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6개월간 독방에 가두고... 4년 전 벌어진 일, 왜?

[헌법 쉽게 읽기 ⑥] 고문으로 조작된 수많은 사건

등록|2017.03.20 20:05 수정|2017.03.22 11:13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요즘만큼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헌법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근본임에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헌법, 그 헌법을 국민들과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 기자 말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2000년 8월,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12군데 이상 찔려 사망하는 강도사건이 발생했다. 유일한 목격자는 다방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최군이었다. 하지만 최군의 신분은 곧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뀌었다. 경찰은 최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최군은 처음엔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최군을 범인이라고 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정황 또한 여럿 드러났다. 그러나 최군은 수사 중 범행을 자백했다. 1심은 최군에게 강도살인죄를 적용하여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5년 감형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최군은 상고를 포기했다. 그는 10년을 만기복역하고 나서야 다시 사회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15살 청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최군이 아닌 최씨라 불렸다.

출소 후 최씨는 자백을 번복하고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어느 헌신적인 변호사를 만나면서부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심전문 변호사라 불리게 된 박준영 변호사였다. 무작정 억울함만 주장하던 최씨는 자신의 무고함을 다시 다퉈볼 수 있는 재심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

수사기관의 강압수사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진범이 잡혔음에도 검찰이 풀어주었다는 사실은 결정적이었다. 결국 2016년 11월 17일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의 과오를 인정한 것이었다. 16년을 살인자로 살아야했던 그의 누명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2017년 영화로 제작되어 국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재심>의 실제 사연이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실

▲ 영화 <재심>의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의 연기력 합이 훌륭하다. ⓒ 오퍼스픽쳐스


택시기사를 살해하지 않은 최군은 왜 스스로를 살인범이라 자백했던 것일까? 그는 수사과정에서 강도 높은 폭행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고문이 자행된 것이다. 수사기관은 최씨로부터 "내가 살인범이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그를 고문했다.

최씨의 자백은 고문의 고통에 못 이겨 이루어진 허위진술이었던 것이다. 고문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파괴하는 범죄행위다. 더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수사기관이 원하는 진술을 강요당하는 것으로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부정하게 만드는 반인륜적 행위다.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와 제309조는 고문과 같은 위법한 수단을 통해 얻은 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법칙'이다.

지난 우리의 역사에는 고문 등 부당한 수사행위로 억울하게 처벌받아야 했던 이들의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변호인'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부림 사건', '남영동 1985'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던 '김근태 고문사건', 사형이 선고된 지 8시간만에 집행되어 국제법학자협회에의해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된 '인혁당 사건',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몰고 이들을 지원했다며 학생운동 가담자들에게까지 간첩혐의를 뒤집어 씌웠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사건, 어부들이 북한을 오가며 간첩활동을 했다며 울릉도 주민 47명을 간첩혐의로 검거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 등 하나하나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고문이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2013년, 국가정보원은 간첩이 탈북민으로 서울시에까지 침투하였다며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우성씨를 간첩혐의로 체포했다. 일명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이었다. 간첩이 공무원조직에까지 침투하였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유우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주요 증거였던 서류들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결정적 증거였던 동생 유가려씨의 증언이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임이 밝혀졌다. 국가정보원은 유가려씨를 6개월 동안 독방에 가두고 오빠가 간첩이라는 진술을 강요했고 한다.

6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독방에 가두는 것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다. 신체에 직접 고통을 가하는 것 못지않은 정신적 고문인 것이다. 불과 4년 전 벌어진 일이다. 현재도 고문이 근절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유죄를 확신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UN은 1984년 12월 10일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여 고문을 금지했다. 한국 역시 1995년 2월 8일 본 협약에 동참했다. UN까지 앞장서 금지를 외치고 있는 고문이 아직까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데 고문만큼 수월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310조는 자백 외에 별도의 증거가 없을 경우 자백을 통해 유죄를 입증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다. '자백 배제의 법칙'이다. 자백만으로도 유죄가 입증될 수 있다면 고문 등을 통해 자백만 받아내면 진실이 무엇이든 유죄가 인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유죄의 확신이 있음에도 자백하지 않고 별다른 증거도 없을 경우 피의자를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1994년 6월 미국 LA의 고급 주택가에서 백인 여배우 니콜 브라운 심슨(Nicole Brown Simpson)과 론 골드먼(Ron Goldman)이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프로풋볼선수 출신의 흑인 배우 OJ 심슨(OJ Simpson)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소위 드림팀(dream team)이라 불린 유력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한 심슨은 인종차별 주장까지 끌어들이며 372일 동안 법정다툼을 이어간 끝에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니콜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해 배상금 850만달러와 함께 징벌적 배상금으로 2500만달러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형사소송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민사소송에서는 살인이 인정된 것이다. OJ 심슨 사건과 같이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는 경우는 다소 강압적인 수사기법을 동원해서라도 자백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물증을 찾아내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자백은 피고인이 부인할 수 없는 물증을 통해 받아내야지 강요로 받아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물증이 없다면 함부로 유죄를 의심하여서는 안 된다.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함을 선언하고 있다. 간혹 TV를 통해 명확한 증거 앞에서도 억울하다면 소리 높이는 뻔뻔한 피의자들을 보면서 몇몇 국민들은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문당하지 않을 그리고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민주주의는 양심에 따른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을 때 발전한다. 권력에 의해 특정 진술을 강요당한다면 그 곳은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 것이다.

99명의 범인을 잡았더라도 1명의 억울함이 있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오히려 99명의 범인을 놓쳤더라도 1명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면 그것이 정의인 것이다. 이 땅에서 고문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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