽 이야기가 슬쩍 등장했는데, 나이든 사람들(60대 이상)이 대부분이어서인지 전체 분위기가 태극기 부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속으로 놀랐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는 자제하는 게 도리다.

인간들이 조성한 동물원, 야생동물들에겐 감옥과 다르지 않을 것

마지막 날 쵸베국립공원에서 보트관광과 사파리 관광을 하면서 이곳 쵸베강에 서식하는 하마, 악어, 각종 물새 등의 생태를 가까이서 관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오후 사파리 관광에서는 텔레비전 화면에서만 보아왔던 동물의 왕국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각종 사슴과 코끼리는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사자와 표범은 끝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그 중 덩치 큰 야생 기린을 가까이서 보니 그 위용이 실감나게 와 닿았다. 내가 보기에는 기린의 품위 있는 위용이 정글의 귀공자처럼 느껴졌다.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섭생하는 이들 동물들은 참으로 여유 있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성한 동물원은 이들에게 감옥과 다르지 않을 터.

인위적으로 자연에 깊숙이 개입하는 인간의 욕심이 문제다. '자연'(自然)은 늘 스스로 그러한 것이고자 하건만. 이로써 8일 간의 아프리카 여정은 막을 내렸다. 긴 비행시간에 대비해 가져간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2017)는 틈틈이 다 읽었으나, 내가 즐겨 읽던 <금강경>은 다시 봐도 새 맛이 우러났다.

근데 그 금강경을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으로 오는 도중 기내에 그냥 두고 내리고 말았다. 내 딴에는 이런저런 메모도 해 놓은 책인데, 누군가에게 다시 읽히는 보시(布施)가 된다면 더 할 나위가 없으련만.

그나마 다행인 게 갈 때 홍콩 공항에서 구입한 <The Path>(2016) 라는 책이 있어 아직 읽을 양식은 충분했다. 책의 제목을 'Path'로 표기한 것은 삶의 과정에서 마땅히 가야할 길인 '도'(道)를 이렇게 말한 듯 싶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늦가을에 번역되어 소개된 책이어서 더 친밀감이 갔다. 하버드대학에서 마이클 푸엣 교수가 교양강좌를 통해 동양철학의 지혜를 그들의 지적풍토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번역본을 읽은 기억에 의하면, 내용의 깊이는 부족하지만 해석의 참신성이 다소간에 감지되었다.

책의 표지에 <Sunday Times>에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서점에 이 책이 눈에 잘 띄는 앞쪽 진열대에 올려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어쨌거나 나는 귀국 후에 이 책을 다시 차분히 읽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 내가 부수적으로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서양인의 저술에서 건져낸 동양철학의 지혜다. 하지만 이번 여정에서 제기된 "세계 속의 아프리카는 내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쉬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불평등의 심화는 세계적 문제다. 

덧붙이는 글 2월 23일에서 3월 2일까지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정리한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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