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독일인에게 물었다, 정말 행복한가요?

[중년 부부 유럽 여행기 5] 뮌헨의 한 독일인 가정이 들려준 이야기

등록|2017.04.21 16:24 수정|2017.04.21 16:24
작년에 중년의 부부가 유럽 다녀온 여행 이야기입니다. 독일, 이태리, 프랑스를 두 달 동안 자동차와 기차 그리고 버스로  자유롭게 다녔는데요. 맛과 명소를 탐방하는 관광과는 조금 다른 여행 얘기를 담고 싶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 어쩌다 길 위에 있게 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되지요. 전혀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건을 겪거나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곤 하는데요. 

길 위에선 수없이 많은 직관적 판단을 하게 되더군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고 때로는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돌아서 보면 과거의 또 다른 경험을 떠올리며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관대한 견해를 얻는 과정을 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정말 우리가 부러워할 만큼 매력적이고 행복한 곳인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꿈꾸고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자 말

▲ 뮌헨 박물관 ⓒ Gert




독일인들, 대화할 때 사람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 2017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57개국 가운데 독일은 16위, 한국은 56위다. 가장 행복한 나라는 1위 노르웨이, 2위 덴마크, 3위 아이슬란드, 4위 스위스, 5위 핀란드, 6위 네덜란드, 7위 캐나다, 8위 뉴질랜드, 9위 오스트레일리아, 10위 스웨덴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G7국가 중에는 캐나다(7위), 미국(14위), 독일(16위), 영국(19위), 프랑스(31위), 이태리(48위), 일본(51위) 순이다.

독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 잡힌 성장을 통한 경제적 번영과 보편적인 사회 복지를 함께 실현한 국가이다. 또한 평화적 통일을 이루고, 통독 이후 문제까지 잘 극복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양극화와 불안정성 그리고 통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 국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독일인의 행복 지수는 왜 북유럽 국가들보다 낮은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작년 독일 여행 때 방문했던 뮌헨의 한 독일인 가정에서  Gert씨(52세)와 나누었던 대화를 최근에 보충하여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구동독인 라이프찌히 출신의 그는 현재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일의 한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 중이다. 그리고, 한국계 아내와의 사이에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녀 2남 1녀를 두고 있다.

여행에서는 의미를 가지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만남도 있다. 그런 관계를 통해 그들의 이면을 보게 되며 우리의 불만을 보다 잘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관점도 가지게 된다. 한국이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한 가능성을 찾는 자그마한 실마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일인들은 대화할 때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 인터뷰의 답변 내용 중엔 한 독일인의 개인적인 견해가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Gert씨의 요청으로 인물 사진은 공개하지 않는 점 양해 바랍니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나 19세기 유럽의 노동자들 모두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은 아메리칸 드림의 원동력이 되었다. 사회 복지는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에 비해 떨어지는 반면 아메리칸 드림은 주로 물질적인 부를 이루기 위한 개인의 무한한 기회를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면 스웨덴으로 이사 가라는 말이 있을 만큼 미국은 부모와 자식 간의 소득 불평등 상관 지수가 높다. (미국은 0.8이고 스웨덴은 0.2이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난에서 탈출하고 잘 살아보자는 강력한 욕구가 한국의 급성장 배경이다. 그러나, 물질적 성공만을 강조하는 불균형한 사회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지 못하고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개인적인 노력을 통한 신분 상승의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 한국은 사교육비에 대한 지나친 부담 때문에 경제적 상위 계층의 자녀일수록 명문대에 진학하여 소득이 높고 안정된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독일은 명문대의 개념이 없고 아비투어 시험(한국의 수학 능력시험)만 통과하면 대체로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 의대와 법대는 최상위권의 아비투어 성적을 받은 사람만이 지원 가능하구요.
"독일도 고소득일수록 자녀에게 투자하는 사교육비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사교육비에 돈을 들이는 한국과는 다릅니다. 자녀들에게 취미 활동이나 해외 연수 등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자기 주체성을 확립하고 높은 이상을 갖게 하는 투자라고 보면 됩니다.

독일 대학은 어느 도시든 똑같습니다. 그러나 각 대학별 갖고 있는 특성과 교수진들로 인해 자기 취향과 적성에 맞는 학과와 학교를 선택합니다. 정말 자기가 가고 싶은 전공 학과와 강의를 듣고 싶은 교수를 골라 그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에 되도록 가려 하지만 입학 허가서를 받지 못하면 우선 입학 허가서를 받은 다른 도시의 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비투어 시험 점수(대체로 5~6과목이고 내신을 포함해서 아비투어 점수는 1~4점이고 낮을수록 좋은 점수임)는 적어도 평균 1~2점을 맞아야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과 원하는 전공을 어려움 없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2점 이하가 되면 학기를 들어가기 위해 반년에서 1년을 기다려야 하기도 하지요. 의대나 법대 뿐만 아니라 모든 전공 분야가 같습니다.

독일도 의대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대나 자연대, 공대를 더 선호하기도 합니다. 독일은 중공업, 공산품, 기기류 산업(자동차, 의료기기, 전자제품, 화학제품, 약품, 농수용 기기류, 비행기, 집짓는 장비 기구, 기차 등)이 매우 발달해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고급 인력으로 고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 뮌헨의 한 쇼핑몰 ⓒ Gert


- 그런데, 의사와 변호사의 평균 급여가 한국처럼 일반 급여 생활자에 비해 그렇게 높지 않고,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사람도 직업학교에서 교육을 잘 받으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차이가 나지 않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독일 사람들이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면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지요?
"일단, 의사와 변호사의 평균 수입이 한국처럼 그렇게 높지는 않고, 회사의 급여 생활자와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직업학교 출신과 대졸자의 급여 차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소득별로 차등화된 세금 체계와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복지 때문에 삶의 질은 차이가 적게 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모든 직업이 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직업과 직종에 따라 해야 될 분량과 책임이 따르기에 지위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전문성과 창조력을 우선시하는 사회 속에서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은 공부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니까요. 독일 역시 실업률이 낮지 않다 보니 교육과 실습을 통해 유능한 인재를 찾는 것이 현실입니다.

독일에선 어떤 직업이든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구두 만드는 직업이나 굴뚝 청소부로서 master(장인)의 수준에 오르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해주고, 자영업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올립니다. 하지만 세계화 추세에 따라 장인들의 영역이 침범당하는 경우도 있어, 독일도 최근엔 대학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 거주중인 뮌헨의 아파트 입구 ⓒ Gert


한국의 출산율은 2016년 통계청 기준 가구당 1.1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서 결혼이 늦어지고 높은 사교육비 부담과 육아 지원 정책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내수 위축과 생산 감소로 인한 경기 침체의 잠재적 요인이 된다.

독일도 2012년 기준 출산율이 1.36명으로 유럽에서 최저였는데, 2015년엔 36년 만에 처음으로 1.5명을 넘어섰다(독일 연방 통계청 자료). 2014년 기준 프랑스는 1.98명, 스웨덴 1.88명이다(OECD 자료).

프랑스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탁아소와 베이비시터가 충분하기 때문에 육아에 대한 고민이 덜한 나라이다. 1974년 세계 최초로 아빠 육아 휴직을 실시한 스웨덴은 아이가 8살이 되기 전까지 부부 합산 480일간의 육아 휴직이 제공되고 아빠 육아 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아빠가 육아 휴직 60일을 사용 안하면 자동 소멸되고, 부부가 육아 휴직을 반반씩 사용하면 세금이 감면된다. 또한 육아 휴직 기간 390일까지 급여의 80%까지(한화로 최대 약 485만원)가 지급된다.

- 한국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부모가 최대 1년까지 육아 휴직 기간을 가질 수 있고, 육아 휴직 수당이 월 통상임금의 40%(최대 100만원 최저 50만원)가 지급되는데, 육아 휴직 수당이 너무 낮습니다.

그리고, 기업에서 육아 휴직을 고려한 인력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빠 육아 휴직 의무 할당 제도가 아직 시행이 안되고 있구요. 따라서, 육아 휴직 후에 불이익을 받기도 하는 등의 이유로 기혼 직장인 여성의 첫째 아이 육아 휴직 사용률이 41.4%(한국 보건사회 연구원 2011~2015년 조사 결과 기준)에 불과하고, 워킹맘들이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 양육을 하면 만 0세∼6세의 아이에게 월 10만원에서 20만원이 지급됩니다. 가정 양육과 택일할 수 있는 국공립 유치원은 부담이 덜하긴 한데,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서 대기해야 되는 경우가 많고, 맞벌이 부부는 부모의 퇴근이 늦어질 경우에 얘기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아이를 국가의 지원으로 사회 전체가 함께 키운다는 개념과 구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독일의 출산율이 낮았던 원인과 최근에 어떤 이유로 출산율이 높아진 걸까요?
"독일의 출산율이 낮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육아 지원 정책이 여성이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릴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급여가 높은 사람일수록 출산과 육아를 꺼리게 된 경향이 있습니다.

독일 원주민들의 출산율은 여전히 낮은데, 높아진 출산율 통계는 외국인 이주민의 출산율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일수록 육아에 유리한 혜택이 많기 때문에 출산에 대한 부담이 적은 거지요.

지금도 현실적으로 육아 휴직이 쉽지는 않습니다. 육아 휴직 수당이 과거에 비해 인상되었지만 육아 휴직 소득 대체율이 스웨덴과 같은 나라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구요. 특히 외벌이 고소득 급여 생활자일수록 상대적으로 낮은 육아 휴직 수당 때문에 아빠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이런 제도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빠 육아 휴직 제도가 도입된 지는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여성이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느냐가 출산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기준이 되겠지요."

▲ 거주하는 뮌헨의 아파트 정원 ⓒ Gert


나는 최근 집 근처의 123층 마천루인 롯데월드 타워 옆의 롯데 월드몰을 퇴근길에 자주 지나친다. 평일에도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젊은 층의 상당수가 이미 너무 가격이 치솟아 버린 주택 소유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결혼과 출산을 꺼린다. 대신에, 저축보단 여행이나 자동차 구매 또는 쇼핑, 외식 등에 돈을 쓰기 때문에 불황에도 불구하고 소득대비 젊은 층의 소비 성향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한,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청년 가구(20~35세)의 주거 빈곤(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에 사용)율이 20.3%(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 2016년 자료)일 정도로 청년층 일부는 졸업 후에도 빈곤에 시달리며 고시원과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한편, 2000년대의 저금리 시대에 빚을 지고 주택을 구매했거나, 자녀들의 사교육비와 대학 학자금 등에 이미 많은 돈을 쏟아 붇고 은퇴를 맞이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다수가 노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턱없이 부족한 연금과 저축 때문에 노후를 즐기기보단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근검절약하는 독일의 일반 가정은 다른 유럽의 주요 국가와 미국에 비해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 비중이 낮고 예금 비중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2000년대의 저금리 시대에도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안정되었고, 대체로 가처분 소득의 10% 이상을 저축한 것을 볼 수 있다.

▲ 주요 선진국의 가처분 소득대비 저축율 비교 ⓒ OECD


그런데, 2010년 이후 유럽의 주택 가격이 안정되었을 시기에, 오히려 독일의 주택 가격은 대도시 위주로 급등하기 시작했다. 주택을 '콘크리트로 만든 금(金)'이라는 하는 'betongold'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금융 위기 이후에 유럽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양적 완화 정책의 영향으로 초저금리에 대출이 이뤄짐에 따라,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르지 않았던 독일의 부동산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 독일은 국민의 주택 소유 비율이 50% 남짓한데, 무주택자는 전세 제도가 없어 월세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뮌헨의 경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아파트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임대료도 많이 올라서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부담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현재 뮌헨의 아파트 임대 주택에 살고 계신데 실제로 어떠신가요?
"네 임대료뿐만 아니라 땅값이 많이 올랐고 지금도 올라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 추세와 낮은 이자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법적으로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가 없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될 만큼 임대료가 많이 오르진 않았습니다."

▲ 독일 연도별 주택가격 지수 ⓒ 독일 통계청


- 한국은 서울의 경우 집값이 너무 오르면서 전세금과 월세도 덩달아 올라서 그 비용을 감당 못한 사람들이 서울 외곽 또는 경기도 지역으로 더 싼 곳을 찾아 밀려나는 주거 난민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참 우리와는 다르군요.

그런데, 월 소득의 일정 부분을 임대료와 적지 않은 세금으로 지불하고 나면 일반적인 독일인의 실제 가처분 소득은 높지 않을 것을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소득이 줄어드는 은퇴 후에도 계속 임대료를 지불하게 되면 생활에 부담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문제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빚을 갚느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불안해하며 혹 직장이라도 잃게 되어 빚 못 갚으면 어쩔까 걱정하는 것보단, 임대료를 내고 살면서 조금씩 저축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살다가 은퇴하면 한적한 곳이나 집값이 싼 작은 도시로 가 그때 집을 사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인이 주택을 무리하게 빚을 내서라도 구매하는 이유는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면서 한국도 전세가 아닌 전월세가 많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월세가 너무 높기 때문에 빚을 내어서 은행 이자를 감당하고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월세로 사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그런데, 독일 가정은 일단 빚을 지고 주택을 구매하기를 꺼리구요. 임대료 상승에 대한 규제가 강력하고 소득이 낮은 급여 생활자는 국가의 임대료 보조가 있기 때문에 월세로 사는 것이 가능하단 말씀이네요. 제도적으로 집을 팔고 차익을 남긴 후에 쉽게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가 쉽지도 않구요.

▲ 뮌헨 부근의 운터슬라이쓰하임성 ⓒ Gert


한국인 급여 생활자는 총 급여에서 연금 보험료 4.5%(사업주도 똑같이 근로자의 보험료 4.5% 부담), 건강 보험료 3.26% (사업주도 똑같이 근로자의 보험료 3.26% 부담), 실업급여 0.65%(사업주는 0.25~0.85%부담), 기타 세금은 소득에 따른 누진세가 적용되어 대략8%~40% 정도를 보험료와 세금 등으로 납부한다.

실업 급여의 경우 최대 240일까지 150만 원 이내에서 지급되고, 2017년 1인당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 예상액은 35만6110원이다(보건 복지부 자료). 그리고, 암과 같은 중증 질환에 걸렸을 경우 기존의 의료 보험으로는 병원비 부담이 너무 커서 국민의 다수가 실손 의료 보험에 따로 가입해 두고 있다.

독일인은 소득에서 연금 보험, 건강 보험, 실업 보험, 간병인 보험 등으로 상당 부분(30~60%)을 지출한다. 대신에 근로자가 해고된 첫해 전년도 소득의 67%를 실업수당으로 받고. 1년이 지나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장기 실업자로 분류돼 매달 장기 실업자 수당(450유로)와 얼마간의 임대료와 연료비 등을 지급받는다.

또한, 퇴직 후 개인이 받는 연금은 근로자 평균 순소득의 약 60~80%(여기에서 18%세금  의료보험 8% 간병인 보험료 3%를 공제함)나 된다. 건강 보험료와 간병인 보험료 등으로 지출하는 돈이 한국보다 높지만 의료비 지원은 거의 무상수준이다.

- 독일은 소득에 따른 차등 납세 제도가 잘 되어 있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진세의 비율이 높은 고소득 급여 생활자의 경우 자신들이 납부하는 높은 세금의 상당 부분이 저소득층이나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 등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같은 경우가 세금을 많이 내면서도 실제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지요. 물론 자부심도 큽니다. 도와주는 거니까요.(웃음) 다만,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모든 면에서 좋아지기보단 나빠지는 상태로 가니 조금은 불만이기도 합니다.

균등하게 나누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세금은 여기저기 붙어 높아지기만 하는데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억만 장자는 세금을 횡령하려고 하니)가 되가는 세상이라서요!"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독일은 세금으로 모든 복지가 이뤄지는 나라인데, 일자리가 부족하고 실업률이 높아 들어오는 세금은 적어지는 반면, 저소득층 이주민은 늘어나고 미혼모 등이 많아지면서 나가는 세금은 많아지면서 전체적인 복지가 부실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고소득 급여 생활자의 경우 높은 세금에 비해 받는 혜택은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시에서 운영하는 유치원비 250유로를 따로 내야 하고, 자녀들이 대학생 생활비 보조금 대출도 못 받습니다. 또한, 다자녀일 경우 받을 수 있는 주택 임대료 보조금 혜택도 없습니다."

▲ 뮌헨 박물관 ⓒ Gert


독일은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 국가가 보장하는 조건이 뛰어나다. 교육, 의료, 실업, 연금 정책 등의 분야에서 보편적 복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비해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 지수는 높은 편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 지수가 북유럽국가에 비해 낮은 이유이다. 독일인들은 왜 서로를 신뢰하기 어려울까?

한 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이 되고 쉽게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일제 시대부터 시작된 좌우의 대립이 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뿌리박힌 상태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 갈등의 주요인 중의 하나가 되어 사회적 피로와 국민 상호간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세대를 걸쳐 전해져 독일인의 정신의 근저에 자리 잡은 불안감이 되었다. 이른바 저먼 앙스트(German Angst)는 비판적인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 낸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22년까지 원전을 폐쇄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의무 사항과 규제를 많이 만들어 냄으로써, 사회 전반이 여유가 없어지고 독일인들 간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생각된다.

- 제가 캠니츠에서 머무를 때 동서네가 새로운 집을 구하러 부동산 중개 사무실을 방문할 때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계약이 아니고 문의를 하러 간 건데도 여러 가지 복잡한 규정을 똑같은 톤으로 꼼꼼하게 긴 시간 동안 설명을 하더군요. 독일인답다는 생각도 했지만 마치 딱딱하고 건조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일인의 신중함과 정확한 일처리는 신뢰감을 주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한 정신적 불안감에서 비롯된) 완벽주의와 규칙을 좋아하는 습성이, 한편으로 여유롭지 않고 피곤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것은 서로에게 좋은 것이니까요. 규정과 계약은 쌍방간의 불이익과 불합리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권리이고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 제가 캠니츠에서 만났던 60대의 한 남자분은 동독이 붕괴된 첫 번째 이유는 절대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니었다는 nein(never)이라는 말씀을 수차례 반복하셨습니다. 지금의 독일처럼 의료 보장 제도가 좋았고, 일자리가 모두에게 거의 완벽하게 주어지며, 낮은 주택 임대료에 비해 급여도 상대적으로 높아 동독 사람들은 현금 보유량도 많았다고 합니다.

감시와 통제로 인한 인권 탄압과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것이 동독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이유라고 하시더군요. 구동독인 라이프찌히 출신이신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분 말씀에 동의합니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현금 보유량에 대해선 잘 모르겠고 소비경제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원활하게 구입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 제품, TV, 컴퓨터, 전화기 등이요. 또 차를 사려면 10년 이상 기다려야 했고 이것 역시 너무 비싸 살 수가 없었습니다."

▲ 뮌헨 광장 ⓒ Gert


독일은 국민이 잘못 선출한 독재자가 여론을 통제하고 국민을 감시하며 모든 것을 결정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에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 란 질문은 독일인의 뇌리 속에 지금까지 깊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론을 잘 믿지 않고, 토론을 좋아하며 합의를 도출하고 싶어하는 국민이다.

통독 이후에 실업률과 국가 부채가 치솟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2002년에 이뤄낸 Hartz 개혁안이 대표적인 예이다. 노동 개혁에 대한 첨예한 갈등을 미디어 토론을 통한 합의를 통해 해결한 것이다. 이후에, Hartz 개혁안으로 지지를 잃은 사회민주당 정권이 2005년 집권에 실패하자, 기독교 민주당이 사회 민주당과의 연정으로 집권하여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갔다.

한국의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후보도 언론도 개인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방식의 선거 운동이 판을 치고, 언론은 이미지와 진영 논리에 치중한 흥미 위주의 보도에 더 열을 올리면서, 개인은 정책과 그 실현 가능성을 보고 후보를 판단할 기회를 잃어간다. "왜 박근혜에게 투표했어요"란 자책과 비난을 벌써 잊은 건 아닌가?

한국인이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구조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와 지도자의 책임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에서 토론을 통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뮌헨 근교 기차 타고 가던 중 ⓒ Gert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