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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끌어내렸지만, 아직 봄은 다 오지 않았다

<망각과 기억2: 돌아봄> 프로젝트를 밀어주세요

등록|2017.04.04 18:52 수정|2017.04.04 18:52
작년 이맘때에도 <망각과 기억> 프로젝트가 있었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내놓은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는 꾹꾹 눌러 쓴 편지 같았다. 잊지 말아요, 나는 잊지 않고 있어요. 세월호 인양을 감시하던 동거차도에서, 청문회장에서, 단원고 교실에서, 안산의 골목골목에서, 손맞잡고 권리를 선언하는 광장에서, 세상의 모든 곳이 편지의 발신지와 수신지가 된 현실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돌아 봄'. 돌아보니 돌아 봄이더라. 올해의 <망각과 기억> 프로젝트의 제목을 보며 참 잘 지었다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봄은 아득했다. 벚꽃이 하얗게 필 때마다 야속했고 봄바람이 귀를 간질이면 천 개의 바람을 놓칠까 괜히 한번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다시 온 봄은, 시간이 흘러 저절로 온 봄이 아니었다. 3년의 시간을 돌아 온 봄이다.

돌아 봄

▲ 2일 오후 목포신항에서는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가 주최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추모행사에서는 진실 인양을 촉구한다는 의미의 인간띠 잇기 행사와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묵념 시간 등이 마련됐다. ⓒ 정민규


3년을 돌아온 시간이 제자리는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박근혜를 '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참사 당시 그의 행위를 파면 사유에서 제외했다.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는 있으나 구체적으로 부담하는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봄에 들어서지 못했다. 국민의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필요 없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힘이 봄을 열었기 때문이다.

초라한 결정문이었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는 숱한 참사들에서 책임자들이 책임을 모면하는 핑계가 되었다. 현장의 지휘자나 관리자가 처벌될 때에도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상급자들은 기소조차 안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렇다. 기소된 유일한 해경인 123정장은 재판부로부터 감형을 받았다.

"해경 지휘부나 같이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공동책임이 있어 피고인에게 모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후로 해경 지휘부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세월호 특조위 1차 청문회 결과는 해경 지휘부가 기소되어야 함을 확인시켰고, 특조위가 국회에 특검안을 제출했는데도 여전히 제자리다.

해경만 문제였던 것도 아니다. 국가기관과 공무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실현할 의무를 진다. 현장 영상을 보내라고 닦달하는 것도, 기념사진을 찍느라 대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은 것도, 사건 보도에서 정부 비판 기조를 빼려고 언론사를 압박하는 것도, 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들이었다. 박근혜 스스로 말한 '최종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생명권 보호의 의무만 저버린 것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반복되게 하는 질서를 만들어온 책임도 져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는 만큼 죽음의 질서는 견고해진다. 참사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목격자들 모두가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할 때, 정부여당은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했고 대통령은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했다.

진상 규명의 길은 험난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 참사의 기록은 흩어져 있다. 다시는 없어야 할 일로 여기지 않을 때, 참사는 반복된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을 때에도 박근혜 정권은 한결같았다. 박근혜는 끌어내렸지만 봄은 다 오지 않은, 거대한 전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돌아보니

▲ 3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육상 거치 전 하중 줄이기를 위한 천공(구멍 뚫기) 작업이 준비되고 있다. 이날 시험 천공을 통해 화물데크 내에 차있는 바닷물과 진흙을 빼내보고, 시도가 성공하면 추가로 최대 21개의 구멍을 뚫는다는 계획이다. ⓒ 해양수산부 제공


3년이 걸려 다다른 자리가 여기라니 가끔은 허탈하고 분하다. 박근혜가 내려오니 세월호도 올라왔다. 진작 닿았어야 할 자리다. 그러나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다는 건 그만큼 '세월호 참사 이전의 사회'가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멀리 보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이래 제대로 진상규명된 국가폭력 사건도 손에 꼽고, 제대로 책임자가 처벌된 참사는 손에 꼽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고 보면 3년 동안 멈추지 않고 진실의 길을 걸어온 우리 모두를 격려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 했던 아픔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세워 온 유가족들이 가장 큰 감사를 받을 법하다. 물론 그/녀들은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돌릴 것이다. 그 중에는 조심스럽게 늘 함께 걷는 생존자도 있을 것이다.(<승선>) 정부가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를 면피의 수단으로 삼을 때, 생존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무엇을 했어야 한 건지 되물으며 3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지만,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함께 걷고 있다. 유가족이지만 잘 보이지 않는, 단원고 희생학생들의 형제자매도 있다.(<오늘은, 여기까지>) 부모들은 형제자매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는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걱정하기도 하지만, 곁에 선 형제자매들이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모질게 세월호 참사를 지우려는 자들도 물론 있었다. '최순실'로 열린 박근혜 퇴진 정국에서 더욱 많은 것들이 드러났다.(<세월 오적五賊>) 김기춘과 우병우뿐만이겠는가. 세월호가 인양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라는 메모, 유가족들을 적대하며 고립시키려 했던 지시, 검찰에 외압을 행사하며 수사를 무력화시켰던 통화내용……. 이들의 행위는 직권남용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우리들의 삶에 죽음을 우겨넣는 방식이었다. 죽음의 질서는 아직 다 뿌리 뽑히지 않았다.

참사 대응을 피해자의 몫으로 떠넘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새땅에 씨앗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를, 한주를, 한 달을, 거르지 않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있다.(<걸음을 멈추고>) 지역마다 꾸준히 밝혀지는 촛불들,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때에도 세월호 참사의 현재를 알리기 위해 피켓을 들고 선전물을 나눠주는 사람들, 노래로 연극으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현재진행형의 참사를 함께 겪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며 거리로 나섰지만 언젠가부터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며 연대의 손을 잡아온 사람들이 있어, 세월호 참사는 더는 지워질 수가 없다.

다시 봄

이제야말로 시작이다. 망각에 맞서는 것으로 기억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돌아볼 때 할 수 있는 '말'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기억이다. 진상규명이 멈춘다는 것은 거짓'말'들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진실의 '말'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지, 구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수습과 인양을 서두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피해자를 음해하고 왜곡하려 든 세력의 실체는 무엇인지……. 기억을 위한 말, 기억을 위한 장소, 기억을 위한 연대, 이 모든 것이 투쟁인 봄이다.(<기억의 손길>)

다시 봄이 와도 누군가의 부재가 희미해지기야 할까. 봄이 올수록 누군가의 부재가 더해지기도 한다. 민간잠수사 김관홍도 그렇다.(<잠수사>) 부재를 견디며 싸워야 하는 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큼 큰 힘이 있을까?

<망각과 기억2:돌아 봄> 프로젝트가 새땅 여기저기에서 생명을 움틔우고 있는 우리를 만나게 해주길 바란다. 진실이 여물 때쯤 지금의 시간이 정말 봄이었다고 모두 말할 수 있기를. 그때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들을 다시 볼 것이다. 우리가 함께 걷는 시간들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수고로움에도 미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관련기사 : 드디어 올라온 세월호,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텀블벅 및 공동체상영 신청 안내 링크 : www.tumblbug.com/416movie
덧붙이는 글 글쓴이 미류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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