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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수납이 가능할까요?"

알러지성 마음 사용 설명서 "한 줄로 마음을 보다."

등록|2017.04.04 10:24 수정|2017.04.04 10:24
알러지성마음 사용설명서 "한 줄로 마음을 보다."

고슴도치 포옹.가시를 픔고 서로를 안는 고슴도치가 되고 싶지 않았다. ⓒ 김대호


많이 아팠었다.

마음은 얽히고설킨 실타래였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새벽 4시. 살아남기 위해서 3년을 새벽에 깨었다. 처음에는 몸이 나를 괴롭혔다. 그 다음엔 마음의 통증이 밀려왔다. 견뎌내야 했다.

다짐처럼 나에게 말했다. '마음도 수납이 가능할 것이다. 내 마음의 실타래들을 한 줄씩 살펴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지런히 정리된 실뭉치가 되지 않을까. 마음 수납이 습관이 되면 몸도 바뀔 것이다. 내 몸을 괴롭히는 뇌 속의 실타래들과 호르몬들의 혼돈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천 날을 마음일기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안개 속에 가려 있거나 가면을 쓰고 있을 내 마음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보이자 마음은 맑아지고 머리는 선명해졌다. 때때로 찾아오지만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 왔던 깊은 우울과 조울도 이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내게 방법을 묻기 시작했다. 피했다. 그들의 아픔을 듣는 순간 내 상처가 덧날까 두려웠다. 또한 내 마음이 아직 투명가시를 품은 고슴도치였다. 보이지 않는 내 가시로 인해 그들이 이유도 모르고 비명을 지르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통증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의치 않게 되는 것

무심하고 싶어졌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내 마음을 지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했다. 이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단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쓰기 시작한 것이 '한줄시'다. 그렇게 3년을 한 줄로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9년. 앓고 나서 이제 곧 10년이다.

그 한 줄에 담은 내 마음의 이야기를 풀어 내 써보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 이야기는 남고 시는 사라졌다. 마음으로 쓴 시를 머리로 풀어내자 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 마음만 보면 될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청명하게 하고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마음이 탁하면 내 안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며 밖의 탁한 소리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응당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이며 설사 쓴다하더라도 거짓을 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 마음을 맑게 하고 머리가 선명해진 다음에야 글을 쓸 일이다.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된 건가요?"

사람들이 묻는다.

"아니요. 여전히 아파요. 지금도 때때로 화가 올라오고, 거슬리고, 욕심에 생겨요. 다만 그 마음에 대해서 아는 거죠. 그래서 감당하게 되는 것이고 개의치 않게 되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죠."

'한 줄로 마음보기'는 '알레르기성 마음'에 대한 사용설명서이다.  탁함도, 아픔도, 거슬림도, 노여움도 개의치 않고 그 들려오는 소리를 옮겨 적으면 되는 것이다. 그뿐이다.

오늘부터 그 천 날의 이야기를 옮겨 적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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