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론으로 촬영한 예작도 모습. 주변해역에 양식장들이 널려있다 ⓒ 이재언
며칠전 예작도에 다녀왔다. 예작도는 완도군 보길면 예작리에 딸린 섬이다. 동경 126°42′, 북위 34°07′에 위치하며 면적 0.33㎢, 해안선 길이 3km, 20가구 45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183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으며, 그뒤 여러 성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예송리에 속하였다가 광복후 분리되어 보길면 예작리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예의범절에 밝아 예작도라 하였다고도 하며, 마을 앞에 우거진 방풍림이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는 어부를 예절을 갖추어 맞이하는 듯한 형태라 하여 예작도라 부른다고도 한다.
섬 모양은 대체로 삼각형을 이루며, 북쪽 끝에 약간 넓은 평지가 있어 그곳에 마을이 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농산물로는 소량의 보리·콩·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근해에서 멸치·참조기·농어·도미·갈치·전어 등이 잡히고, 김·미역·파래·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한다.
교통이 불편한 섬 예작도
▲ 예작도 마을 골목길 모습 ⓒ 오문수
▲ 폐교된 초등학교 모습 ⓒ 오문수
보길도에서 유명한 예송리 해변을 구경하고 500m 건너편에 있는 예작리를 가려고 하는 데 가는 배가 없다. 혹시나 섬으로 가는 배편이 있으면 타고 가려고 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배고파 가게에 들어가 빵을 사 먹으며 예작도 가는 방법을 묻자 아주머니가 알려줬다.
"조금 있으면 교회예배가 끝나니 항구에서 기다리다 교인들 배를 함께 얻어 타고 가세요."
교인들이 탄 배를 얻어 타고 항구에 내리니 전복틀 작업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동승했던 교인이 예작도에서 돌아볼 것과 도움 받을 사람을 소개해줬다.
마을을 돌아보다 이장님댁을 찾아가니 읍내로 나갔다며 이웃집 할아버지를 찾아가란다.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밭에서 농약뿌리는 할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여기서서 얘기하지 말고 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자"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소개했다.
태풍만 불지 않으면 괜찮은 전복양식사업
▲ 재작년 태풍때 예송리 해변에 떠밀려온 전복양식틀 모습이 처참하다 ⓒ 이재언
정영채(83세)씨는 3살적에 부모따라 일본으로 들어갔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20년 동안 이장을 해 마을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젊었을 적에 150㎏되는 상어 잡으러 추자도까지 다녔다. "상어회가 맛있다"는 정씨는 "추자도까지는 고속정으로 50분이면 도착한다"며 먼곳이 아님을 설명해줬다.
"논도 없고 밭만 있어 살기 힘들다"며 "젊은 사람들이 미역 다시마, 파래, 전복양식을 하며 바다만 바라보고 산다" 고 말했다. 예작리에서 전복양식을 시작한 지는 10년 정도 됐다.
▲ 20년 동안 마을 이장을 지내 마을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정영채(83세)씨가 마을에 관한 자세한 현황을 설명해줬다 ⓒ 오문수
▲ 아름다운 예송리 해변가에 미역이 널려있고 바다건너 뾰쭉 솟아있는 섬이 예작도다 ⓒ 오문수
"처음 노화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었어요. 젊었을 적에는 전복 양식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전복양식이 없었다"고 말한 그가 전복양식의 애로사항을 전해줬다.
"재작년 태풍에 전복양식장이 전부 예송리 해안으로 떠밀려왔어요. 아들이 10억 손해를 보고 보상금으로 5천만원 받고 완도로 나갔어요. 태풍만 안 오면 돈이 되는데 동풍이 정면으로 불어와 다 망했어요. 빚으로 한 사람은 먹고 살기 힘들어요."
예작도 앞바다를 바라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복양식장이 있다. 그런데 예작도는 멀리 떨어진 당사도외에는 태풍을 막아줄 섬이 없어 태평양에서 오는 태풍을 정통으로 맞아야 한다.
▲ 선창가에서 작업하는 주민들 ⓒ 오문수
"젊은 사람들 3~4억 정도씩 빚이 있어요. 전복 키우면 돈 번다는 소문 듣고 도회지에서 들어왔다가 태풍 때 망해서 후회하고 도로 나간 사람들도 있어요. 중리에서는 빚 때문에 두 명이나 자살 했어요."
주민들은 예송리에서 예작도까지 구름다리를 놓아 달라고 민원을 올려놨지만 노인들과 젊은이들의 견해는 약간 다른 것 같다. 배를 운전하던 젊은이는 "다리를 놓으려면 쓰레기차가 다닐 수 있도록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지인들이 놀러와 섬을 더럽히기 때문이라는 것.
할머니 당산나무들 후손을 번식시켜야
▲ 예작도 감탕나무는 수령 300년, 높이 15m, 둘레 2.7m에 이르러 한국에서 가장 큰 감탕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38호이다. 몇년전부터 세력이 급격히 약화돼 외과수술치료 중이다. 마을에서는 할머니 당산나무로 해마다 당산제를 지낸다 ⓒ 오문수
▲ 밀림 속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키는 예작도의 할아버지 당산나무인 곰솔이 안타깝게도 죽었다. 과문한지 모르지만 이렇게 큰 곰솔을 못본 것 같아 깜짝놀랐다. 인근에 번식하는 후손들의 씨를 수집해 전국에 확산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사람들은 나무아래에서 해마다 당산제를 지낸다 ⓒ 오문수
정영채씨가 알려준 길을 따라 숲속에 들어가니 할머니 당산나무인 감탕나무가 있었다. 예작도 감탕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된 고목이다. 높이 15m, 둘레 2.7m에 이르러 한국에서 가장 크고 수령도 오래된 천연기념물 제338호이다. 몇해 전부터 급격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해 고사한 가지를 잘라내고 외과수술을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하고 있다.
감탕나무와 50m쯤 떨어진 숲속에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인 곰솔이 있다. 수령 300년에 둘레 3.7m의 우람한 곰솔이 몇 해 전 솔껍질깎지벌레와 재선충이 남해안을 휩쓸고 지나갈 때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다. 곧게 뻗은 줄기만 10여 미터에 이르러 열대림 속에 들어온 것 같아 놀랐다. 학자들이 예작도의 두 노거수 자손들을 번식시켰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예송리로 돌아가기 위해 선창가로 나오니 주민들이 전복틀을 손질하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 또다시 태풍이 밀어닥치면 어쩌나!"하는 걱정에도 좋은 날을 기약하며 전복양식을 준비하는 어민들을 보며 이들의 노력이 시지프스의 형벌이 아니기를 빌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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