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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들어선 선생님이 박수 받은 사연

캄보디아 크썸 지역 의료봉사, 유아교육봉사, 2월 18-24일

등록|2017.03.28 11:35 수정|2017.03.28 11:37

▲ 크썸 마을에 차려진 진료소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임채홍 선생 ⓒ 임채홍


우리는 어느 날 세상에 와서 짧은 인생을 살아간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여유 있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말이 세상을 떠도는 것이리라.

불공평한 세상이 모두에게 보다 살만한 곳이 되기 위한 노력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이번 봉사를 통해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나의 재능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우연을 인연으로 엮어 낸 사람들

캄보디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이창원 신부와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임채홍 단장의 만남은 각자가 가진 재능이 더 넓은 세상으로 펼쳐지는 시작이 되었다. 이들은 한 방울의 물방울이라도 쌓이면 결국엔 바위를 뚫어내듯, 사람들의 재능이 합쳐지면 세상의 희망이 된다는 것을 실현하고 있다.

자신의 재능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한 사람의 꿈이 그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이 모여 '하늘에 가까이'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하늘에 가까이'는 지난 5년간 캄보디아 지역에서 의료 및 일반 봉사활동을 수행해왔으며, LG 전자의 후원에 힘입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의료팀 7명, 일반팀 5명으로 구성되어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캄보디아 크썸 지역에서 의료봉사와 유아교육봉사를 수행했다. 지금부터, 이들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채워온 따뜻한 온기를 전하려 한다.

▲ ‘하늘에 가까이’ 봉사팀과 캄보디아 봉사자 단체사진 ⓒ 임채홍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니 뜨겁고 습한 공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찌는 듯한 더위를 느끼며 공항 밖으로 나서다 공항 출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까지 이 많은 사람들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가만히 지켜보니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족이었다. 한 명씩 공항을 빠져나올 때마다 열명은 족히 넘는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가 얼싸안고 환영인사를 건넨다. 머나먼 외국을 다녀오는 가족을 얼마나 기다렸으면 이 밤 늦은 시간까지 온 가족이 모두 나와 공항 앞을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이들의 따뜻한 마음은 나를 이 곳에서 보낼 시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게 했다.

크썸에서 찾은 사소한 행복

'하늘에 가까이'팀은 프놈펜에서 약 5시간 정도 떨어진 크썸 지역으로 향했다. 이 곳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발전기를 돌리는 시간에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마을마다 우물을 파서 물을 길어 쓰는 오지이다. 시계를 돌려 과거로 시간여행을 간 것처럼 우리는 해가 뜨면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지면 은은한 달빛 아래 모두가 고요히 잠을 청해야 했다.

인터넷을 연결할 수 없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은 가방 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서만큼은 숨가쁘게 돌아가던 시계바늘도 잠시 멈춘 듯 모든 게 느려졌다. 몸은 다소 불편했으나 이상하게 마음만은 날이 갈수록 평온해졌다.

손에 쥐고 있던 많은 것들을 내려 놓으니 일상생활에서 누리고 있던 편리함이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는 사소한 행복과 좋은 사람들과의 풍성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 유치원생들의 내과 검진을 하고 있는 박혜경 교수 ⓒ 홍성희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크기

크썸에 도착한 봉사팀은 지역 사람들을 만날 채비를 했다. 신부님이 머물고 있던 성당은 봉사팀이 준비해온 다양한 의약품으로 채워졌다. 봉사 첫 날 아침이 밝아오자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진료소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고, 의사를 만날 일이 흔치 않다 보니 외국에서 찾아온 의사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있었다. 진료소는 '진짜 환자'와 '가짜 환자'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선생님들은 진료소를 찾은 환자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살폈다.

이 곳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겨우 식수를 얻기 때문에 씻을 물은 더욱 귀해 위생적으로 매우 열악했다. 이런 환경 탓에 환자들은 고질적으로 여러 병을 달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진료소를 찾은 환자들은 피부병이나 감염병 등을 꼼꼼히 검진 받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 받았다.

평소 아파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던 이 곳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멀리서 찾아온 의사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진료를 마친 뒤에도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진료소에 한동안 머물렀다 가는 사람들에게서 그 마음이 느껴졌다. 한차례 주민들의 진료가 끝난 후, 이번엔 진료소 옆에서 수업을 마친 유치원 아이들이 몰려와 검진을 받기 시작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신나게 장난을 치던 아이들도 자기 차례가 다가오면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내 커다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순서대로 불소도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크기는 이렇게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이 아니었을까. 봉사팀을 보며 진짜 치료는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것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환자의 몸에서 고름을 제거하고 있는 임재석 교수와 송승희 간호사 ⓒ 홍성희


신발은 사랑을 싣고

의사 선생님들은 팀을 나눠 일부는 진료소를 지키고 일부는 미처 진료소까지 오지 못한 환자를 찾아 직접 마을로 나섰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선선한 공기가 주위를 감쌀 무렵, 마을로 진료봉사를 나갔던 선생님들이 돌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시간이었는데 웅성웅성 환호성이 들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모였다. 저 멀리, 봉사를 나갔던 선생님 한 분이 맨발로 성큼성큼 걸어 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걱정되는 마음과 다르게 정작 맨발 투혼을 보이는 선생님의 표정은 밝았다.

선생님이 맨발로 들어서며 모두의 박수를 받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마을에 마련된 진료소에 다친 발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상처가 잔뜩 곪아버린 환자가 찾아왔다. 환자의 상태는 치료가 조금만 늦어졌어도 발을 잃을 뻔 했을 만큼 심각했다.

급하게 응급처치를 해서 치료를 마무리하고 보니 이 환자, 진료소에 맨발로 온 것이 아닌가. 환자가 다시 맨발로 돌아간다면 치료의 의미가 없었고 환자가 느끼게 될 고통은 상상 이상일터. 그 자리에 있던 선생님들 모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기 신발을 내밀었다.

그 덕분에 환자는 여러 선생님의 신발 중 자기 발에 가장 잘 맞는 신발을 골라 신고 편안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환자에게 신발을 신겨 보낸 선생님은 어느 날보다 빛나는 얼굴로 봉사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맨발로 돌아가게 될 환자 앞에서 서로 자기 신발을 벗어주겠다며 다퉜을 선생님들의 얼굴이 눈 앞에 선했다. 그들은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더 높였으리라. 남에게 내 것을 먼저 주겠다고 말이다.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와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 신발 사건은 아마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을 것만 같다.

▲ 맨발 투혼을 보여준 진상윤 선생 ⓒ 임채홍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또 '사랑'이었으니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마음 속에는 따스한 등불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그 작은 등불이 켜지자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그들과 나누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 마음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우리가 살면서 점점 더 외로워진 까닭은 먼저 누군가에게 가슴으로 다가가는 법을 잊어버린 탓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서로를 이어주는 사랑을 싹트게 한다. 봉사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캄보디아에 왔으나 오히려 우리들 가슴은 이들이 나누어 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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