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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걸으며 살금살금 봄 마중가듯 걷는 길

성심원과 성심인애원

등록|2017.04.11 09:43 수정|2017.04.11 09:44

▲ 경남 산청군 산청읍으로 들어가기 전 왼편으로 성심교를 건너며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이다. 마을은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인 성심원과 성심인애원으로 어우러져 있다. ⓒ 김종신


마실가듯, 소풍 가듯 4월 7일 가볍게 걸었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으로 들어가기 전 왼편으로 성심교를 건너며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이다. 마을은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인 성심원과 성심인애원으로 어우러져 있다.

▲ 경남 산청 성심원 십자가의 길 시작점. ⓒ 김종신


다리를 건너 왼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인 요양원 건물 맞은편 가정사 4동 앞으로 갔다. 십자가의 길 시작점이다. 십자가의 길 14처 각 장면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의 죽음에 이르는 중요한 사건을 역은 내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비록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길을 따라 걸었다.

▲ 하얀 벚꽃 한 송이 나를 살포시 내려다본다. ⓒ 김종신


건물 주위에 영산홍 꽃봉오리들이 곧 환하게 진분홍빛으로 주위를 물들일 준비를 한다. 초록 잎이 세상에 활짝 펴기 전 수줍은 모양으로 반긴다. 하얀 벚꽃 한 송이 나를 살포시 내려다본다.

▲ 가을에 노랗게 물들었을 은행나무는 잎사귀를 떨구고 민낯이다. ⓒ 김종신


가을에 노랗게 물들었을 은행나무는 잎사귀를 떨구고 민낯이다. 그 아래 노란 민들레들이 병아리떼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다. 민낯의 은행나무 사이로 햇살이 곱게 드리운다. 뒤편으로 벚나무들이 팝콘같은 선분홍빛 꽃들을 축포처럼 피웠다.

▲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본다. 딱 봄이다. 향기도 빛깔도 봄이다. ⓒ 김종신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본다. 딱 봄이다. 향기도 빛깔도 봄이다. 바람 한 점에 하늘에서 꽃눈이 내린다. 사월에 맞는 크리스마스처럼 기분 좋다.

▲ 가는 길 곳곳에 들풀들이 연둣빛으로 출렁인다. ⓒ 김종신


가는 길 곳곳에 들풀들이 연둣빛으로 출렁인다. 연둣빛 물결에 봄 멀미를 할 듯하다. 봄까치꽃이 진정하라며 박하사탕을 건네듯 하늘색으로 달랜다.

▲ 어느새 소나무들로 가득한 숲으로 들어섰다. 십자가의 길에서 만나는 14처 조형물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 김종신


어느새 소나무들로 가득한 숲으로 들어섰다. 십자가의 길에서 만나는 14처 조형물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푸른 소나무가 주는 짙은 그늘이 시원하다. 긴 의자에 쉬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붉디붉은 동백꽃이 반긴다. 프랑스 루르드의 한 동굴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재현한 루르드 성모상이 동백나무 사이로 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지나가는 경호강을 바라본다.

▲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숨을 고르고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 김종신


숨을 고르고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십자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왼편 지리산둘레길 산청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샛노란 유채꽃이 뜨락에서 햇살 샤워 중이다. 진보라 빛 광대나물들이 작은 마을을 이룬 듯 길 가장자리를 뒤덮는다.

▲ 진하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주빛 목련이 더욱 빛난다. ⓒ 김종신


진하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주빛 목련이 더욱 빛난다.

▲ 아래를 내려다 보자 하얀 벚꽃 사이로 성심원 대성당이 보인다. 그 아래 수녀님들이 봄을 휴대폰과 사진기에 담고 있다. ⓒ 김종신


아래를 내려다 보자 하얀 벚꽃 사이로 성심원 대성당이 보인다. 그 아래 수녀님들이 봄을 휴대폰과 사진기에 담고 있다.

▲ 개나리꽃이 마치 하늘의 별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다. ⓒ 김종신


아름드리 벚나무로 내려가는 길은 노란 개나리 사이로 납골묘원을 지난다. 개나리꽃이 마치 하늘의 별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다. 별처럼 떨어진 개나리 사이로 벚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다.

▲ 바람 따라 꽃눈이 내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밑바닥이 온통 하얗다. ⓒ 김종신


바람 따라 꽃눈이 내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밑바닥이 온통 새하얗다. 하늘을 배경으로 꽃눈을 내리는 벚나무를 넋 나간 사람처럼 보고 또 보았다.

▲ 수녀원 앞에는 편백은 커다란 해시계처럼 서 있다. ⓒ 김종신


대성당 벚나무들과 작별하고 수녀원 쪽으로 내려갔다. 수녀원 앞에는 편백은 커다란 해시계처럼 서 있다. 독신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프란치스코의 집 2층 화단에는 밝게 붉은 복숭아꽃이 옆으로 키 작은 순으로 4그루 앙증스럽게 서 있다.

▲ 요양원과 가정사 사이 소나무들이 생동하는 봄을 앞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한창이다. ⓒ 김종신


요양원과 가정사 사이 소나무들이 생동하는 봄을 앞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한창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살금살금 봄 마중을 했다. 묵은 고민을 흘리기 좋은 걷기 좋은 산책로에서 싱그러운 봄기운을 가득 담았다.

덧붙이는 글 산청군블로그
<해찬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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