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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날이 잔뜩 흐리고 바람이 차다

등록|2017.03.27 10:04 수정|2017.03.27 10:04

▲ ⓒ 유문철


비가 온 다음날, 날이 잔뜩 흐리고 바람이 차다. 몸이 시큰거리고 천근만근 무겁다. 자연의 기운에 몸이 날카롭게 반응한다. 지난 두 주일 농사일 피로 때문일까? 마음은 밭으로 향하는데 몸은 이불 속을 파고든다. 때에 맞춰 밭에서 할 일이 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으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느 일이 안그렇겠냐마는 농사일은 때에 맞춰 몸을 놀리지 않으면 한 톨의 수확도 거둘 수 없다. 때를 놓치면 일이 열곱, 백곱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그 무섭고 두려운 자연의 가르침을 알기에 때를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농사를 말로, 글로, 생각으로만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른 중반까지 두뇌와 입과 손가락 만으로 살다 팔다리 근육으로 살아가는 농사꾼이 된 지 10년. 아직도 지난 세월의 거짓 습속을 채 버리지 못한 걸까? 늘어난 팔다리 근육 만큼이나 꾀가 나고 요령도 늘었다. 우직한 황소의 끈기가 필요한 농사꾼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요령 좋고 꾀 많은 농사꾼도 못되고 우직한 농사꾼도 못되는 어쩡쩡한 얼치기 농사꾼. 어제 마흔 다섯 생일을 맞은 10년차 소띠 농사꾼의 자화상이다. 아무 것도 몰랐을 때는 환상과 의욕만으로 몇 해를 앞만 보고 내달렸다. 조금 알게 되었을 때는 많이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아는 체하다가 큰 코 다쳤다.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얼치기다.

무슨 일이든 한가지 일에 10년을 매진하면 도통하고 일가를 이룬다지. 그런데 농사일은 어찌된 일인지 하면 할수록 힘이 들고 알쏭달쏭한 걸까? 근육의 힘은 떨어지고, 흰머리가 늘고, 아이는 커가고, 생각은 천갈래만갈래 갈라지고, 논과 밭과 과수원은 일을 하라 부르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흐린 봄날 하늘을 올려다 보는 얼치기 농사꾼 마음도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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