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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지루하니까 잠을 자는 거지, 씨X"

[서평] 상처받은 교사들을 위한 감정수업 <선생님도 아프다>

등록|2017.03.17 10:10 수정|2017.03.17 10:10
보습학원 강사를 할 때였다. 수업 시간에 늘 깐죽거리며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었다. 주의를 주고 달래 봐도 변하지 않았다. 사교육의 특성상 한 학생이라도 그만두면 안 되기에 억지로 참으려니 먹은 점심이 체해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철새'라고 부를 만큼 성적에 민감해서 시험이 끝나고 나면 성적이 올랐다는 학원으로 옮겨가는 일도 잦았다. 시험 기간이 닥치면 컵라면을 박스로 사다놓고 보충 수업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아이들도, 가르치는 사람도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기계적인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 상황이었다. 아이들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부모도 '학원비 받으니 잘 가르쳐서 성적이나 올려 달라'는 주문을 했을 뿐이다. 나는 당시 내가 받았던 상처나 감정을 사교육장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도 아프다>(팜파스)는 학생, 학교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교사들을 위한 감정수업이다.

▲ 상처받은 선생님을 위한 감정수업 <선생님도 아프다> ⓒ 팜파스

나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던 세대다. 지금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고 더 좋은 대학을 가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덕목인 것처럼 변했다.

그래도 교사는 지식을 전하는 노동자이기에 여타 서비스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처럼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나는 제도권 안에서 가르치는 교사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학생들의 인권이 강화되면서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교권이 추락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교사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 교사는 관리자인 교장, 교감과 학부모, 학생들 사이에 끼어 삼중의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전에도 관리자에게 받는 감정적 상처야 있었겠지만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받는 상처는 훨씬 덜했을 것이다. 선생님으로 인해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일들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교사이며 상담전문가인 저자 양곤성 선생은 "선생님의 감정은 왜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책에서 '수십 년 교단을 지키다 학교를 떠나는 선배 교사의 얼굴에서 아쉬움이나 미련보다는 이제야 감정노동에서 벗어난다는 후련함, 해방감이 훨씬 더 많이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책에 개인적 경험과 통계를 통한 교사의 심각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공황장애, 우울증, 열등감, 정신 질환 심지어 자살에까지 이르는 병증과 상처를 짚어보고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물론 그가 제시하는 해법이 온전한 답이 될 수는 없다.

감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감정을 추스르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도 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이기에 늘 참아야 하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며 씩씩하고 모범적이고 의연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 교사도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된다면 마음의 상처는 훨씬 덜어질 것이다.

교사들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상대는 현장에서 늘 마주치는 학생들인 것 같다. 입시 학원처럼 변해버린 학교에서 주요 입시 과목이 아닌 과목을 가르쳐야하는 교사들은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고충을 토로하곤 한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절반인 되는 교실에서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1교시 2학년 국어수업 중이었습니다.
"만도와 진수의 이야기를 볼 때 <수난이대>의 시대적 배경은 언제일까요?"
질문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맨 뒤에서 숨지도 않은 채 여유 있는 자세로 늘어지게 자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습니다.
"수업 중에 늘어지게 자면 안 되지."
오선생님이 머리를 툭 치자 현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오선생님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현수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지며 짜증스런 표정으로 변하였습니다.
"수업 듣자, 현수야."
"......"
잔뜩 찌푸린 현수에게 한마디를 하곤 교탁으로 돌아가는 오선생님의 등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 씨. 깜짝 놀... .... 수업 존...지루 ... ..., 내가 ...자지...씨... ... ."
조그만 목소리여서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그 뜻은 대강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병권 선생님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급히 몸을 돌리려는 순간에 오선생님은 겨우 자신을 멈춰 세울 수 있었습니다. '저런 애한테 무슨 화를 내냐. 수업이나 마치고 한마디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39쪽

나중에 교무실로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반성도 없고, 그냥 벌점 주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오 교사는 교사 초년의 열정은 사라지고 피곤하고 무기력하게 방학을 기다리는 날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어찌 오 교사만의 일일까.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국어 수업을 했던 분께서는 학생들이 도무지 질문도 없고 질문을 해도 대답조차 없어 수업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입시와 상관이 없으면 무관심한 아이들을 놓고 시를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육 전반에 대한 제도적인 변화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단순히 지식을 사고 파는 사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가 열정과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학생들과 만나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교사들은 또 교장이나 교감, 학년 주임 등 관리자에게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요구를 계속하거나 인격적 모욕을 가해도 거절하거나 항명하기 쉽지 않은 풍토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피아'라는 말까지 있지 않나. 교장이나 장학사는 교사와 기간제 교사, 학교 행정 직원들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안선생, 종이 쓰레기는 분리수거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 ..."
"해야 돼? 안 해야 돼?'
"해야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 지키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 할 수 있습니까? 안 그래요?"
"... ..."
"요즘 업무도 계속 깜박깜박하고, 정신 차려야지. 젊은 사람이 벌써 그럼 어떡해? 앞으로 조심하세요. 알았어요?"
교장실을 나서는 안선생님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158쪽

책에서는 용서와 화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등을 통해서 마음 속에 쌓아두지 말고 털어내라고 조언한다. 말처럼 감정을 털어내고 용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직접 대면해 감정을 털어놓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용서편지 등을 써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아들러의 용서에 관한 책이나 미움받을 권리 등의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교사는 신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상처 받고 감정을 상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감이 넘쳐 동료 교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본인은 일중독에 시달리며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이제는 교사도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나도 만일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교육을 받았더라면 나의 학원 강사 시절이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8주 된 프랑스 아이를 1년 정도 돌봐 준 적이 있다. 당시 아이의 친할머니가 스페인에서 와서 두 달 정도 함께 생활을 했다.

그녀는 전직 유치원 교사였는데 절대 친손자를 안아주지 않았다. 40년 간 유아들과 함께 한 기억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마담. 삐삐(소변 마려워요)' 하던 소리가 지긋지긋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긴 세월 아이들과 함께 한 뒤 남은 것이 감정노동에서 벗어난 해방감뿐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사가 교사의 정체성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교사 스스로 너무 많은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학생과의 관계에서도 억지로 참으며 화를 쌓아두지 말고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관리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용서하지 못할 잘못은 흔치 않겠지만 용서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일 것이다. 저자는 마음속에 끝내지 못한 분노가 숨어 있다면 본인을 위해 '용서의 여정'을 떠나보라고 충고한다.

'내가 용서하는 까닭은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나의 분노가 나의 행복을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용서가 나의 과거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용서는 나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177쪽
덧붙이는 글 선생님도 아프다/ 양곤선 지음/ 팜파스/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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