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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촛불이 되다"

아무 데서나 발생하는 별-정정엽 작품전, 4월1일 개막

등록|2017.03.31 10:02 수정|2017.03.31 10:02
팥, 콩, 나물, 벌레 따위를 생명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가. 정정엽 개인전이 제주에서 열린다.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낸 '촛불'을 주제로 한 최초의 개인전이어서 눈길을 끈다. 전시를 앞두고 작가와 나눈 대화다.

- 전시 주제로 '촛불'을 삼은 계기는?
"광장의 촛불을 보면서 장엄한 민주주의의 씨앗 같았다. 마침 내가 그리고 있는 콩들로 그 씨앗을 그리고 싶었다."

- 어떤 느낌으로 작업을 했는가?
"예전의 작업들이 곡식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점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그 점들이 불을 켜는 듯해서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정정엽 개인전광장-5, 2016,oil on canvas,70x180cm ⓒ 정정엽


- 작업노트가 있을 거 같다.
"지난겨울 씨앗들이 불을 밝히며 내 안으로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오색의 콩들이 또 다른 촉으로 발화한다. 모이고 흩어져 물결이 되고 별빛이 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존의 촛불이다.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콩알만 한 콩. 하하하 이것이 그림이 되었다. 이 얼마나 시시하고 위대한 일인가. 저마다의 촉으로 저항이다. 축제다."

다음은 여성주의 작가 방정아가 본 정정엽 작품 평이다.

"동안거에 들어간 작가는 조그만 콩에 알알이 의미를 새겨들어갔다. 그때 마침 촛불들과 만났다. 20차에 이르는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촛불들은 작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촛불에서 시작된 콩들의 거대한 운집은 이후 작업에서, 꿈틀거리거나 빛나거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윽고 조용히 퇴장한다. 어둠 속 콩들에서 몇몇 남은 콩들은 여전히 빛을 내는데 밤바다의 불빛이나 또 다른 풍경으로 깜빡인다.

정정엽 개인전 전시작품1광장-10, 2016,oil on canvas,91x212cm ⓒ 정정엽


정정엽이 콩을 그리는 방식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리는 게 아니라 지우는 방식이다. 얼핏 보면 콩을 그리는 것 같지만 실제 그리는 것을 보면 지우는 방식이다.

캔버스에 콩으로 그릴 면적을 대략 정해 검은색으로 칠한다. 그리고 깨끗한 붓에 테리핀을 찍어 농담기법으로 살랑 지워내면서 콩을 그리기 때문이다.

마치 생명과 죽음이 하나로 굴러가는 것처럼 지워내면서 태어나는 씨앗들이다. 일상과 살림, 예술과 기술 따위가 절묘하게 담긴 그림이다.

그동안 수백만 개의 콩- 씨앗을 그릴 수 있었던 까닭도 작가가 터득한 지우면서 그리는 방식이라 할 수 있었겠다. 그 콩들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생명이 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되고 우주가 되기도 한다.

정정엽 전 전시 작품(왼쪽)촛불8,2017,oil on canvas,34.8x24 (오른쪽) 광장-12, 2017,oil on canvas,80x50cm ⓒ 정정엽


예전에 팥들은 붉은색을 띠었으나 최근작은 씨눈이 콩 즉 검정콩이다. 흑두와 적두는 색상이 지닌 상징에서 다른 느낌을 준다.

먹은 감춤, 덮음, 사라짐 따위를 뜻한다. 먹과 빛은 서로 맞서는 정서지만 뗄 수 없는 성질이다. 먹 없이 빛도, 빛없이 먹도 없다.

그래서 밤하늘의 별이 된다. 별은 자리가 있다. 그러나 콩-씨앗들은 아무데나 굴러다닌다. 어디서나, 아무 데서나, 여건이 맞으면 싹을 틔우과 나물이 되는 별이다.

광장의 수많은 촛불을 보았는가.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적이 있다, 군중들의 외침은 장엄한 음악이 되고 낯선 사람과의 부딪힘은 따뜻하고 유쾌하다.

촛불은 바다나 파도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뒤엎기도 한다. 광장에 '촛불'이 그랬다. 정정엽의 '콩-촛불'은 생명감 넘치는 자발성을 위대한 아름다움으로 확장시킨 '시' 같은 그림이다.

정정엽 작품전 포스터제주 노리갤러리 ⓒ 박건


덧붙이는 글 전시제목: “아무데서나 발생하는 별” 정정엽 개인전
전시일시: 2017.4.1(토)~4.19(수)
열림행사: 4.1.3pm 오픈 퍼포먼스
전시장소: 갤러리 노리064-772-1600)
무료관람: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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