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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유박비료 받고도 즐겁지 않은 이유

농자재 지원 대신 직접지불제 인상이 절실하다

등록|2017.03.30 14:16 수정|2017.03.30 14:17

▲ 친환경 인증 벼 농가에게 무상지원되는 유박비료 야적 현장 ⓒ 유문철


해 저물 무렵 한결이와 읍내 수영장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화물트럭이 집 앞에 서 있다. 트럭 주인이 한창 비료포대를 집 옆 길가에 쌓고 있길래 누구네 거냐고 물어 보았다. 화물 기사가 장모님 이름을 말한다. 어디서 온 거냐고 물었다. 다가가서 보니 유박비료다. 아주까리박, 채종유박, 어분이 들어 있다.

"포항에서 왔어요."
"그 뜻이 아니구요. 누가 보낸 거죠?  주문한 적 없는데요."

기름 짜고 남은 찌꺼기가 여러해 전부터 유박비료라는 이름으로 친환경 농가들에 많이 보급되고 있다. 퇴비에 비해 질소, 인산, 칼륨 같은 주요 성분이 몇 배 더 들어 있다. 알갱이 형태라서 비료 살포기로 논, 밭, 과수원에 뿌리기 좋아 친환경 농민들이 많이 쓰고 있다.

하지만 유박 원료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특히 피마자박이라고도 하는 아주까리박에는 리신이라는 맹독 성분이 들어 있어 논란이 된 지 오래다. 채종유박이라는 것도 GMO인 카놀라 찌꺼기이니 흙을 어떻게 오염시킬지 알 수 없다. 흙속에 사는 미생물과 벌레들에게 맹독과 GMO가 유익할 리가 없다. 유박비료가 흙을 나쁘게 만드니 가급적 퇴비 위주로 쓰고 피하고 있다.

그런데 주문하지도 않은 유박비료 50여 포가 집 앞에 쌓이니 열이 슬슬 났다. 4년 전에 친환경농가에 보조된 유박비료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또 들어오니 이건 또 뭔가 하고 속이 상하다.

"전 배달만 할 뿐 몰라요. 무상으로 나오는 겁니다."

이거 봐라? 무슨 명목으로 누가 주는 건지도 모른다면서 무상이라는 건 어찌 안담?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니 잠자코 주는 대로 받으라는 건가? 심사가 더 꼬이기 시작한다.

"아니, 배송을 하시면서 누가 보내는 건지도 몰라요?"
"전 모르는데 여기 서류에 있는 번호로 연락해 보던가요. 저는 수령 사인 받고 사진만 찍으면 돼요."

기가 찰 노릇이다. 한 두해 겪는 일도 아니지만 이럴 때마다 황당하다. 수십, 수백만원 어치 농자재를 받으면서 꼬치꼬치 캐묻고 이곳저곳 확인해야 간신히 내역 확인이 된다.

화물기사가 준 번호로 연락하니 유박 대리점 한다는 사람이 전화를 받는다. 수령자 이름과 지역을 말하니 확인 후 연락 준단다. 한참 뒤 연락이 와서는 친환경 인증 벼 농가에게 무상 지급하는 유박이란다. 이제야 이 유박비료가 우리집에 온 사연을 알겠다.

해마다 받던 아주까리박 위주 유박비료 대신 어분이 많이 든  유박이 온 건 그나마 예년보다는 낫다. 하지만 왜 정부는 농자재를 자신들이 정해서 일괄 보급하는 걸까? 정부가 앞장서서 유박비료를 보조 형식으로 보급한 결과 유박비료 산업이 급팽창 하면서 온갖 잡음이 인 것이 벌써 6~7년이 넘어간다.

친환경 농가들도 문제가 크다. 손쉬운 유박비료 쓰면서 화학비료 안 쓴다고 하는데 유박은 성분만 유기질일  뿐 친환경농사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재다. 퇴비와 거름 쓰는 힘겨움을 유박비료가 대신하니 편리하긴 하다만 편리 좇다가 흙을 망가뜨리고 유기농의 원리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유기농은 무엇보다 흙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친환경농업 지원한다며 유박비료 나눠줄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예산으로 친환경 직불금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농민들이 알아서 필요한 자재를 사쓰든 만들어 쓰든 할 것 아닌가?

농자재 관련 비리가 하도 많아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할 지 모르겠다. 우선은 보조니 무상이니 하며 특정 자재를 정부나 지자체가 선정하여 나눠주지 말고 앞서 말했듯이 직불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훨씬 나은 정책이다. 자재 선택의 결정권을 농민에게 주어야지 공무원과 자재업자들이 결정한대서야 말이 되나?  이런 현실이니 농민들이 공무원과 자재업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 여담 : 화물기사 나이가 올해 60이다. 내가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으니까 갈 길 바쁜데 영 짜증이 났나 보다. 공짜로 주는 거라는데 그냥 받으면 되지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다 했겠지. 

길 옆에 무성의하게 쌓는 걸 뭐라 했더니 갑자기 솥뚜껑 같은 양손으로 내 목을 우악스럽게 쥐어 졸랐다. 환갑이라는데 기운이 대단했다. 하마터면 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 주먹다짐 할까 하다가 개값 물기보단 두드려 맞고 농외소득(?)이나 버는 것이 났다 싶어 참았다. 조르지만 말고 몇 대 쳐보라 했더니 물러서고는 트럭 몰아 내뺐다. 

농민값이 개값도 못되는 시절이라 별 곤욕을 다 치른다. 나라에서 공짜로 주는 거 암말 말고 감지덕지 얌전히 받을 것이지 누가 보냈냐, 어디서 온 거냐 따져 묻다가 화물기사님 심기를 건드렸으니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덧붙이는 글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 농민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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