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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앞에 마지막 카드마저 걷어차는 한국

[주장] 한중관계 원로들, 일방적인 의사 표시 보다는 관계 개선 앞장서야

등록|2017.03.30 13:29 수정|2017.03.30 13:29

▲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이 3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자국 여행사를 통해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져 국내 관광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 연합뉴스


이세기 한중친선협회 회장,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 회장, 황병태 전 주중대사 등은 중국 지도자들이 방한했을 때 꼭 찾아 귀빈석에 앉히는 한중관계에 원로들이다. 여기에 김하중, 정종욱 전 주중대사 등도 한중관계의 원로로 꼽힌다.

현재 냉각된 한중관계를 봤을 때, 실무자들은 중국의 부장급(한국 장관급 해당) 면담도 어렵지만, 이 원로들은 경우에 따라 상무위원들까지 면담이 가능하다. 한국이 새로운 국면을 모색할 때 소중한 인적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때로는 스스로, 때로는 주변의 끌림에 따라 사드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황병태(82) 전 주중대사는 지난 27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사드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황 전 주중대사는 이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과 관련해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는 것은 '커다란 전략적 실수'라는 견해를 밝혔다.

28일에는 김한규 회장과 군·정부 관계자들이 명동 중국대사관을 찾아 추궈훙 중국 대사에게 '중국의 노골적인 보복 행위는 한·중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어 심히 우려된다'며 항의했다는 내용을 국내 언론이 보도했다.

원로들의 입장 발표에도 사드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 중국 전문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강효백 경희대 교수는 월간중앙 3월호에 "중국으로서는 조어도(일본명 센가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새끼발가락을 스쳐가는 개미라면, 사드는 심장부를 찌르는 삼지창이다"라며 "중국은 사드배치를 센가쿠 분쟁보다 훨씬 중요한 전략적 핵심 이익의 심각한 훼손으로 본다"라고 기고했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 인터뷰(16년 9월30일)에서 "사드가 실제 배치된다면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것이다. 규모와 강도가 상당할 것이다"라며 "'전략적 이해를 침해한다'고 했던 중국 쪽의 표현이 중요하다. 이는 시진핑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당의 결정이라는 얘기다"라는 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2010년 출간한 '중국의 내일을 말한다'에서 "미사일방어체제는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다"라는 주펑 베이징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의 인터뷰를 전하기도 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나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등도 섣부른 사드 해석을 조심하라는 입장이다.

중요한 역할 할 수 있는 원로들의 섣부른 입장 발표

이런 상황에서 한중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로들의 섣부른 입장 발표는 결과적으로 한국이 쓸 수 있는 카드를 잃는 부작용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사드에 대한 대책은 한국과 중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에 따라 중국 정부나 언론은 반사드 정책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수위 조절로 판단된다. 또 5월 9일 대선을 통해 들어서는 새로운 정부와의 협의를 위해 사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은 많지 않다.

하지만 올해 11월에 구성되는 새로운 상무위원회의 구성 전에는 사드에 대한 입장 선회는 쉽지 않다. 우선 황교안 총리가 지난해 6월 29일 시진핑 국가주석 면담시 사드에 대한 결정이 없다고 밝힌 후 10일만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통해 신뢰를 잃은 것이 한 이유다. 더불어 중국은 철저한 논쟁을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선택하기에, 새로 구성된 상무위원회가 사드 입장 철회를 감행하는 건 쉽지 않다. 자칫 당의 전략적 입장을 거스르는 결과를 빚으면,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사드에 대한 입장 번복은 올 11월 새로운 상무위원회가 구성되어,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을 가져온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 마음을 돌린 시진핑 정부나 한국과 인연이 적은 새로운 상무위원진이 한중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중국이 중시하는 한중관계 원로들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사례처럼 미리 사드에 대한 입장을 표출한 원로들을 중국 고위 지도자들이 면담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이세기(81) 회장이 수위를 잘 조절하는 모습이다. 이 회장은 지난 26일 랴오닝 다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에서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았으나 사드 사태로 한·중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세기 회장은 2005년에는 시진핑 주석을 제주도 '서복공원'으로 초대해 직접 안내하기도 했으며, 2009년 12월 방한 시에도 개별 면담하는 등 관계를 유지해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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