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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호텔 들어간 교수님, 아내는 잠을 못 잤다

계란유골(鷄卵有骨), 잘 모시려다 낭패 본 이야기

등록|2017.03.28 11:09 수정|2017.03.28 21:00
계란에도 뼈가 있다. 거짓말이다. 계란에는 젤 상태의 노른자와 흰자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계란유골(鷄卵有骨)이란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생겼을까. 운수가 나쁜 사람은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주 수요일 밤, 우리의 경우가 그랬다. 정말 귀한 분을 하루 모실 수 있는 기회였다. 아내가 한 봉사단체 대표를 맡고 나서의 일이다. 10주 연속 강의로 사계(특정한 방면)의 권위자 한 분을 모시고 무척 좋아했다. 주위 사람들도 그랬다.

귀한 교수님을 강사로 모시다

▲ 귀한 분을 모시게 돼 가장 좋을 것 같은 모텔로 모셨다. 그런데 모텔이 하필... ⓒ pixabay


개강식 때 첫 강의가 있었고 지난 주 목요일(3월 23일)이 두 번째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강사 선생님은 포항에 거주하는 분이다. 전국을 무대로 상담과 인성(人性)에 대해 강의를 다니는데 봉사의 의미가 다분하다.

​그 주 일정을 보면 20일~22일까지 서울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강의가 잡혀 있었고, 바로 이어 김천의 한 봉사 단체 자원 봉사자들을 상대로 강의가 이어졌다. 김천의 봉사 단체 대표로 아내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교수님도 처음엔 좀 피곤하더라도 포항 집에 가서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김천으로 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른 일로 통화하면서 사정을 읽고 나서 포항 댁으로 갈 필요 없이 김천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강의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방은 깨끗한 모텔을 하나 예약해 두겠다고 했다. 아내의 또 다른 걱정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모텔을 가 볼 기회가 없어 그 방면의 정보가 어두웠다. 처음 모텔 이야기를 쉽게 떠올린 것은 마을 건너편에 불야성(不夜城)을 쌓고 있는 모텔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모텔에 1박을 예약하다

교수님이 수요일 밤 늦게 도착하면 역으로 모시러 가야 할 것이고, 또 이튿날 아침 일찍 모텔에서 강의 장소까지 가는 것도 내 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나는 이것도 일종의 외조(外助)라고 생각하고 덤덤히 따라주고 있다.

​아내가 집 근처에 있는 모텔을 예약한 것은 남편인 나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내는 10여 개의 모텔이 모여 있는 곳 중에서 제일 크게 보이는 모텔을 찾아 가서 예약을 했다. 교수님이 쓰실 방이라고 하니까 좋은 방을 주기로 했다며 흡족해했다.

​수요 밤 예배가 끝나고 우리는 급하게 역으로 차를 몰았다. 김천구미 KTX 역사,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하게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2박3일의 서울 강의에 이어 김천에서의 1박(泊)이니 여행용 캐리어가 제법 컸다. 무게도 그것에 비례할 것이다. 여성이 운반하기엔 다소 부담이 되는 무게로 느껴졌다.

​아침 식사는 평소 간단히 해결하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아내는 롤빵과 음료를 사서 차에 실었다. 마음 한 쪽엔 이래도 되는 건지 염려도 없지 않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김천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나의 경우도 조반 정도는 자주 간단하게 해결한다.

​언뜻 지난 날 설교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예수님이 차려 주신 아침 식사."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허탕을 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셔서 친히 조반을 지어 먹이신 이야기. 그렇게 보면 교수님을 위해 준비한 빵과 음료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 된다.

교수님이 러브모텔에서 하룻밤을 묵다

직지사 입구 근처에 모텔이 연이어 들어 선 이유를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KTX 역사가 이 부근에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아 부동산 가격이 들썩였던 적이 있다. 부동산 투기로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도 들린다. 결국 헛소문이 되고 말았지만 10여 개의 모텔 난립과 이것과의 상관관계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모텔 촌이 형성된 것이다. 각기 자신의 위용을 요란한 네온사인으로 과시라도 하듯, 밤이면 그 휘황찬란함이 장관이었다. 어두움보다 빛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 불빛에 눈을 주긴 하지만 '강 건너 불 구경'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나도 그랬다.

​예약된 모텔은 일군(一群)의 것 중 먼저 세워졌을 뿐 아니라 규모도 가장 컸다. 또 길 안내 입간판 등 홍보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는 모텔이었다. 광고의 효과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 홍보란 이런 점을 노리는 것이구나.

​분위기가 이상했다. 입구부터 긴 발이 드리워져 차량의 노출을 방지해 주고 있었다. 또 '1실1주차'라는 표지판의 의미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2층으로 된 모텔에 1층에 주차를 하고 셔터를 내린 뒤 2층 숙소로 올라가면 되는 구조였다. 비밀이 보장되는 모텔, 과연 그렇게 할 무슨 이유가 있을까.

​아내는 안내실에 가서 생각보다 길게 말을 주고받았다. 나와 교수님은 어색함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말을 만들어서 대화를 했다. 초로(初老)의 사람들이라곤 하지만 소위 남녀 단 둘이 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교수님이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교수님, 이곳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네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계란유골(鷄卵有骨)이란 말이 떠오르다

정말 미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당장 내일 강의를 앞두고 쉼의 시간이 필요한 교수님에게 정신을 헝클어 놓기에 '딱'인 이런 모텔로 안내한 것이 말이다. 사자성어 계란유골(鷄卵有骨)이 떠오른 이유를 독자들도 알았으리라. 잘 하려고 했지만 대접이 꼬이고 마는….

​"목사님, 전 괜찮습니다. 이런 러브 모텔 급할 땐 가끔 신세를 지죠. 그땐 혼자 가지 않고 꼭 남편과 동행합니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저와 남편의 관계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구요. 하하하!"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런 곳도 괜찮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 믿음으로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게 우리 그리스도인들 아닌가. 이런 함의(含意)를 담고 있는 말로 들렸다. 상대를 배려해 주는 말이어서 고마웠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상담 전공자로서의 면목이 돋보였다.

​짧은 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우리와 맞지 않는 분위기 탓이리라. 아내가 왔다. 조용하면서도 깨끗한 곳이라며 제일 외진 곳을 지정해 주더라는 것이다. 무거운 캐리어를 함께 들고 올라간 아내가 토끼 눈을 하고 내려 왔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빨리 호텔에 방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평일인데도 호텔엔 방이 없었다. 김천에 무슨 전국 단위의 행사가 있지 않나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불경기에 호텔 방이 없을 턱이 없지. 공연히 김천에 하나밖에 없는 호텔을 타박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모텔에 올라갔다 온 아내가 갑자기 호텔을?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라도 만난 건가?

​"아니, 이런 모텔에 대한 정보도 좀 갖고 있어야 하겠어요. 이런 데를 러브 모텔이라고 한다네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어요. 대관 2만, 숙박 4만. 전 까무러칠 뻔 했어요. 방이 온통 성적 놀이터 같았어요. 물침대에서부터 전신 안마기에 이상한 의자까지….

​벽에는 나체 사진으로 도배를 해 놓고…. 아, 교수님에게 죄송해서 어떡하죠? 잘 한다는 게 도리어 근심거리를 드린 격이 되었으니…. 교수님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본의 아니게 비례(非禮)를 범한 게 돼 버렸으니…."

​아내는 다시 모텔 방으로 올라 가 교수님께 사과 겸 위로의 말을 전하고 내려 왔다. 교수님은 피곤하기도 하고, 불을 끄고 자면 된다며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도리어 염려를 잠재우기 바빴다.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아내는 숨을 몰아쉬었다.

죄송한 마음에 아내 잠 못 이루다

집에 와서도 아내는 잠을 자지 못했다. 차라리 누추하더라도 집에 모실 걸 잘못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아니, 교회 건축 시작 전 가재도구들을 이리저리 옮겨 놓아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니라면 교수님을 집으로 모셨을 것이다. 어떻든 하루의 일정이 흐트러진 상태로 마감되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9시, 다시 그 모텔을 찾아 갔다. 노다지를 캐러 서부로 내달렸던 미국 사람들의 들뜬 심정이 아니었다. 폐광(廢鑛)을 다시 찾아가는 광부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교수님은 모든 걸 정연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쉬 찾을 수가 없었다.

​"밤새 무척 불편하셨지요. 잘 모시는 일도 뜻과 어긋날 때가 많군요. 하여튼 죄송합니다. 아내는 밤새 한숨도 못 자는 것 같더군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편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기분의 흔들림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교수의 지적 이력이 그렇게 만들지 않나 싶다. 나도 모르게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해서 바로 잠에 떨어졌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QT(Quite Time)를 했습니다. 이상한 분위기가 말씀을 더 마음에 와 닿게 하더군요. 감사할 일이지요."

​간단하게 빵과 음료로 조반을 대신하고 교수님은 오전 강의에 임했다. 모두들 좋아했다. 굴곡진 하룻밤의 악몽이 아름답게 열매 맺은 것 같아 안도되었다. 이런 일, 나도 귀한 경험으로 쌓아 두어야겠다. 모두에게 감사할 내용이어서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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