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바뀐 전두환, 회고록 당신이 쓴 거 맞습니까
광주항쟁 당시 북한군 개입설 주장... 작년 <신동아> 인터뷰에서는 "처음 듣는 얘기"
▲ 나란히 놓인 <전두환 회고록>과 <이순자 자서전>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매장에 <전두환 회고록>과 <이순자 자서전 - 당신은 외롭지 않다>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 권우성
1979년과 1980년 상황을 다룬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되었다. 출간 이전 일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실제 회고록을 보면 그것은 모두 문제의 서곡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전두환은 너무 광범위하게 역사왜곡을 했기 때문에 반박할 내용 자체가 많다. 또한 그의 역사 왜곡이 초래한 부정적 영향 역시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하나의 기사 안에 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필자는 전두환 회고록을 검토하면서 아주 황당한 사실을 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광주민중항쟁 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주장은 완벽한 역사 왜곡이다.
그런데 순간 작년에 읽었던 전두환 인터뷰 기사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 인터뷰는 전두환의 역사 왜곡을 반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내용을 검토하고 있던 필자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단서가 됐다.
회고록에서 북한군 개입설 주장하는 전두환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광주민중항쟁 당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나오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전두환은 "이처럼 전개된 일련의 상황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406쪽)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했는가'라는 소제목으로 구성된 518쪽과 536쪽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522쪽에서는 "교도소 습격은 북한의 고정간첩 또는 5.18을 전후해 급파된 북한 특수전 요원들이 개입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533쪽과 534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5.18사태 당시 광주 현장에 있던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나 진술, 기자 등의 목격담 이외에 관련 자료나 정황 증거 등을 들어 연·고대생으로 알려졌던 600명의 시위대가 북한의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몇몇 연구가들에 의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10여 년간 집중적인 조사와 연구, 출판 활동 등을 통해 5.18광주사태와 관련된 진실을 규명해나가고 있는 지만원 시스템공학 박사는, 광주사태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북한이 특수군을 투입해서 공작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지만원 박사는 검찰과 국방부의 수사기록, 안기부의 자료, 5.18관련 단체들의 기록물, 북한 측의 관련 문서와 영상자료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그러한 결론을 얻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지만원과 선 그으며 북한군 개입설 부정했는데...
▲ 지난해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과 만났다. ⓒ 월간 <신동아> 제공
필자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2016년 6월호에 나온 신동아 인터뷰 기사가 순간 머리 속에 떠올랐다. 신동아 2016년 6월호 인터뷰를 보면 전두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동아 인터뷰 중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이 문제를 제기한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은 최근 세 번째로 고소당했다)."
전두환 : "전혀."
이순자 : "각하가 청와대를 경호하는(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때 북한 특수군(1968년 김신조 일행의 1·21 침투사건)이 내려온 걸 물리쳤고, 1사단장 하실 때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남침한 걸 잡아냈죠. 그래서 광주사태 때 간첩을 집어넣어서 광주사태를 악화시켰거나, 또 그걸 기화로 이북에서 사람을 들여보냈거나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각하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
지금 그 말(북한군 침투설)을 하는 사람은 각하가 아니고 지만원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리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 돼요."
고명승 :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우리 연희동에서 코멘트한 일이 없습니다."
전두환 :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 "어디로 왔는데?"
정호용 : "5·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두환 : "오…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전 전 대통령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두환, 회고록 직접 검토한 거 맞나
신동아 인터뷰 기사는 작년에 나온 것이다. 여기서 보면 전두환은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순자는 지만원을 자신들과 연결시키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하고 있다.
여기서 보면 전두환은 작년 중반까지 북한군 개입설을 몰랐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동안 몰랐던 사실을 어떻게 회고록에서 넣을 수 있을까.
위에서 인용한 인터뷰 기사 마지막 부분에서 묘사된 전두환의 태도를 보면 전두환은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 황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몰랐다고 해도 북한군 개입설의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전두환은 저런 태도보다는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북한군 개입설은 완전한 역사 왜곡이다. 광주는 남쪽 내륙에 속한 지역이므로 북한군이 수중으로 침투할 수 없다. 북한군이 침투했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공중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다. 또 다른 하나는 해안에 상륙작전을 통해 우리 영토로 들어온 후 그 부대가 광주로 침투하는 경우다.
이것은 이론적인 가정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그 많은 북한군이 쥐도 새도 모르게 무슨 수로 광주에 침투할 수 있나? 그리고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 문서에서도 관련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록이 없다.
<해럴드경제>는 "북한의 1980년 5월 침공설은 미국의 공식 입장과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가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보낸 공식 답변에서 "존 위컴 장군은 미국은 언제나 그러하듯 한국을 방위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나 북한으로부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징조는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
이어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자신이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때이고, 광주 문제로 야기된 반미감정 등을 고려해 미 정부가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북한군 개입설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사실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반박해야 하는 상황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전두환은 불과 얼마 전에 자신의 입으로 북한군 개입설을 부인했다는 것을 잊었는가? 이제 전두환에게 묻고 싶다. 회고록, 당신이 쓴 것 맞나? 원고는 검토했나?
덧붙이는 글
필자는 뉴라이트 이데올로기가 진보 세력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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