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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기, 초봄에 예취기 돌리는 사연

등록|2017.03.29 12:37 수정|2017.03.29 12:37

▲ ⓒ 유문철


▲ ⓒ 유문철


사흘 흐리고 비가 오더니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춘다. 찌뿌둥한 몸을 겨우 추스려 일을 하러 나선다. 지난해 가을 풀 깎고 창고에 웅크리고 있는 예취기를 꺼낸다. 초 봄에 풀 깍을 일이 없는데 지난 가을 끝내지 못한 풀깍기를 이른 봄에 한다.

수천평 내 땅도 다 못해서 치뜨고 내리뛰는데 뭐한다고 남의 집 위 토를 얻어서는 산소 여덟장을 깎고 제사 지내는 고역을 맡았단 말인가? 하물며 난 내 조상 제사도 지내지 않는 제사 반대론자인데 말이다. 조상이 괘씸한 후손에게 벌을 내린 것일까? 다 내 몹쓸 성질 때문이니 속으로만 삭힐 뿐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

시골살이 우여곡절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웃집과 불화가 없어야 한다. 지저분한 이웃 행실을 보고도 못 본척 했어야 했거늘. 불뚝성이 성미 못참았다가 멀쩡한 하우스 뜯어 옮기느라 없는 돈에 수백만원 쓰고, 남의 집 산소 깎기 머슴질까지 하니 자업자득이다.

능구렁이 같은 이웃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몇 마디 말로 제가 바라는 걸 이루었으니 그 신묘한 공력에 감탄할 뿐이다. 시골 무지렁이 앞에서 윤똑똑이 도시내기가 보기좋게 골탕 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조금만 숙이고, 조금만 굽히면 될 것을. 내 탓이요, 내 탓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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